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옥 같이 하얀 전통의상을 입은 젊은 남녀 무용수들이 아름다운 춤사위를 펼치며 무대의 양편을 뛰어 다닌다. 강남 구민회관 내 강당. 공연장 바깥 복도에 모니터를 놓고 무전기로 연출 지시를 하던 감독이 뭔가 수정이 필요했는지 무대 위로 올라와 나직한 목소리로 무용수들의 동선을 조정한다. “자, 저쪽으로 너무 쏠렸거든요. 이쪽으로 이렇게 템포있게, 빠르게. 한번 돌고 두번 돌잖아요? 그리고 바로 나가면 돼요.” 중절모를 쓰고 수더분한 점퍼를 걸친 중후한 노신사. 그가 이 영화의 감독인데, 얼굴이 낯익다. 그러고보니 하명중 감독이다. 지금 여기는 한국 영화사의 명배우이자 1980년대 <태> <땡볕>을 만들어 감독으로도 역량을 보여주었던, 그리고 고 하길종 감독의 친동생이기도 한 하명중 감독이 <혼자 도는 바람개비> 이래 근 16년 만에 돌아와 감독과 주연을 겸하며 만드는 복귀작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제작 하명중 영화제작소)의 현장이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노년의 소설가 최호(하명중)가 생전에 어머니가 지내던 집을 찾아와 과거의 추억에 잠기게 되는 내용이다. 일찌감치 남편을 잃고 아들을 키워온 홀어머니, 그녀 밑에서 유명 문학가로 성장한 최호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머니 역은 <하늘이시여> 등의 TV드라마로 익숙한 한혜숙이 맡았고, 젊은 시절의 최호 역은 감독의 첫째아들이자 연극배우였던 하상원이 맡았다. 하명중 감독은 아들에게 주연을 맡긴 것에 대해 “나의 젊은 시절의 근사치이니 가장 적임자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어머니를 짝사랑하는 김 사장 역으로는 이대근이 출연한다. 오늘 장면은 김 사장과 어머니가 무대에 오른 아들 최호의 작품을 보며 기뻐하는 장면이다. “어머니는 사랑의 원형질이다. 원작자인 최인호씨의 작품에서도 그의 히로인들은 거의 어머니의 변형인 것 같다”며 하명중 감독은 이 작품의 방점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라는 걸 시사했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1월16일 촬영을 끝냈고, 올 상반기 개봉예정이다.
“아버지 영화 돕기 위해 만사 제쳐두고 왔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제작팀장 하준원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의 제작팀장이지만, 사실 임시직이다. 영상원 영화과를 나와 <괴물> 각본에 가세하고, 지금은 시나리오를 쓰며 연출 데뷔작에 열중하던 하준원씨는 그러나 모든 일 다 제쳐두고 아버지 하명중 감독의 영화를 돕기 위해 현장에 와 있다. “아버님이 오랜만에 찍으시는 영화라 힘이 돼드리기 위해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잠시 접어두고 지금 이 영화에 매진 중이다. 젊은 스탭들하고 소통하는 과정의 매개가 되기 위해 참여했고, <괴물> 때 같이 작업했던 스탭도 몇명 데리고 들어왔다. 김형주 촬영감독도 영상원 출신인데 내가 아버님께 소개해드렸다. (웃음) 나야 그렇고, 형님은 직장에 휴직계까지 쓰고 출연하고 있는 거다.” 사실 두 아들 모두 현장에 와 있다. 젊은 시절 최호 역을 맡고 있는 큰아들 하상원씨는 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싸이더스HQ에 휴직계까지 내고, 연극배우를 했던 예전 면모를 살려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오랜만에 돌아와 멋쩍을 아버지를 위해 나란히 옆에 서서 취재진에게 사진 포즈까지 취하는 등 열과 성으로 돕고 있는 두 아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