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왕실과 총리를 통해 보는 영국 사회, <더 퀸> 첫 공개
2007-02-01
글 : 김혜리

일시 1월31일
장소 서울극장

이 영화
1997년 5월, 18년에 걸친 보수당 치세가 끝나고 영국 노동당이 집권한다. 이에 엘리자베스 2세(헬렌 미렌)는 환호는 하지 않지만, 그녀가 윈스턴 처칠 이래 열 번째로 맞이하는 총리인 토니 블레어를 우아한 포즈로 인준한다. 넉 달 후인 8월30일,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후 국민의 지지와 왕실의 미움을 샀던 다이애나 전 왕자비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여름 별장에 머물던 여왕 가족은 법적으로 이미 왕족이 아닌 다이애나의 죽음이 사적인 문제라며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않지만, 영국 대중의 비탄은 미디어의 부추김을 받아 냉혹한 왕실에 대한 분노로 번져간다. 측근의 조언에 따라 ‘민중의 프린세스’라는 표현으로 잽싸게 민심을 잡은 토니 블레어는 국민과 여왕 사이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힌다. 군주로서 교육받고 평생을 산 늙은 여왕은 자신이 아는 유일한 가치대로 행동하지만 국민들로부터 고립된다.

100자평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밴> <더티 프리티 씽스> 파이를 자르듯, 영국 계급사회의 단면을 노출시켜 온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이 영국 왕실과 총리에게 나이프를 댔다. 이 영화에서 버킹검과 다우닝 가 사람들은 신분 사회 최상층과 중산층의 행동양식을 흥미롭게 전시하는 표본이다. 프리어즈가 선택한 무대는 영국 전역이 다이애너 전 왕자비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마비된 1997년 여름. 왕실은 국민감정보다 전례를 앞세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신임 총리 토니 블레어는 조정자 역을 수행하는 동안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한편 기묘하게도 왕실을 비호하는 입장이 된다.
TV 시리즈에서 엘리자베스 1세로 분한 바 있는 헬렌 미렌과 마찬가지로 프리어즈 감독이 만든 TV 드라마 <딜>에서 토니 블레어 역을 이미 맡았던 마이클 쉰의 연기는, 실존인물의 모사를 영화적 해석과 교묘하게 결합했다. 많은 자료 필름과 실제 사건의 진도를 따라 흘러가는 <더 퀸>에서 주목할 대목은 여왕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키는 사적이고 비밀스런 체험을 상상한 허구적 장면들이다. 그 중 한 장면에서 완고한 여왕은 죽음을 앞둔 사냥터의 아름다운 사슴을 바라보며 불행했던 며느리를 떠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찰스 왕자, 필립 공, 토니와 쉐리 블레어 부부 같은 인사들의 성향과 내력을 안다면 보는 재미가 더할 영화. 여왕을 비롯해 감정을 억제하는 매뉴얼이 몸에 익은 구식 영국인이 다수 등장하는 만큼 의역하면 동어반복처럼 들리는 대사가 많다. 통상보다 훨씬 오리지널 대사에 충실한 자막 번역이 어울렸을 듯하다.
김혜리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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