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왕년의 팝스타와 작가 지망생의 히트곡 만들기!
2007-02-18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휴 그랜트·드루 배리모어 주연,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뉴욕 시사기

혹시 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 중에 왬(Wham)이나 듀란듀란(Duran Duran)의 왕팬이 있는지. 가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 잡지 사진을 모아 책받침을 만들고, 팬클럽 티셔츠를 입고, 친구들과 라디오 앞에서 빌린 아버지 라이터를 켜서 흔들었던 기억이 나는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코미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Music and Lyrics)은 벌써 20년이 지나버린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준다.

미국 내에서 밸런타인데이에 개봉되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은 80년대 인기 절정이었던 영국 듀오 ‘팝’(PoP)의 (지금 보면 유치찬란한) 뮤직비디오로 시작한다. MTV 초창기 시절 프로덕션 가치가 전혀 없이 만들어졌던 수없이 많은 비디오처럼 팝의 비디오(제목 <Pop Goes My Heart>)는 간단한 댄스에 신시사이저, 선글라스, 립글로스, 아이라이너, 헤어스프레이, 퍼피 블라우스가 잔뜩 투입된 말 그대로 전형적인 80년대 팝음악을 상징한다.

듀오 중 한명은 계속 인기를 구가했지만, 다른 한명은 솔로로 데뷔한 친구 뒤에 홀로 남게 된다. 왬의 앤드루 리즐리처럼. 그 뒤 20년. 한물간 팝스타 아저씨 알렉스(휴 그랜트)는 놀이공원과 동창회 파티, 박람회 등지에서 옛 노래를 부르며 이제는 아줌마가 돼버린 팬들이 던진 커다란 속옷 세례를 받는다. 그러던 중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현대 팝 디바 코라 콜만의 제안으로 듀엣곡을 만들 절호의 기회를 얻는다. 하나 기간은 이번주 말까지. “아 참, 알렉스 아저씨, 아저씨 말고도 여러 명에게 같은 부탁을 했으니, 힘내세요. 파이팅!”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알렉스는 작곡 전문이지 작사에는 젬병이다. 작사가도 고용해보지만 그리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중 알렉스의 아파트 화분에 물 주던 직원을 대신해 덤벙거리고 말수가 많은 소피(드루 배리모어)가 나타난다.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알렉스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혼자 흥얼거리고 있었다. 알렉스는 소피에게 함께 멋진 팝송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고, 이들은 며칠 밤낮을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에 대해 배우는 것은 물론, 둘이 함께할 때 서로의 숨은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알렉스는 자신이 놀이공원에서나 공연할 정도의 뮤지션으로 인정하고, 나름대로 만족을 느끼고 있었던 것. 소피 또한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영문학 교수가 그녀를 소재로 한 소설에서 동명 주인공 소피를 능력없고, 자질없는 작가 지망생이라 쓴 악평을 접한 뒤 집필을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이들의 자포자기 인생은 한곡의 노래로 뒤바뀌게 된다.

<투 윅스 노티스>의 마크 로렌스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함께 맡은 이 영화는 감독의 못 이룬 어릴 적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충족시켜줬고, 주연배우 휴 그랜트와 드루 배리모어에게는 연기자로서 공포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한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로렌스 감독은 10대 시절 록그룹 멤버로 활동했지만, 자질이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그때의 한(?)을 음악가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면서 풀게 됐다. 휴 그랜트는 영화 <쇼팽의 연인>에서 쇼팽을 연기하면서도 배우지 않았던 피아노 레슨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댄스와 노래를 수천명 앞에서 선보일 기회를 가졌다. 드루 배리모어는 우디 앨런의 뮤지컬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서도 유일하게 노래를 하지 않았으나, 휴 그랜트처럼 극중에서 직접 노래를 불렀다.

알렉스와 소피에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10대 팝스타 코라 콜만 역에는 신인 헤일리 베넷이 출연해 기성 팝스타들에 버금가는 노래와 춤 솜씨를 발휘했다. 로렌스 감독에 따르면 콜만 역 캐스팅이 가장 어려웠다고. “팝스타 자질을 가진 10대 소녀들은 많았지만, 대부분이 너무 상업화된 이미지와 행동을 보였다. 헤일리는 소녀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고, 팝스타로의 카리스마도 동시에 지녀 무척 만족스러웠다.” 베넷은 실제 싱어송라이터로 현재 첫 번째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는 베테랑 배우들이 조연으로 참여해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알렉스의 변함없는 충실한 매니저 크리스 라일리 역에 브래드 가렛이, 과거 ‘팝’의 극성 팬이었던 소피의 큰언니 론다 역에는 크리스틴 존스턴이, 소피의 야비한 전 남자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소설가 슬론 케이츠 역에는 캠벨 스콧이 출연해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존스턴은 아이 둘에 패밀리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터프한 아줌마지만, 소피가 알렉스의 동창회 파티 공연장에 초청받았다는 말에 ‘꺄약 꺄약’ 소리를 질러대는 10대 소녀로 바뀌는 코미디를 보여줘 폭소를 자아냈다.

마크 로렌스 감독 인터뷰

“80년대 팝스타에 왠지 휴 그랜트가 떠오르더라”

-알렉스 역으로 휴 그랜트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던데.
=휴와는 <투 윅스 노티스>에서 함께 일하고 마음이 맞았다. 80년대 팝스타 이야기가 나왔을 때 왜 그런지 휴가 생각났고. (웃음) <어바웃 어 보이>에서 노래 부르는 걸 봤고, <러브 액츄얼리>에서는 그가 추는 춤을 잠깐 봤다. 소피 역은 생각한 배우 없이 썼는데, 휴의 참여가 확실해진 뒤 제일 먼저 생각한 배우가 드루였다. 드루는 정직하고, 생각한 그대로를 솔직히 말해줘 촬영 중 큰 도움을 받았다.

-80년대 음악을 좋아하나.
=특별히 좋아하진 않았는데, 어느 시대든지 좋은 곡이 있고, 나쁜 곡이 있는 것이 아닌가. 왬의 <Wake Me Up Before You Go Go>는 모타운 노래처럼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극중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샤키라와 비슷한 가수 코라 콜만이 있다. 이들을 풍자하는 것인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캐리커처로 만들 생각은 전혀 안 했다. 그들 나름의 음악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를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하면 마주치지는 않았으면 한다. (웃음)

-아들이 작곡한 노래가 포함됐다고 하던데.
=지금 13살인 클라이드가 작곡한 노래 <Dance with Me Tonight>가 휴가 놀이공원에서 공연하는 장면에 삽입됐다. 휴가 직접 그 노래를 택한 것이고, 클라이드는 7살 때 <미스 에이전트>에서도 작곡했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었다. 우리가 원래 음악 가족인데, 나만 잘 못한다. 아들이 내가 가고 싶어했던 음악가의 길을 가고 있는 거지. 또 아들을 쓰면, 야구경기 티켓만 사주면 되기 때문에 무척 저렴하다. (웃음)

휴 그랜트 & 드루 배리모어 인터뷰

“이제는 좀더 다른 경험이 필요했다”

-원래 피아노를 잘 치나.
=휴 그랜트: 피아노도 못 치고, 노래도 못 부르고, 춤도 못 춘다. 그래서 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한 것을 무척 후회했다. 피아노 레슨 받으면서 안무 익히고, 노래 연습도 몇달씩 했는데, 가장 겁나는 건 꽉 끼는 바지에 높은 굽의 구두 신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거였다.
=드루 배리모어: 그것도 아침 7시에 수백명 앞에서 말이지.
=휴 그랜트: 사실은 몇명 안 됐다. 컴퓨터그래픽 처리한 거다. 일부는 카보드 종이를 세워놓은 거고. 자주 앞으로 넘어지는 게 단점이었지. (웃음) 처음에는 내가 라이브로 부른다고 했는데, 부르고 났더니 너무 조용하더라. 그래서 다음부터는 틀어놓고 하는 데 동의했다. (웃음)

-제작을 회사 파트너 낸시 주보넨이 했던데, 제작자 역할을 즐기나.
=드루 배리모어: 모든 분야에서 디테일까지 신경을 쓰고, 참견할 수 있어서 좋다. 제작을 하게 되면 스크린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과 가구 디자인, 커피잔 하나까지 모두 중요하게 여겨진다. 포스터 가지고도 싸우고, 잠 못 자면서 시나리오에 대해 고민하고 그런다. 그렇다고 모든 면에서 꼼꼼한 것은 아니다. 뭘 잘 잃어버리는데, 일주일에 크레디트 카드 하나씩 잃어버리고, 대문이 잠겨 집에 못 들어가고, 차에 휘발유가 떨어져 서버리고, 트레일러는 늘 지저분하다. 하지만 그게 다 늘 영화를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웃음)

-80년대 팝그룹 멤버를 연기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했나.
=휴 그랜트: 왬이랑 듀란듀란의 비디오테이프를 수없이 봤다. 특히 80년대 영국 팝그룹의 특이한 가창 방식이 있는데, 도저히 연습해도 안 돼 따로 초빙해서 배우기도 했다. 사실 80년대 잠깐 팝음악을 듣긴 했지만, 잘 아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사이먼 르 봉은 가끔 마주치기도 한다. (웃음) 르 봉은 지금도 공연을 많이 하지만, 본인도 100% 에너지를 담아 공연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는 걸 잘 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이 영화의 내용도 잘 이해할 것으로 생각한다.

-원래 노래 못하는 걸로 알았는데.
=드루 배리모어: 진짜 못한다. 전에 가라오케에서 노래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 노래 듣고 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내 나이 32살이다. 20대가 즐겁긴 했지만, 이제는 좀더 다른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30대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공포감을 하나씩 극복해보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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