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아버지의 이름으로, <성난 펭귄> 촬영현장
2007-01-30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이문식과 백윤식이 마을금고 내부 한쪽 귀퉁이에 서 있다. 백윤식은 이문식과 박효준을 향해 말한다. “헬리콥터 부른다고 여기 올 거 같아? 착륙할 데가 어딨어? 너희들 지금 영화 본 거 그대로 따라하려는 거지?” 평상복 재킷 위에 ‘경찰’ 표시가 나염처리된 방탄조끼를 입은 그는 사복경찰이다. 극중 직업에 상관없이 우아하게 곱슬거리는 머리는 당분간 백윤식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듯싶다. 이문식은 카키색 누비재킷에 허름한 바지를 입고 장총을 들었다. 행색과 낯빛이 말할 수 없이 초췌하다. 싸구려 얼룩무늬 바지를 입은 박효준의 모양도 다르지 않다. 둘 다 경찰을 향해 총구 노리는 폼이 어색하다. 인질로 붙잡혀 카운터 아래 모여 앉은 마을금고 직원들이 목소리를 낮춘다. “초짜 같지 않아요?”

<성난 펭귄>에서 <뜨거운 오후>로, 다시 <성난 펭귄>으로 개봉명을 확정한 이 영화는 암컷 대신 수컷이 알을 품는 펭귄의 습성에서 아이디어를 빌리고 있다. 주인공 배기로(이문식)는 간판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홀아비다. 아홉살 난 딸 연희(김유정)의 뇌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사채를 구했는데 그마저 날치기당해 은행강도짓에 뛰어들었다. 직접 쓴 시나리오로 데뷔작을 찍는 박상준 감독은 “딸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상황이다. 부성애와 같은 원초적인 감정의 표현이 사회규범과 질서에서 벗어나더라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나 스스로 궁금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연출 의도를 명료하게 밝힌다.

극중 주무대로 쓰이는 마을금고는 양산 시내에 지어진 오픈세트다. 금융권에서 좀처럼 쓰지 않는 갈색계열을 브랜드 컬러로 썼다는 점만 빼면 모든 것이 진짜 같다. 건물 외부의 낡은 느낌까지 확실한 이 세트가 촬영 초반에는 주민에게 실제 은행으로 오해도 많이 샀다고. 소도시 규모에 걸맞은 작은 은행 내부에서 찍는데 이날 카메라에 걸리는 주요 인물은 8명이나 됐다. 성난 부성애뿐 아니라 저마다 사연있는 인물들이 한데 얽혀 엉망진창이 되는 어느 하루를 보여주는 것이 <성난 펭귄>의 목표. 코미디보다는 휴먼드라마쪽에 방점이 찍혔다고 감독과 출연진이 강조한다. 2월 초 촬영 종료 예정이며 개봉은 가족의 달 5월 예정.

정당함과 부당함의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박상준 감독 인터뷰

국민대 미대를 졸업한 박상준 감독은 단편영화 <심문>, 조규찬의 뮤직비디오 <이해할께>를 찍고 세편의 장편영화 조감독을 거쳐 데뷔작을 찍게 됐다. 이 영화의 기획을 함께한 김성진 PD와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중에 “딸은 아픈데 돈은 없고, 그러면 어떡하나?”라는 화제에 두 사람은 ‘편의점이라도 털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고 한다. “법없이도 살 주인공인데 딸 때문에 범법행위를 저지르게 됐다. 우리 영화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구분이 좀 모호하다. 어떤 것이 정당하고 부당한 것인지 한번 질문해보고 싶었다.” 한날 한시 한 공간에 여러 인간군상이 모여 벌어지는 이야기 구조에 관해서는 시나리오 작업 때 모델로 삼은 영화들이 있다고 덧붙인다. “장르적인 쾌감 전달과 리얼리티 부여의 목적이 모두 있다.” 박상준 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백윤식과 이문식 두 배우를 실제로 모델로 두었다고 한다.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카피하거나 하려는 의도는 없다. 진짜로 같이 하게 되어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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