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대륙과 언어를 넘는 인간의 공유된 감정들 <바벨>
2007-01-2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네개의 다른 인간사의 이야기 <바벨>은 모로코 사막에서 울린 총성 한발로 영화를 시작한다. 자칼에게서 가축을 지키기 위해 구입한 라이플총을 들고 두 소년이 장난을 치더니, 멀리 지나는 버스까지 총알이 날아가는지 시험해보자며 총을 쏜다. 그러자 버스가 멈춘다. 그 안에 타고 있던 여행객 수잔(케이트 블란쳇)이 총에 맞고 쓰러지고, 남편 리처드(브래드 피트)는 어쩔 줄을 모른다. 한편, 리처드와 수잔이 남겨두고 온 자녀들을 돌보는 멕시코 출신의 가정부 아멜리에. 그녀는 지금 아들의 결혼식에 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녀 대신 아이들을 돌봐줄 보모가 오지 않는다. 결국 이 두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국경을 넘기로 하지만, 백인 아이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는 멕시코인에게 쏟아지는 건 의심의 눈길이다. 그리고 또 한편, 일본의 도쿄에서는 농아 소녀의 방황이 펼쳐진다. 또래들 사이에서 그녀의 콤플렉스는 커지기만 한다. 그러던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온 형사에게 점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 모로코 사막에 총을 두고 온 전 주인이다. 각기 다른 대륙과 도시에서 일어나는, 그러나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들.

<바벨>의 수상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작으로 진출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에게 감독상을 안기더니, 이번에는 아카데미영화제의 나침반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 주역을 노리고 있다. 할리우드의 스타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의 참여뿐 아니라 나머지 비전문 배우들의 호연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특히 멕시코 출신 영화감독으로서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등을 연출한 이냐리투가 과장되지 않고 세련되게 다른 언어를 쓰지만 같은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공유된 감정을 포착해낸 것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첨탑을 세운 것이 바벨이고, 그걸 무너뜨리기 위해 벌을 준 것이 각기 다른 언어라면, 이 영화는 언어가 달라도 감정은 공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역설적인 제목 아래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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