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 <로보트 태권V>를 재료로 ‘인간 리플레이 시스템’을 가동했던 경험이 있는 세대에게 이 만화영화는 단순한 만화영화 그 이상이다. 여기에서 ‘인간 리플레이 시스템’이라 함은 물론 영화 관람을 마친 동네 애들이 모여 서열에 따라 배역 분담을 한 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오로지 몸 하나로만 재현해내던 그 시스템을 일컬음인데, 아아, 아직도 생각난다. 주인공 ‘훈이’ 역을 자임했던 최고 서열 어린이가 장면 재현을 빙자하여 날려대던 그 무차별적 옆차기와 대로변 빌딩 역을 수행했던 서열 최하위 어린이의 ‘무너져내리기’ 동작이….
그런데 <로보트 태권V>가 발표된 이래 30여년 동안 아직도 풀지 못한 해묵은 문제가 하나 있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로보트 태권V와 마징가Z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이다.
이에 대해 과거 <로봇 대백과사전> <새소년> <소년중앙> 등의 저명한 권위지들에서부터 오늘날의 인터넷 매체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설이 제기되어왔으나 사실 그 어떤 이론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감정 동화 조종 시스템 vs 전투기 결합 조종 시스템’이나 ‘무술 중심 로봇 vs 무기 중심 로봇’ 등등 이들 둘의 대결을 기술적으로만 접근하는 방법론이 그 원인이었던 바, 이러한 접근은 흡사 떡볶이를 단순히 고추장과 떡쪼가리의 조합으로만 간주하는 단순함에 다름 아니었다 하겠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관점이 필요하단 것인가. 뭘 물어. 그것은 당연히 영화적 관점일 것이다. 설령 로보트 태권V가 마징가Z와의 일대일 완타치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해도, 이어지는 후속타 없이 결국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데 그쳤다면 그것은 결코 승리일 수 없다. 바로 그런 면에서, 부디 열받지 마시라. 로보트 태권V는 마징가Z에게 명명백백히 완패하였다.
이 세상에 결코 공짜란 없다. 당장 손쉽게 이것저것 괜찮은 것들을 베껴다 쓰는 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창작에 있어 독약과 같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됐건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치러야 했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간단하게 남의 것을 가져다 쓴 대가를, 우리는 아직까지도 치르고 있다. <로보트 태권V> 이후 우리는 아직까지도 우리를 제대로 휘어잡는 국산 애니메이션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바로 그런 면에서, 로보트 태권V를 마징가Z에게 패하게 만든 것은 베끼기에 너그러운 우리 모두일 게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모름지기, 포기하는 순간이 바로 패배하는 순간이라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우리는 결국 태권V를 부활해냈다. 그러니 이젠 그렇게 되살아난 태권V한테 승리를 안겨줄 차례다. 굳이 마징가Z 따위를 상대로 한 승리가 아닌, 그 존재 자체로 승리가 되는 진정한 승리 말이다. 이번 30년 만의 <로보트 태권V> 재개봉이 그 출발점이 된다면, 김 박사도 메리도 지하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