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정혜>를 보다 ‘그녀의 아픔을 당신이 어떻게 알아?’라고 묻고 싶었다. 여성의 내밀한 트라우마에 다가서려는 남자가 왠지 괘씸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이후 이윤기는 여성드라마 작업을 계속해왔고, 이쯤에서 무례에 대한 용서를 빌어야겠다. 비록 그의 영화가 여성에 대한 성찰에까진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대상으로 욕망되지 않는 <여자, 정혜>의 정혜와 <러브토크>의 써니와 영신 그리고 <아주 특별한 손님>의 보경은 한국영화에서 분명 낯선 여자의 이름이며, 아마도 이윤기는 여성의 포르노그래피를 시도하지 않는 한국의 유일한 상업영화 감독일 것이다. <아주…>는 ‘가짜 부녀의 하룻밤 상봉기’에서 ‘잃었던 자아를 되찾는 여자의 이야기’로 바뀌는 영화다. 타인의 양말을 신어봤다가 결국엔 자기 양말 안으로 발을 넣는 것처럼, 남의 이름을 돌려준 뒤 마침내 자기의 이름을 말하는 것처럼, 두개로 나뉜 혹은 타자가 설정한 정체성으로부터 꼭 숨겨진 자기 마음속으로 다가가는 여자의 걸음걸음이 느리되 빛난다. <아주…>에서 어떤 이질감을 느꼈다면 그건 일본산 단편소설이 원작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윤기의 인물에 아직 익숙하지 않음에서 기인한다. DVD 부록 중 감독과 배우의 다정다감한 음성해설이 듣기 편하지만 나머지는 소소한 것들뿐이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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