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한국영화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
2007-01-22
글 : 김수경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 상영과 포럼 중계
김기영 감독의 생전 모습

1월21일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지난 1998년 작고한 고 김기영 감독을 추모하는 영화 상영과 포럼이 개최됐던 것. 현역 감독 22명의 김기영 감독에 대한 회고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의뢰를 받아 김홍준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지난해 12월 프랑스에서 첫 상영을 가진 바 있다. 국내 프리미어답게 21일의 상영은 뜨거운 관심 속에서 이뤄졌다. 이어서 김기영 감독의 아들인 김동원씨를 비롯해 <이어도> <반금련> 등에 출연했던 여배우 이화시씨,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를 만든 김홍준 감독, 그리고 이 영화 속에서 김기영 감독에 관한 기억을 더듬었던 류승완, 봉준호 감독 등이 참여해 김기영 감독과 그의 영화를 회고했다.
국내에서 처음 상영된 김홍준 감독의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와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사회를 맡았던 포럼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 상영

1월 21일 일요일 12시30분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인 낙원상가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한국영화 현역감독 스물 두명이 김기영 감독을 회고하고 자신의 영화세계와 연결하는 다큐멘터리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가 상영됐다. <하녀>에서 철없는 꼬마아이로 등장한 안성기가 누나 역의 여자아이와 실놀이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인터뷰에 응했던 스물 두명의 감독 중 유일하게 김기영 감독의 싸인을 보유한” 민동현 감독이 회상하는 김기영 감독의 굵고 큰 손으로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다.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는 실타래처럼 얽힌 현재의 감독들과 김기영 감독의 관계를 비춘다. 황학동에서 보석처럼 숨겨져있던 2500원짜리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찾아헤매고, 그의 영화 대목을 흉내내는 열혈팬 봉준호 감독, 단편영화제를 인연으로 만나 그의 유작으로 남은 <악녀>의 시나리오를 받았고, 조감독이 될 뻔 했던 송일곤 감독, 그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처음 얼굴을 마주한 정지우 감독 등의 인연이 흥미진진하게 스크린에 펼쳐졌다. 봉준호 감독의 재치있는 입담과 류승완 감독의 영화 속 흉내는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고려장>과 <혈의 누>는 쌍동이처럼 음산한 기운으로 닮아있고, 눈물을 쏟아내는 <너는 내 운명>의 마지막 장면은 <육체의 약속>과 궤를 같이 한다.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는 단순한 회고조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2006년 한국영화의 지평에서 김기영을 이야기하는 감독들은 김기영을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장준환 감독이 토로하는 영화감독의 창작과 삶에 대한 고뇌에 대한 김기영 감독을 향한 질문은 어쩌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연출자 김홍준 감독은 나레이션이나 목소리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감독들의 목소리를 옮기는 것에 주력했다. 일요일 한낮에 어느 때보다 많이 모인 관객들은 웃고 웃으며 50분의 다큐멘터리를 지켜보다 김지운 감독이 화면에서 들려주는 삶 속의 김기영 감독의 이미지를 떠 올리며 영화의 끝을 맞이했다. 그리고 극장안의 불이 켜지자, <이어도>에서 “이쁜 것을 가장 싫어하는 감독님 때문에 무척이나 고생했던” 여배우 이화시가 관람을 끝내고 객석에서 일어서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김수경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 포럼 지상중계

김홍준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는 지난해 7∼8월에 주로 촬영했고, 50일 동안에 22명을 만나 1시간30분에서 세 시간씩 길게 인터뷰했다. 참여 감독들이 한번씩이라도 영화에 다 나와야 하는 게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잘 배분된 것 같고, 또 지금 보니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김기영 감독은 내가 97년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일하던 시절 저작권 때문에 만난 게 첫 인연이었고, 서울단편영화제 집행위원 하면서는 심사위원장으로도 모셨었다. 그리고 인터뷰하다 안 사실인데, 김지운 감독은 김기영 감독 댁 근처에 살았고, 봉준호 감독 아버님은 <하녀>의 크레딧을 작업했더라.

봉준호 고등학교, 대학교 때 황학동 시장을 뒤지며 비디오테이프로 김기영 감독 영화를 처음 구입했다. 유현목, 신상옥, 김수영 감독의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97년 부산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있었을 때 파티 석상에서 잠깐 뵈었는데, 말이라도 붙여볼까 해서 엄청난 인파를 뚫고 접근했지만, 음식을 접시 가득 담아 한쪽 구석으로 가시더니 너무 집중해서 드시는 바람에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드실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웃음) 나중에 케이블 채널에서 김기영 감독 영화를 방영했을 때는 수십개의 공테이프를 준비해서 전부 녹화를 해내는 쾌거도 이뤘다.

류승완 불행히도 나는 직접 뵐 기회가 없었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를 할 땐데, <달은…해가 꾸는 꿈>과 <3인조> 사이에 엎어진 <야간 비행>이라는 영화를 준비할 때다. 사무실은 있지만 투자를 못 받아서 사람들이 놀고 있으니까 박찬욱 감독이 미안했는지 가끔 좋은 비디오테이프를 갖고 와서 보여줬는데, 그때 봤던 게 <화녀>다. 나중에 김기영 감독 시나리오 선집 나온 것도 봤는데, 그걸 보면서 어떻게 이런 묘사가 가능한가 싶어 뵙고 싶었지만, 감히 그 밑에서 조수할 자신은 안 생기더라. 사실 알게 모르게 나도 김기영 감독을 제대로 알리는 데 한몫 했다고 할 수 있는데,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에로 코너에 있던 <화녀>와 <육체의 약속>을 고전 명작 코너에 옮겨 꽂아놓았으니까 말이다. (웃음)

이화시 <이어도>를 봐서 알겠지만, 감독님은 어여쁘게 나오는 걸 싫어해서 나는 영화에서 항상 이상하게 칼을 갈아야 하거나 기괴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도 기회가 되면 그보다 더 강한 역할을 하고 싶다. 영원히 묻히는 줄 알았는데 위대한 감독의 영향으로 여러분을 뵙게 돼서 감회가 새롭다.

김동원 2남1녀를 두셨고, 내가 장남이다. 객석에서 관람만 하려다가 갑자기 이 자리에 올라오게 됐다. 아버님은 충무로에서도 괴짜 감독으로 소문날 만큼 이상한 분이었다. 친구도 없으셨다. 아, 딱 한분 정신병원 의사가 있었는데 그분이 정신병에 걸리셔서 그만…. (좌중 웃음) 봉준호 감독이 아까 식욕에 대해 말했는데, 식탐이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게다가 요리는 일류 조리사급이었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 때였는데, 사실 아버님은 생일 때나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안 들고 가면 입장을 안 시켜주신다. (웃음) 그때 뭔가 예감하셨는지 손수 음식을 준비하셨는데 음식이 40여 가지나 됐다. 선물도 한 150가지 준비하셨는데, 다 천원짜리 이하였고 게다가 빙고게임을 해서 가족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게 아닌가. (좌중 웃음) 에피소드는 몇 시간을 다 이야기해도 모자란다. 형식을 싫어하고, 비타협적이었다. 매 순간이 영화와 관련되어 있었다. 평소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의 90%는 다 시나리오에 대한 거였다. 조감독도 거의 두지 않으셨고, 시나리오부터 포스터 제작, 주제곡, 소품, 미술까지 혼자 다하셨다.

김홍준 현재의 한국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 중 하나가 바로 김기영 감독의 영화다. 김기영 감독과 현재 몇몇 한국 감독들 사이에 놓여 있는 무의식의 공유 차원, 가령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의 결말은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의 결말과 기막히게 유사하다. 단순히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김기영은 무정부주의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개인의 존재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인 것 같다. 그 갈래로서 장르, 여성의 재현 문제, 내러티브 파괴의 대안적 방식 등 지금의 한국영화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앞서 고민했고 그게 지금의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것이 김기영의 현재적 의미가 아닌가 한다.

김성욱 두 감독이 김기영 감독에게서 받은 영향이라면.

봉준호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엇박자가 있다고 지적하더라. 몰랐던 건데, 이번에 <고려장>을 보면서 김기영 감독님 영화에도 예기치 못한 엉뚱한 갈지자의 걸음, 지그재그 도보, 엇박자의 파열된 리듬 같은 게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런 점에서 비슷한 것 같다. <고려장>에서도 보면 낫으로 사람을 찔러 죽일 때 장면은 엇박자다.

류승완 김기영 감독 영화에는 집착하다가 충돌하고 파멸하는 인물들이 무척 많은데 그런 영향들이 내 영화에 있는 것 같다.

김동원 쥐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아버님 영화에는 쥐가 많이 등장하는데, 사실 <화녀>에 나오는 쥐는 영화에 출연시키기 위해 집에서 사육하고 훈련까지 시켰다. (웃음) 처음에는 하얀 쥐를 열댓 마리 갖고 왔는데, 촬영 때는 흰 쥐를 까맣게 칠해서 썼다. 문제는 촬영이 끝나고 나서였다. 쥐들이 번식을 해서 수백 마리가 됐고, 잘 때 이불 속에 들어와 있기도 했다. (객석 비명) 쥐를 잡으려고 고양이도 몇 마리 키우고, 하여튼 몇년을 고생했다.

김홍준 김기영 감독이 10년 전 이미 발굴되었다고는 하지만, 요새 다시 또 잊혀지는 분위기다.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김기영 감독 타계 10주기를 기념하여 준비 중인 여러 프로젝트 중 첫 번째에 해당한다. 영진위에서 발간하는 영문 책자도 올해 안에 발간된다. 곧이어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회고전이 있을 예정이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전작전을 준비 중이다. 지금 김기영 감독에 대한 관심은 비단 이 한 작가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영화의 과거,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는 과정과도 같다. 김기영 감독에 대한 관심은 바로 그런 상징적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리= 정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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