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김기덕 감독의 신작 <숨> 촬영현장 및 기자간담회
2007-01-2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김기덕 감독에게서 날아온 반가운 현장 초대다. 1월17일 서대문형무소 건물 안. 영화의 세 주인공 하정우, 장첸, 박지아가 함께 나오는, 어쩌면 <숨>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박지아가 감방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푸른 죄수복을 입은 장첸이 그녀에게 다가가고 둘은 끌어안는다. 미니 크레인에 달려 천천히 후진하며 떠오르는 카메라. 하정우가 프레임으로 들어와 박지아의 손을 잡아 반대방향으로 끌고 가면, 박지아는 자꾸만 장첸쪽을 뒤돌아보며 노래를 부른다. 그들과 반대쪽으로 조용히 프레임 아웃하는 장첸. 서대문형무소 좁은 복도에서 피어나는 상상적이면서도 애틋한 이 장면. 과연 <숨>은 어떤 이야기인가?

연(박지아)은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장첸)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본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끌리듯이 사형수가 있는 형무소를 찾아가 면회를 요청한다. 그리고 그에게 1년간의 시간을 선사한다는 마음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맞춰 한번씩 그를 방문하여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편으론 계절에 맞는 노래를 불러주고, 또 계절에 맞게 면회실을 꾸며준다.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형수는 언제나 그녀의 방문을 기꺼이 받는다. 한편, 외도에 빠져 연을 외롭게 만들었던 남편 정(하정우)은 아내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채고 막아보려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숨>은 연과 사형수와의 클라이맥스를 향해가고, 이 영화의 제목 <숨>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다. 김기덕 감독의 열네 번째 영화 <숨>에서는 순환의 시간에 놓인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기이한 공존과 구원의 이야기가 그려질 듯하다. 올 여름 국내 개봉예정이다.

“내겐 3만의 관객이 중요하다”

(현장 공개가 끝난 직후에는 서대문형무소 야외 풀밭에서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이하 김기덕 감독 문답)

-이번 영화에 대해 소개한다면.
=우선 이렇게 추운 날 찾아와주어 고맙다. 지난번 <시간>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시간>은 국내 판매 형식으로 8개관에서 개봉한 뒤 3만명 정도 관객이 들었다. 애초 내가 말한 20만명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영화사 스폰지에 이번 작품을 수출하여 국내 개봉하기로 했다. 또, <시간> 때의 발언 이후 몇몇 매체에서 내 생각을 지지해주었고, 그 지지자들의 마음을 저버려서는 안 될 듯싶었다. 나에게는 997만명의 관객보다 3만명의 관객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영화를 위해 발품을 팔고 봐준 관객에게 이번 영화도 보여드리고 싶다. 그게 내가 했던 말을 책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라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숨>의 시나리오는 <빈 집>과 <나쁜 남자> 때 감옥장면을 찍으면서 떠올렸다. 서대문형무소를 배경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숨>은 80%가 교도소 장면이다. 제목이 <숨>인데, 숨을 내쉬는 것과 들이쉬는 것이 음양의 이치와 같아 보였고, 그 숨쉬기가 인생의 어떤 한 모습이지 않은가 싶었다. 여주인공 연이에게 남편인 정이 해주지 못하는 걸 사형수가 대신하는 것이다. 내쉬고 들이쉬는 숨의 이미지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지금까지 촬영한 건 어느 정도 마음에 드나.
=이번에는 외국에서 투자를 받지 않았다. 최소로 봤을 때 2억5천만원으로 제작하는 영화다. 그동안의 해외수익금을 모아 제작하는 작품이고, 그걸 스폰지에 수출한 것이다. 촬영횟수가 10회차밖에 안 되고, 그걸로 90분 러닝타임을 맞춰야 하니 전쟁처럼 찍은 영화다. 마음에 드는지는 편집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내 개봉인데 왜 수출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나.
=내 영화는 만들면 적어도 20개국 이상 판매되고 있다. 내 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만 따지면 2만∼3만명이지만, 전세계 가까이 따지면 1천만명 정도가 된다. 그중 한국은 2∼3% 되기 때문에 넓게 봐서 수출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국내 배급을 맡은 스폰지 조성규 대표) 부가설명을 하자면, <시간>도 그렇지만 이번 영화 <숨> 역시 외국영화를 수입할 때와 동일한 조건과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김기덕 감독의) 수출이라는 말은 그런 뜻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저예산영화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내가 제일 중요하게 문제 삼는 건 제작비 상승이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용이 55억원이라는 게 문제다. 25억원 미만, 더 나아가서는 10억원 미만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 다음은 국가 지원책에 관한 거다. 나는 꾸준히 10억원 이하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국가지원책이 있어서 가능했다. 만약 그런 맥이 끊겼다면 못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극장 네트워크가 구성되는 것에도 국가 지원책이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가가 어느 정도 지원을 하는 것이 거대 영화들과의 밸런스를 맞추는 길이라고 본다. 그리고 영화를 하는 후배들에게 바란다면, 자기가 가진 아이디어와 능력을 오락영화에 함몰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변덕을 자주 부린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 고민 많이 했다. 그러나 아까 말한 것처럼 3만명의 애정을 중요하게 생각한 거다. 약속을 어긴 거라고 보면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이랬다 저랬다 한 것도 여러 번이 아니라 이번 한번 아닌가. (좌중 웃음) 그건 인간이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농담으로 말하자면) 앞으로 한 세번 정도 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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