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미녀는 괴로워>가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10위에 올랐단다. 1월24일까지 전국 585만명을 넘었고 600만명 돌파가 기정사실로 보인다는 것이다. 종전까지 역대 흥행 10위 자리를 지켰던 <공동경비구역 JSA>를 10위권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이니, 새삼 놀랍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쉬리>의 기록을 넘었느니 못 넘었으니 다투며 한국영화 역대 흥행 1위 자리에 이름을 올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코미디영화로는 <투사부일체>가 <미녀는 괴로워>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했지만 조만간 추월당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를 들이는 코미디 장르라 편당 수익률로 따지면 상위 5위 안에 들 만한 결과다. <미녀는 괴로워>가 이런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 김아중의 신선한 매력?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래? 성형이라는 소재의 힘? 대중영화의 기본기를 지키는 연출력? 눈길을 사로잡는 마케팅과 적절한 배급 타이밍? 여러 가지를 언급할 수 있겠지만 <미녀는 괴로워>를 잘 만든 영화의 전형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야기의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고 깊이있는 캐릭터 탐구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미녀는 괴로워>의 인기비결엔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개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녀는 괴로워>는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케케묵은 신데렐라 스토리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성형술이 요정의 마법지팡이를 대신하고, 한나가 목소리 대역을 했던 미녀 가수가 나쁜 계모 역을 하며, 성공가도의 음반 프로듀서 상준이 왕자님의 자리에 있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의 구박을 받았지만 한나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핍박받는다. 무도회에서 12시 전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금기를 <미녀는 괴로워>는 성형 사실을 알리면 안 된다는 것으로 바꾼다. 신데렐라가 구두를 잃어버리듯 한나의 성형 사실은 알려진다. 여기서 잃어버린 구두의 주인을 찾아나서는 인물은 두 사람. 한나의 아버지와 한나의 왕자님 상준. 구두의 주인을 찾았을 때 하늘엔 불꽃이 터지고 온 세상이 “괜찮아, 괜찮아”를 외치며 축복한다. 이 영화를 두고 성형찬가냐 아니냐를 논하는 건 논점을 벗어나는 이야기 같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성형은 마법지팡이다. 이 마법지팡이가 꽤 그럴듯해서 우리 중 누구도 한나처럼 될 수 있다는 착각을 생산한다. 그녀가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 가 되지 않고 재능을 인정받아 가수로 성공한다는 것은 세태에 어울리는 각색이다. 지금 시대의 꿈은 왕가나 재벌가의 며느리보다 연예계 스타쪽이 가깝다. 원작 만화와 달리 영화는 온전히 현대판 신데렐라 판타지의 길을 간다. 그리하여 <미녀는 괴로워>는 우리 사회에서 외모로 선택받지 못한 절대 다수에게 그래서 이룰 수 없었던 꿈을 상기시키고 그걸 대신 이뤄내는 한나를 응원하게 만든다. 또는 외모 중심 사회에서 받았던 설움이나 콤플렉스 같은 것들이 어두운 극장 안에서 눈물이 되어 흐른다. 그 반응은 우리 사회의 외모 차별과 성형 논란이 심할수록 격렬해진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화면에 유니의 자살 소식과 <미녀는 괴로워>의 흥행 소식이 나란히 실린 걸 봤다. 영화에선 한나가 대중의 사랑을 다시 얻게 됐지만 현실에선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의미심장하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에서 미녀는 괴롭고 미녀가 아니면 더 괴롭다. 그 속에서 뚱녀가 미녀가 되고 성형미녀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영화를 트는 극장은 더없는 현실 도피의 장소다. 우리는 <미녀는 괴로워>에 감동하며 무엇을 외면하고 어디에서 도망가고 싶었던 것일까. 혹시 유니의 죽음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