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쉽지 않네, 베트남에서 공포영화 찍기, <므이> 촬영현장
2007-02-06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여기서 다 해결해야 합니다.” 호이안의 포호이 호텔 앞 선착장. 제작진 몇몇이 “촬영장엔 화장실이 없다”며 각오 단단히 하라고 엄포부터 놓는다. 낮술에 취해선지 햇살에 그을려선지 대낮부터 코가 빨간 어부들을 지나쳐 헝보 강을 통통배로 거슬러 오른 지 30여분. 호치민, 달랏, 다낭을 거쳐 20일 넘게 강행군 중인 까만 얼굴의 <므이> 스탭들이 하나둘 눈에 띈다. “국가 허락 받아야지, 성장(星長) 허락 받아야지. 또 군 허락 받아야지. 주변에 널려 있던 벽돌은 주인에게 사서 다 치워야 했고.” 제작사인 빌리픽쳐스 이관수 대표는 극중 ‘므이’의 집 세트 부지를 확보하기까지의 갖은 고생담부터 꺼낸다. 그래도 표정은 밝다. ‘공포영화 제작 및 상영 금지’라는 원칙을 고수해온 베트남 정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베트남에서 상영된 유일한 공포영화가 뭔 줄 알아요? <귀신이 산다>야. (웃음)”

한편, 빌리픽쳐스 김범식 공동대표를 보고선 “촬영장에 왜 왔느냐”며 고래고래 소리쳤던 김태경 감독은 언제 소란을 피웠냐는 듯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그리곤 무전기로는 의사 전달이 양이 안 차는지 세트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내 머리 만지듯이 쓰다듬어줘.” 김 감독은 극중 서연 역의 차예련에게 나무를 쓰다듬을 때 좀더 감정을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쉬지 않고 농담을 섞어가며. “공포영화 현장이야말로 코미디영화 찍듯이 해야 한다”는 감독의 오버 액션을 두고, 차예련은 “저러다가도 배우가 원하는 거 못해주면 한동안 말 안 한다. 그럴 때 정말 무섭다”고 한다. 서연의 부탁에 베트남에 이끌려 와 저주의 혼령 므이를 겪게 되는 윤희 역의 조안은 “감독님이 곧잘 <웃찾사>나 <개그콘서트> 흉내를 내면서 분위기를 돋우려 하는데 외려 썰렁해질 때가 많다”고 거든다.

사실 감독의 개인기보다 스탭들이 더 곤혹스러워하는 건 변덕스러운 날씨다. 이날도 오후가 되자 쨍쨍하던 태양은 사라지고, 어느새 빗방울이 떨어진다. “누가 담요 덮어?” 남진아 조명감독이 목소리를 높인다. 비를 막겠다고 바나나 잎을 얹은 지붕에 스탭 중 누군가 두툼한 담요를 다급히 두른 것이다. “날씨 때문에 미치겠어요.” 남 조명감독은 로케이션 동안 흰머리가 한줌은 생겼다며 머리를 내보인다. 하지만 불평도 잠깐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많게는 한달 가까이 축제 분위기에 빠져든다는 설 이전에 나머지 촬영을 끝내려면 손놀림을 바삐 할 수밖에 없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뒤 죽음을 택한 100년 전 므이의 혼령이 복수를 거듭한다는 줄거리를 통해 “강자의 행복은 약자의 고통이고, 약자의 고통은 분노로 표출됨을 보여주고 싶다”는 <므이>는 2월 중순 현지 촬영을 끝내고 잰걸음을 더해 오는 6월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베트남엔 공포영화가 없었다”

푹상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딩 타이 빙

딩 타이 빙(32)은 현장에서 ‘불도저’로 불린다. 헌팅, 촬영 허가, 배우 섭외, 필름 반출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가 나선다. 베트남 최대 제작사인 푹상엔터테인먼트(대표인 푹상은 베트남의 유명 코미디언이다)의 막내 프로듀서인 그는 고충처리반 반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999년부터 국립영화제작소인 해방영화사에서 편집, 마케팅 일을 하다 2003년부터 푹상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이전까지 공포영화가 없었다. 기회가 되면 꼭 도전해보고 싶었던 장르”여서 <므이>에 승차했다고. “일상 묘사가 디테일해서 한국영화가 좋다”는 그는 프로듀서가 아닌 개인적인 취향을 앞세운다면 “불교의 난해한 개념들을 알기 쉽게 풀어낸”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최고라고 덧붙인다. “제작 직전까지 공포영화가 관객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는 그는 이젠 “새로운 장르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어떻게 한데 모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베트남에도 귀신 이야기가 많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아서. 아직 예민한 부분이라 적극적으로 덤비진 못하겠지만 언젠가 직접 만들어볼 계획이다. 지금은 공부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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