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코스모폴리탄의 통찰력을 엿보다
2007-02-07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이집트의 국민감독 유세프 샤힌 특별전, 2월 8일부터 1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우리에게 타자는 어떤 의미일까요?” 이집트의 국민감독 유세프 샤힌(1926~)은 <알렉산드리아…뉴욕>에서 머리가 희끗한 영화감독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 질문은 지난 50여년간 작품 활동을 지속해온 유세프 샤힌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이자 그가 고수하는 영화의 윤리이기도 하다. 그러한 태도는 과거 아랍의 역사부터 9·11 테러 이후의 현실까지를 포괄하는 그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지배한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유세프 샤힌 특별전에는 이 부지런한 작가의 신념을 확인할 수 있는 여섯편의 영화가 준비되어 있다.

이집트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변호사의 아들로 자란 샤힌은 어린 시절 기독교식 교육을 받고 미국 LA의 연극학교에서 공부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이집트의 근대화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련의 영화들을 만들고 1960년대 후반 결국 정부와 갈등을 빚은 뒤 시리아로 망명한다. 종교, 계급, 인종적 문제에 대한 그의 코스모폴리탄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은 이처럼 다양한 문화적 경험 혹은 소수자의 위치에 익숙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언제나 대중적인 형식 안에 녹여낸다는 사실이다. 뮤지컬과 멜로드라마로 이루어지는 이집트 상업영화의 관습적 틀은 그의 손에서 다양한 알레고리, 메타포 등과 결합하여 현실에 대한 강력한 발언으로 탈바꿈한다. 이를테면 그의 멜로드라마는 계급사회에 대한 가장 극적이고 유용한 비판의 도구이다.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의 오프닝작으로 초청된 <타인>이 바로 그 예이다. 이 작품은 통속적인 멜로 속에서 이집트 근대화의 환부를 폭로하는데, 특히 근대화의 과정에서 이득을 챙기는 상류층 악덕업자들과 미국 비즈니스업계의 관계가 잘 묘사되어 있다.

사실 샤힌의 작품들은 내용과 형식에서 미국에 대한 양가적인 입장을 보인다. 그건 미국에서 영화적 발판을 닦은 아랍인으로서 감독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샤힌의 인생을 반영한 <알렉산드리아> 연작에는 그러한 고민과 태도의 변화가 눈에 띈다. <알렉산드리아, 왜?>에서 예술가가 되고 싶은 소년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 유일한 꿈이다. 파시즘이 창궐하던 시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는 민족, 세대, 계급적 갈등의 콜라주는 물론이고 실제 뉴스릴과의 교차편집도 주목할 만하다. 할리우드 뮤지컬을 모방한 몇몇 장면에서는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샤힌의 애정이 묻어난다. 연작의 마지막으로 보이는 <알렉산드리아…뉴욕>에서는 그 소년이 유명한 감독이 된 뒤, 미국에서의 과거를 회상한다. 환상 속에서 할리우드와 사랑에 빠졌던 소년은 전 지구적 시대, 미국의 정치적 횡포를 비판하는 노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미국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 없다고 고백한다. 이 모호한 심정은 샤힌 자신의 것으로서 그가 어떤 식으로든 에드워드 사이드를 자기 영화의 참조 지점 혹은 지향점으로 삼는 데에서도(아마도 사이드가 1세계를 비판하는 팔레스타인 출신인 미국의 저명 학자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타인>의 도입부에 사이드를 출연시켜 ‘나 혹은 너’가 아닌 ‘우리’의 정치학에 대한 견해를 듣고 <알렉산드리아…뉴욕>에서는 사이드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시대적 배경의 환기와 뮤지컬에 대한 애착, 미국에 대한 언급과 함께 샤힌의 작품을 구성하는 또 다른 특성은 종교에 대한 태도와 ‘앎에 대한 의지’다. 샤힌에게 종교적 교조주의는 가차없는 비판의 대상이며, 앎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인간의 의무이자 삶의 윤리이다. 성서의 요셉 이야기를 이집트적인 관점으로 다시 엮은 <이주자>와 중세의 철학자 아베로에스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운명>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특히 <운명>에서 이슬람 원전주의자들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수많은 저작을 통해 계몽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준 아베로에스의 논리는 여전히 급진적이다. 이성적인 사유를 추구하고 코란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그의 논리는 맹목적인 종교적 신념에 대한 샤힌의 경고로 읽힌다. 불길에 휩싸인 책 더미를 뒤로한 아베로에스의 눈빛,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사상(지식)은 자유롭다.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문구는 결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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