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슬프지 않은 카리스마, <컷런스딥>의 데이비드 맥기니스
2001-02-16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오계옥

뉴욕의 한 레스토랑. 유명배우들과 영화제작자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이곳에서 웬 잘생긴 동양계 청년이 서빙을 하고 있다. 당시 뉴욕대 영화과를 졸업하고 데뷔작 <컷런스딥>을 준비하고 있던 이재한 감독은 그를 보는 순간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었다. 190cm가 넘는 키에 건장한 체격, 다소 나른한 음성과 도통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듯한 무표정한 얼굴. 그는 한눈에 이 청년이 카리스마 있는 보스, JD 역의 적임자임을 알아보았다. 이렇게 데이비드 맥기니스는 ‘발견’되었다.

<컷런스딥>은 개봉이 여러 차례 밀리다가 2000년 12월 개봉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디오숍으로 직행한 불운의 영화다. 그러나 영화의 운명과는 상관없이 보스 JD를 연기했던 데이비드 맥기니스에 대한 궁금증만은 여느 블록버스터 못지 않았다. <컷런스딥> 홈페이지에는 데이비드 맥기니스의 팬클럽 ‘JD’가 자체적으로 생겨났고 팬들은 그의 정보를 목말라했다. 물론 국내의 청바지, 이동통신 광고에 간간이 얼굴을 비추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JD(Jhone Doe: 정체불명)였다. 그런 데이비드가 올해 초 영국그룹 리알토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뉴욕 뒷골목의 어둠을 벗고 서서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JD와 닮은 듯, 또다른 사람이었다. 첫인상은 영화 속 JD 그대로 천마디 말보다 단 한번의 눈길만으로 좌중을 앞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아치형 눈썹과 쌍꺼풀 없이 긴 눈매, 그는 마치 군살없이 미끈하고, 조금의 느슨함도 허용하지 않는 독일 사냥개 같았다.“JD, 당신 미소는 슬퍼요. 미소란 원래 행복한 게 아닌가요?” <컷런스딥>의 벤(알렉스 매닝)은 JD(데이비드 맥기니스)를 보며 이렇게 묻는다. JD의 슬픈 미소가 어른이 되는 대가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영화 속 슬픈 카리스마와 달리 이를 드러낸 채 행복하게 웃는 법을 알고 있는 남자다. “말이 없고 조용한 부분은 JD를 닮았지만, 난 그보다 훨씬 활달하고 조크를 즐기는 사람이에요.”

데이비드는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계 스코틀랜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베트남전쟁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이동중 잠시 머문 한국에서 어머니를 만났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는 여러 번의 달콤한(?) 구애 덕에 그녀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을 위스콘신의 그린베이와 하와이의 호놀룰루에서 보낸 데이비드는 농구를 비롯해 모든 운동에 소질이 있는 스포츠 소년이었다. 경영학을 공부하던 대학 시절이 끝나고 “사랑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22살 되던 해, 그는 홀로서기를 결심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그리고 4년 뒤 그는 영화배우가 되었다.

얼마 전 내한한 데이비드는 팬클럽 회원들이 손수 극장을 빌려 <컷런스딥> 상영회를 준비한 덕분에 88살의 외할머니에게 손자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볼 기회를 선물했다. 이제 뉴욕으로 돌아가는 대로 알렉스와 친구들과의 공동생활을 정리(?)하고 조용히 자신만의 공간도 마련할 작정이다. “한곳에 머물기보다 늘 옮겨다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배우라는 일이 매력있다는 그는 <컷런스딥>의 이재한 감독이 준비하고 있는 다음 영화에도 출연할 계획이다. “물론 JD와는 아주 다른, 감정의 폭이 큰 인물”이라는 것이 그의 귀띔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mcinnis73@aol.com. 단 한국어는 아직 서투르니 영어로 보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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