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위험한 사돈, <못말리는 결혼> 촬영현장
2007-01-30
사진 : 이혜정
글 : 김민경

우아한 샹들리에가 드리워진 강남 부유층의 한 집. 저 멀리 복도 끝으로 드레스 자락을 사각사각 스치며 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누군가 해서 쫓아갔더니, 여느 할리우드 배우 부럽지 않게 가슴선 깊이 팬 ‘클리비지’ 패션을 선보인 그는 요즘 한국 코미디를 이끄는 중견배우 군단의 선두주자 김수미다. 집안에서도 섹시한 립스틱을 바르고 곱게 올림머리를 한 그가 화장실 앞에서 “오 마이 갓…”이라는 긴 탄식을 터트리고 있다. 그를 경악하게 한 건 물을 쫄딱 맞은 채 비장하게 호통을 날리는 임채무. “수맥이 터졌습니다!” “예…?” “봐라! 수맥이 막히다 못해 터져 넘쳐 흐르는 걸! 여긴 사람 살 곳이 아니야!” 사실 비데가 뭔지 몰라 이것저것 눌러보다 그만 엉덩이 대신 얼굴을 씻은 것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제2세트장에서 촬영 중인 <못말리는 결혼>은 가난하지만 전통을 지키고 사는 풍수지리사 박지만(임채무)의 당찬 딸 은호(유진)와 강남 부동산 졸부 심말년(김수미)의 철없는 아들 기백(하석진)이 벌이는 ‘결혼 성사 대작전’. 꼬장꼬장한 박지만은 허영심 가득한 마마보이 기백이 가당치도 않고, 가난이라면 치를 떠는 심말년은 촌티가 줄줄 흐르는 은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부동산 문제까지 얽혀 얼굴만 마주치면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깎아내리기 바쁜 심말년과 박지만은 아들 딸을 갈라놓기 위해 연합작전을 펼치다가 결국 모종의 유대마저 느끼게 된다. 여기에 박지만의 동생 지루(윤다훈)와 기백의 누나 애숙(안연홍)이 가세해 코믹 연기의 감초 역할을 한다.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두 집안이 점점 마음을 열고 화목한 집안이 되어간다. 김수미와 임채무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코미디로 웃음을 유발하는데, 그 조화를 기대해 달라.” 가요계의 요정을 거쳐 드라마로 연기자 데뷔한 유진은 이 영화로 스크린에 첫 출연한다.

오늘 촬영분은 상견례차 지만과 지루가 말년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 김수미와 윤다훈은 ‘애드리브 배틀’을 주고받으며 현장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한때 비데 광고를 같이 찍었던 윤다훈과 안연홍은 비데 앞에서 광고 패러디 연기를 선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가문의 영광>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가문의 부활-가문의 영광3>의 김영찬 작가가 시나리오를 맡은 이번 영화는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선생 김봉두>의 조감독을 거친 김성욱 감독의 데뷔작이다. 두 집안이 과연 어떻게 사돈을 맺게 될지는 4월 중에 확인할 수 있다.

풍수지리사 박지만 역의 임채무

“영화 현장은 빙하시대 같다”

이날 공개된 장면에서 가장 고생을 한 건 테이크마다 변기에 머리를 박고 수없이 물을 맞아야 했던 임채무다. 연기 생활 40년째, 그동안 멜로드라마 속 우수어린 남자를 연기하곤 했던 임채무는 ‘돼지바’ 광고와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 코믹 중견배우에 합류했다. 하지만 임채무는 코믹한 뭔가를 보여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아직 낯설다. “남들은 웃긴다고들 하는데,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훌륭한 배우는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가 감독이 요구할 때 팔딱 뛰어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그렇게 웃겼다면, 내 능력은 그중 30, 40%일 뿐 100%을 만들어주는 건 다른 분이죠.” 애드리브보다 정통 연기에 익숙한 그는 김수미, 윤다훈 등과 어떻게 차별화된 웃음을 선보일지 진지한 고민에 싸여 있다. 33년간 브라운관의 터줏대감이었지만 처음 경험하는 영화 현장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빙하시대에 와 있는 것 같다”고 한다. “혹한 추위 다음에 따스한 웃음이 온다고 할까, 아주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못말리는 결혼> <복면달호>가 개봉하는 2007년은 그에게 영화배우 원년의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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