일시 1월19일 오후 2시
장소 서울극장
이 영화
전세계인이 온갖 엽서와 우표, 동상 등에서 익히 보아왔던 장면을 바꾼 한 장의 사진이 있다. 2차대전 최악의 전투로 기록될 이오지마섬 전투 당시, 상륙한 미군해병들이 섬에 우뚝솟은 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포착한 이 사진은 2차대전의 결말에 쐐기를 박고 미국적 가치와 영웅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처절한 전쟁의 참상을 그리기 위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똑같은 전투를 소재로 각각 미국과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여 두편의 영화를 완성했고, <아버지의 깃발>은 일종의 미국편인 셈. 사진 속 주인공 중 살아남은 세명의 병사들은 본국으로 소환되어 영웅으로 만들어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쟁 기금 마련행사에 이용된다. 세 병사 중 한 명을 아버지로 둔 제임스 프래들리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추적해 완성한 동명원작을 옮긴 영화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진 속, 누구도 알려하지 않았던 전쟁의 참상과 그 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00자평
대단히 보수적인 가치를 옹호하면서도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파고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특징이 여전하다. 영웅을 만드는 사람, 의도하지 않았는데 영웅이 되는 사람, 영웅이 만들어지는 시대와 사회를 잘 보여주는 거장의 면모를 보여줬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을 한 영화인만큼 전쟁장면에 있어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극사실주의를 통해 감동을 추구했다면, <아버지의 깃발>은 사실주의를 배제하면서 오히려 전쟁의 본질과 참상을 보여줬다는 점이 뛰어나다. 여전히 이스트우드의 최고작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사건을 다루는 등 제한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버지의 깃발> 역시 독자적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영화다.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 혹은 승자와 패자를 동시에 그리려 했음을 생각할 때, 아무래도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빨리 보고 싶다.
김봉석/영화평론가
‘그깟 깃발 하나 세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영화 속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영화 속 깃발은 은유가 아닌 실체다. 깃발이 의미는 실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바꾸고, 행동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쟁의 실체를 외면하고 자유, 국가, 영웅 등 보다 거대한 의미에 집착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직시해야 하고, 그것은 정말 서글픈 감정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스트우드가 이 서글픔을 감상이 아닌 윤리의 문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인데, 그가 <아버지의 깃발>과 함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진짜 전쟁이 무엇인지를 영화로 보여줘야 한다는 거장의 각오였을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전투장면의 대명사로 떠오른 ‘참호 속에서 총을 갈기는 적군의 시점숏’의 리버스숏이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통해 완성되는 순간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그는 역시, “우리가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 단 한명의 공화당 지지자”다.
<씨네21> 오정연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 철저한 객관성으로부터 은근히 거짓말을 기대한다. 수렁에 빠져드는 2차 대전의 한복판, 수명의 미군 병사가 격전지 이오지마에서 잠시 고지에 깃발을 꽂는다. 그리고 한장의 사진에 고정된 이 장면은 미국 애국주의와 영웅 신화의 상징으로 전유돼 버린다. <아버지의 깃발>은 국민들로부터 전쟁 자금을 긁어내려는 미국 정부와, 영웅을 탐욕스레 소비하고 싶은 대중의 행복한 야합을 진지하게 고발한다. 다만 그동안 자기들 빼곤 다 알고 있던 미국의 치부를 이제 와서 비통하게 고백하는 태도가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다. 전장의 참혹함은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참상을 눈요기로 만드는 전쟁영화의 오류를 멀리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메시지의 무게에 비해 <아버지의 깃발>은 약간 헐겁게 짜맞춰진 지그소 퍼즐 같은 느낌도 주는데, 감독이 그리고자 한 이오지마의 풍경을 온전히 보려면 쌍둥이 영화인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에서 나머지 조각을 찾아야 할 듯하다.
<씨네21> 김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