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의 김홍준 감독
김기영 감독은 생전에 유난히 김홍준 감독을 우대했다. "대학후배라서"라는 김기영 감독의 아드님 김동원씨의 증언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김홍준 감독은 김기영 감독에게 "짜장면 이상의 대접"을 받은 거의 유일한 후배 감독이다. 김홍준 감독은 처음에는 김기영 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만 하고 다른 젊은 감독에게 맡기려 했다. 하지만 그가 이 프로젝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 우대받던 후배로서 가졌던 "김기영 감독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었으리라. 포럼 직후 늦은 점심을 앞에 두고도 김기영 감독의 이야기를 묻자, 김홍준 감독은 수저를 들지도 않은 채 열변을 이어갔다.
김기영 감독의 회고전에서 영화제작까지 옮아간 것 같다.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김기영 회고전을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다. 그 쪽에서 영진위에 회고전을 제안하고 나에게 공동 프로그래머를 의뢰했다. 2006년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한국영화 50편을 상영했을 때, 내가 약간의 자문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회고전에서 영진위에는 자문하는 역할이었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프로그래머로 정식으로 고용된 조금은 기묘한 형태였다.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감독들의 영화가 많이 상영됐다. 준비과정에서 우리가 개막식과 포럼이 포함된 현재의 형태를 제안했다. 회고전할 때 영화만 달랑 틀면 재미도 없고 알려지지도 않으니까. <이어도>가 개막작이었고 <고려장>은 프리미어 상영이었다. 처음에는 박찬욱 감독이 동행하려 했는데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촬영 때문에 못 가게 됐다. 그래서 알아보는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이 참여했다. 알고보니 봉감독이 김기영 감독의 광팬이더라. 때마침, 김감독님 영화에 자주 출연한 이화시씨가 알려져 동행하게 됐다.
제작과정이 만만치는 않았을 듯하다. 인터뷰 일정도 힘들었겠지만 제작비도 모자랐을 듯하다.
=무엇보다 감독들이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고, 내가 그렇게 인심을 잃지는 않았나보다하고 안심했다.(웃음) 영상원의 김양일 교수가 후반편집을 총괄해주시고 진행비 수준으로 학생들이 참여해서 비공식적 산학협력 형태로 마무리했다. 그렇게 작업해서 그나마 방송해도 손색없는 퀄리티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인디다큐로 찍느라 힘들었지만 2006년 한국영화에 대한 독특한 시각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 관객에게 재밌어야 하고, 김기영 감독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조건도 부담스러웠다. 일차적으로 무엇보다 이것은 행사용 비디오였다. 파리에서 무려 한달 동안 계속될 김기영 감독 회고전을 소개하는 첫머리에 놓였기 때문이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다. 구로자와 아키라나 존 포드가 아닌 미지의 감독이니까. 이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에는 현재의 한국영화를 되돌아보는 지점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인터뷰 과정도 그러했다. 임상수 감독과는 <그때 그사람들> 가처분 이야기 신나게 하다가, 김기영 감독 이야기를 했다. 김대승 감독은 서편제 연출부를 같이 했으니까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기영 감독 이야기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외국의 거장이라면 작품을 손쉽게 챙겨볼 수 있기 때문에 재해석에만 몰두하기 쉽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봉준호 감독처럼 자기가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다 챙겨본 사람도 있고, 송일곤 감독은 김기영 감독 작품을 많이 보진 않았지만 직접적인 인간관계가 있었던 사례도 있다. 본인은 모르지만 김기영 감독을 아는 사람들이 보면 오마쥬라고 말할 만한 장면이나 시퀀스를 자신의 영화로 표현한 박진표 감독이나 김대승 감독 같은 경우도 있다.
인터뷰를 섭외할 때도 방송국의 취재방식으로 무조건 몇 개의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라 일단 내가 구한 김기영 감독의 테이프를 감독들에게 보낸다. 어떤 사람은 어느 작품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재밌는 상황들이 발생했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혈의 누>와 <고려장>이 닮았다고 할 텐데라고 말하니까 김대승 감독은 “그렇다면 영광이다”라고 하더라. 송일곤 감독도 <꽃섬>을 찍고 나서 이번에 <바보사냥>을 처음 봤는데 구조나 분위기가 너무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배우 윤여정씨만 해도 다큐멘터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김기영 감독이 1990년에 만든 <죽어도 좋은 경험>에서 이미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 나타난 캐릭터와 비슷한 연기를 하는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인상적인 인터뷰이나 인터뷰 대목을 꼽는다면?
=주연에 가까운 봉준호, 박찬욱, 류승완, 송일곤을 제외하면 장준환 감독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장준환 감독이 김기영 감독에게 던지는 질문에는 2006년 한국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한국영화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박기형 감독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김기영 감독을 평생의 라이벌이자 존경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 같다. 여고괴담의 카메오 출연을 고려하기도 했고, 김기영 감독님 장례식에 연출부를 데리고 가게 했다. 박기형 감독의 이야기에도 김기영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던 시절의 고민과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이 반영된다.
정지우 감독은 단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같이 지내면서 김기영 감독과 처음 마주쳤는데 당시는 자신이 상업영화 감독이 되기 전 주목받는 독립영화감독이었고 원로 상업영화 감독으로 그를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인터뷰할 때는 김기영 감독처럼 상업감독이 되어 그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에 도달한 것이다. 자기 인생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 사람은 신재인 감독이 있다. <육식동물>을 우연히 테이프를 보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기 연배의 감독인 줄 알고 만나면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었는데 알고보면 이 사람이 돌아가신 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사실 모든 감독이 김기영 감독님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홍준 감독은 김기영 감독님을 처음 만난 순간이 언제였나?
부천국제영화제 <하녀> 상영을 위해서 만났다. <하녀>를 세피아 프린트로 만들고 싶다고 하시더라. 연극원 김석만 교수가 LA에서 객원교수로 있을 때 김기영 감독님과 함께 있었던 적이 있었다. 김석만 교수가 그 때 사연을 나에게 편지로 적어보낸 적이 있는데 그 편지 끝에 김기영 감독님이 쓰신 시나리오에 대한 몇가지 계명이 적혀있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인연으로 닿아있었다. 오늘날 살아계셨다면 개봉영화를 모두 보는 건 불가능 했을 테니까 아마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아마 모두 보셨을 것이다. 젊은 감독들이 저 노인네는 누군데 매일 와서 영화를 볼까라고 의구심을 품도록.(웃음)
연출자로서 생각하는 김기영 감독님이 차지하는 영화적 위치랄까, 혹은 영화적 색깔을 표현한다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팜플릿에도 그렇게 썼는데, 신상옥, 유현목, 김수용에 비해 김기영 감독님은 특별한 인적 계보를 남기지 않았다. 세 감독님의 조수나 스탭들이 현재 감독으로 활동하지만 김기영 감독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영화적으로 보면 아이러니칼하게도 현재 한국영화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감독이다.
김지운 감독식으로 말하면 영화적 유전자라고 할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김기영 회고전을 원했던 이유도 “특히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할 영화”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루이 부뉘엘 같고, 빠졸리니 같고, 사무엘 풀러 같다. 어차피 네오리얼리즘이나 뉴웨이브 영화도 소설과 음악에서 발생한 20세기 운동에 모태가 있는 것이다. 김기영 감독도 그런 곳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 영화들이 가진 문화적 토대 혹은 뿌리를 한국에서는 김기영 감독이 가장 정확히 공유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미술의 아방가르드를 명확히 이해했고, 입센의 연극을 직접 연출했던 사실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상옥 감독은 열심히 헐리우드 영화를 연구했고, 유현목 감독은 리얼리즘의 영화적 관점을 확보하고, 이만희 감독은 장르적 쾌감을 추구했던 것처럼 김기영 감독은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다.
자기 영화의 시나리오를 모두 집필하기도 했지만, 원작이 있는 상황에도 원작과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드셨다.
=시놉시스만 읽고, 원작만 생각하고 영화를 보러가면 완전히 뒤통수를 얻어맞는 영화들을 만드셨다. 유작 <악녀>도 몇 개의 버전이 있다. 하지만 김기영 감독님이 생전에 매번 하시던 말씀처럼 ‘제작 전에 보여주는 시나리오는 완전한 시나리오가 아니다’라는 걸 감안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완고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렇다면 시나리오보다는 현장을 중시하는 감독이었다는 말씀인가?
=그건 아니다. 물론 철저히 완고를 쓰고 콘티를 짜서 작업을 하지만 현장에서 많이 바뀐다는 뜻이다. 이것은 당시 충무로 시스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금처럼 프리프러덕션 개념이 있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시나리오의 내용을 알려주면 배우나 스탭들이 매너리즘에 빠져서 임하고 연출자의 의견을 무시할까봐 취한 선택이다. 배우는 뻔하게 연기하고, 촬영도 편하게만 찍으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철저히 감독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도록.
김기영 감독님 영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없다. 지금은 김기영 감독님 세계로 빠져 있기 때문이다. 히치콕을 좋아하면 A,B,C로 그의 작품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기영 감독님 영화는 그게 불가능하다. 다 불균질적이고 재밌고 묘한 지점이 있다. 김기영 감독의 광팬인 감독들도 좋아하는 영화들이 다 다르다. <하녀>는 일종의 입문작이고 영화적으로는 가장 안정적이지만 김기영의 매력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우월한 위치의 영화는 아니다.
굳이 지금 당장 꼽으라면 <고려장>이다. 다섯번 봤는데 볼 때마다 놀랜다. 그렇다고 이게 한국영화가 잃어버린 <동경이야기>나 <칠인의 사무라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잘 만들었다는 식의 평가는 더욱 적합하지 않다. 컨텍스트에 주목해서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서구적인 이론틀로 접근하기 보다는 영화에 걸맞는 독특한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큐멘터리에서 연출자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경우는 한번 뿐이다. 나레이션도 거의 자막으로 처리됐다.
=가장 1차적인 정보만 주는 방식이다. 그 모든 것은 어차피 저를 통해 필터링된 것이다. 저라는 사람을 통해 바라보는 김기영 감독인 것이다. 인터뷰 대상 선정도 내가 했으니까. 그러나 재밌는 건 22명의 감독들을 모으면 2006년 한국영화의 스펙트럼이 보인다. 일반 방송 다큐처럼 구성해서 옆에 살았다는 정보가 있으니 내용에 넣자는 식이 아니었다. 무작정 김지운 감독을 인터뷰하다보니 옆집에 살았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을 살려낸 방식이다.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다. 김지운 감독의 롱테이크. 무려 3분 짜리. 그것은 김기영 감독님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이미지 같은 거다. 너무 영화적이다. 노회한 거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망설이는 김지운 감독의 모습이 지금의 한국영화가 고전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겹쳐진다. 인터뷰할 때부터 이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짧게 등장했지만 김태용 감독 경우도 그렇다. 가정생활을 알고 싶다는 질문. 그게 왜 궁금하지? 자기가 <가족의 탄생>을 방금 찍어놓고.(웃음) 그런 식으로 한국영화의 맥락을 이해하면 알 수 있는 내부자들의 농담이 많이 들어있다.
편집을 하면서 새삼 느낀 점은 한국에는 현재 너무 훌륭한 감독들이 많구나. 스크린쿼터 축소나 자본의 횡포로 이 사람들이 개인이 아니라 전체로서 찍고 싶은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된다면 한국의 엄청난 문화적 손실이고,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세계 문화의 손실이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에 나가서 지금 우리영화 한 편이 천만영화를 동원했다는 건 자랑할 일이 아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우리에게 회고전을 요청하고, 우리가 포럼과 개막식을 개최하고 하는 것이 오히려 영화강국이라는 느낌을 주는 일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의 회고전을 한다면 프랑스 사람들이 선택해서 자기들 의지대로 시행하는 것 뿐이지만 이번 김기영 감독의 회고전 같은 경우는 우리가 주도해서 진행하는 일이다.
오늘 포럼의 말미에 봉준호 감독의 “고전영화를 보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재밌으니까 보는 것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정곡을 찔렀다. 고전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공부와 훈련이 필요하다. 가령, 김기영 감독 영화를 보기 전에 제 다큐를 미리 봤던 사람과 아닌 사람의 반응은 다를 것이다. 고전영화는 은근한 재미가 있어서 한번 빠지면 충성도는 매우 높은 관객층이 확보될 수 있다. 이런 특성이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다.
고전영화가 상영되는 일은 한국에서 매우 힘들다. 모처럼 상영됐을 때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 흥행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쪽으로 지원이 가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지원이 되면, 더 좋은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는 선순환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으면 지원은 줄어들고 공간은 위협받고 사람들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김기영 감독 10주기라는 계기를 통해 시네마테크의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 나의 궁극적인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