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타임즈>의 원제는 ‘최호적시광’, 즉 최고의 순간이다. 허우샤오시엔은 1966년의 허름한 당구장과 1911년의 고급 유곽, 2005년의 테크노바를 오가며 세 가지의 연애를 통해 대만의 역사를 성찰했다. 그 세 가지 색 사랑의 주인공의 이름은 모두 ‘첸’. 장첸은 1966년의 첸처럼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당구를 쳤고, 2005년의 첸처럼 로모카메라로 장난을 치곤 한다. 2005년의 첸이 자신의 집 한쪽 벽을 장식한 사진은 평소에 장첸이 찍었던 사진을 그대로 활용했다. 또한 첫 번째 에피소드의 배경이 된 60년대는 그가 16년 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통해 이미 ‘경험’했다. 소년 장첸은 에드워드 양의 긴 작업시간 동안, 실제 그 시절을 회상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60년대를 느꼈다.
“가장 힘든 에피소드는 청 말기를 배경으로 지식인 남자와 고급 창녀의 사랑을 다룬 두 번째 것이었다. 낯선 시대이기도 했고, 너무 위대한 사랑이라 나 같은 사람이 느끼고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성영화이기 때문에 목소리없이 연기하는 것, 천천히 패닝하는 카메라와 속도를 맞추는 것도 어려웠다. 게다가 감독님께서 에피소드마다 해당 시대에 대한 자료를 주셨는데 그 시대에 대한 자료가 제일 두꺼웠다. (웃음) 휴가 나온 군인이 여자를 찾아다니는 첫 번째 에피소드는 감독님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어찌나 계속 그 말씀을 하시는지 나중엔 거의 외울 정도였다. (웃음) 그 에피소드의 마지막, 비오는 버스정류장에서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손을 잡는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고,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카메라가 멀리서 잡는 게 전부였다. 둘이 손을 잡는 게 좋겠다 싶어서 한번 해봤는데, 감독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하셨다. 60년대 남자들은 여자의 손을 처음 잡는 게 가장 도전적이고 떨리는 순간이라고 한다. 사실 첫 번째 스킨십이라는 점에서 지금도 손을 잡는 건 가슴 떨리는 순간 아닌가. (웃음)”
에드워드 양(<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마작>), 왕가위(<해피 투게더> <2046> <에로스>), 리안(<와호장룡>), 허우샤오시엔…. 중화권 거장 혹은 즉흥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는 감독들과의 계속된 작업 결과, 그는 영화에 창조적으로 도움을 주고, 저마다 다른 작업 스타일에 적응하는 방식을 몸에 익혔다. 그러나 거장의 작업 비밀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삼간다. 대신 그들에게서 얻은 가장 큰 가르침은 영화를 향한 열정이라고 말한다. 최근, 그를 필요로 하는 거장 리스트에 김기덕 감독이 올랐다. 장첸은 김기덕 감독의 열다섯 번째 영화 <숨>에서 자살을 시도하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형수로 출연했다.
“김기덕 감독님과 허우샤오시엔 감독님은… 일단은 외모가 비슷하다. 김기덕 감독님이 화내실까봐 아직 그 말은 못했지만. (웃음) 순수하다는 면에서 성격도 비슷하다. 하지만 허우 감독님은 다큐멘터리처럼 카메라를 활용하며 공간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배우는 언제 컷을 부를지,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일지 신경쓰지 않고 그냥 자신의 할 일을 하면 된다. 한신을 며칠씩 찍고, 테이크도 여러 번 필요하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님은, 매우 빠르다. 1주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4회 출연하고 영화 한편을 찍었다. 얘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웃음) 불안하지 않았냐고? 연기자로서 작품에 임할 땐 항상 불안하고, 덕분에 집중이 가능해진다. 김기덕 감독과의 첫 촬영 이후 그 스타일에 적응이 되더라. 한국 관객은 그분과 그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나한테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난 그분의 작품을 많이 봤고, 실제로 매우 좋아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부분이 바로 그의 매력인데, 난 그게 좋다.”
한번의 만남을 마음에 새기고 입대한 그 남자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 전국을 헤맨 끝에 자신을 찾아낸 남자를 향한 그 여자의 세상없이 행복한 미소. <쓰리 타임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채운 것은 우리가 한번쯤 경험한, 혹은 경험했다고 믿는 순수의 증거들이다. 그간 우리에게 각인된 장첸의 이미지는 그처럼 소중하고 연약한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 그런 사랑을 경험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장첸은 이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농담을 던지고 성인 남자의 웃음을 짓는다. “잘 봤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순수한 남자다. (웃음)” <에로스>가 개봉할 무렵 인터뷰할 때 드리워져 있던 소년의 우수는 이제 그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쉬움보다는 기대가 앞선다. “이미 지나간 시기, 회상해도 다시 오지 않는 시기, 그래서 아름답고 소중한 시기”를 의미한다는 그의 ‘최호적시광’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소년이 아니라 남자 같다고? 좋은 말인가, 나쁜 말인가. (웃음) 그 말에 대해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그렇게 크는 것 아니겠나. 서른살이 되고 난 뒤, 나에게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시간 관리가 점점 중요해지는 것 같다. 훌륭하신 감독님들과 많이 작업했지만, 그 자체가 나에게 만족감을 주기보다는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영화를 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