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다카시는 <데루수 우잘라>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의 곁에서 20년 가까이 조감독을 지낸 인물이다. 당시라면 구로사와가 대규모 사극에 열중할 때인데, 고이즈미는 웅장한 사극보다 <마다다요> 같은 드라마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 같다. 구로사와의 유작 시나리오 <비 그치다>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구로사와의 영화에 함께 참여한 배우 데라오 아키라를 데리고 세편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오가와 요코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사고로 뇌를 다친 수학자와 그의 집에서 일하게 된 파출부 모자의 이야기다. 완전수, 무리수, 오일러 공식 같은 숫자 공부를 되새김질하는 게 괴롭겠지만, 가장 소중한 진실은 마음속에 있다는 한 남자의 가르침을 느끼게 되면 그만이다.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기억 속에서 한 여자와 숫자의 곁을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킨 남자의 존재 의미가 남다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DVD는 근래 연이어 소개했던 일본 인디영화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감동의 깊이가 그중 최고인 데 반해 DVD의 만듦새는 가장 못한 편이다. 평균적인 영상을 못 넘는 본편과 무대인사 등으로 고만고만하게 채워진 부록들이 아쉬운데, 다양한 수의 개념을 재학습하도록 꾸민 ‘수학교실’로의 등교는 그중 재미있는 경험이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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