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 리뷰]
세상은 소통되지 않는다, <바벨> 첫 공개
2007-02-07
글 : 문석

일시 2월7일
장소 서울극장

이 영화
모로코의 한 사막지방에 사는 한 가족은 염소떼를 위협하는 자칼을 사냥하기 위해 이웃으로부터 장총을 구입한다. 외지로 일을 나가야 하는 아버지로부터 양떼를 지킬 것을 지시받은 두 아들은 장난삼아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이 총알은 불행히도 버스 안에 타고 있던 미국 관광객 수전(케이트 블란쳇)의 몸을 관통한다. 돌연한 사고로 오지에서 수전을 돌보게 된 남편 리처드(브래드 피트)는 미국 샌디에이고 집에 있는 멕시코인 가정부 아멜리아(아드리아나 바라자)에게 두 아이를 계속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고향인 멕시코에서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 아멜리아는 베이비 시터를 구하지 못하자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 마을로 향한다. 그녀는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조카 산티아고(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실수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한편, 일본 도쿄에 사는 10대 소녀 치에코(기구치 링코)는 모로코에서 테러분자의 소행으로 보이는 총격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스쳐지나간다. 농아인 치에코는 최근 어머니의 자살사건을 접했면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더욱 더 큰 단절감을 느낀다. 과연 이 분절된 세계 속에서 완전한 소통은 가능할 것인가.

100자평
<바벨>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소통에 관한 영화다. 인간의 바벨탑 축조 욕망을 본 신이 태초 똑같았던 인간들 사이의 언어를 흐뜨려놓았다는 성서의 이야기처럼, <바벨> 속에는 미국, 멕시코, 모로코, 일본 등 4개 지역에서 5개의 언어(수화가 포함된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어긋나는 소통을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단지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소통을 가로막는 진정한 장벽은 상대방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두려움, 그리고 무지다. 특히 서구는 비 서구 지역과 좀처럼 소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관계를 떼어버리려 애쓴다.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을 통해 하나의 사건이 여러 사람에게 일으키는 파장을 관찰했던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이 영화에선 한발 더 나아가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일으키고, 또 거기서 파생되는 다른 사건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연쇄적인 사건은 지역을 건너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까지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벨>이 묘사하는 세계는 3세계를 배제하는 1세계의 모습을 반영하는 정치학적 지형도이기도 하지만, 일촉즉발의 사건이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운명론의 자장이기도 하다. <바벨>은 2월25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이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문석/ <씨네21> 기자

'바벨'은 창세기에 나오는 바빌로니아의 고대 도읍이다. 알다시피 하늘에 닿으려고 쌓은 탑에 신이 격노하여, 인간의 언어를 혼잡케하고 온땅으로 흩으셨다. 인간문명의 오만함이 인간들 사이의 단절을 초래했다는 신화적 설명이다. 911이후 미국은 테러에 대해 노이로제 상태이고, 모두가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는 피해의식으로 전세계 어디를 가도 평화롭지 못하다. 또한 미국은 불법 이민자들의 유입을 막기 위한 험준한 울타리로 자신들을 '보호'하지만, 그 울타리는 자신들에게도 위험천만한 장벽이 된다. '국무부'에서 전세계를 '관리'하고, 수많은 이민자들의 노동으로 돌아가는 나라이건만, 미국은 다른 세계와 소통하려 하지 않으며, 그들 자신의 평화와 자유를 저당잡힌 채, 자신들의 '패닉룸'에서 죽음의 공포를 맞딱뜨리는 중이다. 영화 속 네개의 에피소드 중 세개는 미국이 처한 자승자박의 곤경을 보여주고, 좀 이질적인 일본의 에피소드는 단절로 인한 고통이 비단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명사회의 인간이 처한 보편적 문제임을 드러내준다. 사람들이 들끓는 마천루에서 홀로 접촉과 교감을 간절히 원하는 소녀는 과연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열린마음으로 타자를 끌어안지 않는 이상, 자유와 평화는 요원하다는 뼈아픈 교훈을 알싸하게 안기는 영화이다. (제발 이 영화를 미국인들이 많이 많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황진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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