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TV 뭐 볼까? 설 연휴 TV영화 추천작
2007-02-15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나쁜 선택과 더 나쁜 선택에 대해

<소피의 선택> EBS 2월17일(토) 밤 11시

1947년 브루클린, 창백하지만 아름다운 소피(메릴 스트립)의 영어에는 폴란드식 억양이 남아 있다. 그녀의 팔에는 지울 수 없는 일련의 번호가 새겨져 있다. 팔목에는 자살의 흔적이 맺혀 있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아우슈비츠의 비인간성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그곳에서 자신이 행할 수밖에 없었던 비인간적인 선택이다. 자신의 두 아이와 수용소에 끌려간 그녀는 독일 군인으로부터 끔찍한 제안을 받는다. 두명의 아이 중 한명을 택하면 나머지 한명은 살려주겠지만, 아무도 택하지 않으면 둘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 단 몇초 동안 그녀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일까? ‘좋은’ 선택이란 없다면, 더 올바른 선택은 가능할 것인가? 그녀의 죄는 강요된 선택지 속으로 들어간 순간 시작된다. 그녀가 한 아이를 살리자, 다른 아이는 죽었다. 그것이 사실이고 현실이다. 그 순간, 그녀 역시 살아 있는 죽음이 된다. 영화의 화자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청년 스팅고(피터 매티콜)이다. 그는 위층에 사는 정체가 묘연한 커플, 소피와 네이단(케빈 클라인)에게 호감을 느끼던 중, 네이단의 정신병력과 소피의 과거를 알게 된다. 그는 소피를 사랑하게 되지만, 네이단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는 소피는 그와의 위태로운 관계를 떠나지 못한다. 죄의식과 고통과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두 상처입은 영혼은 결국 한 침대에서 영원히 잠든다. 소피는 그렇게 두 번째로 죽는다.

윌리엄 스타이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에는 두개의 선택이 있다. 하나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 애초 불가능한 선택을 강요당했던 상황에서 그녀는 어찌되었건 어린 딸을 가스실로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에게 선택을 강요했던 현실의 질서로부터 물러난다. 그것은 더이상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선택이다. 지젝은 이를 “더 나쁜 선택”이라고 불렀다. <대통령의 음모>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앨런 파큘라는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전면화하는 대신 소피의 고백을 따라가며 과거의 기억들을 플래시백으로 삽입한다. 영화는 스팅고의 시선을 빌려 소피와 네이단의 치명적인 로맨스를 서사의 중심에 두고 그 틈에서 역사의 상처를 길어낸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들이 그랬듯, 소피의 선택에 대해 끝내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마크 로테문트 감독의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이라는 영화를 보면, 공교롭게도 히틀러의 집권기를 배경으로 또 다른 ‘소피’가 등장한다. 그녀는 나치즘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과 전향 거부를 선택함으로써 결국 사형대에 선다. 동일한 역사적 시간 속의 두 여자, 여러 선택의 갈래들, 그리고 두 죽음. 지금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윤리적인 선택이란 무엇일까.

우즈베키스탄에 신부를 사러 가다

<나의 결혼원정기> KBS2 2월18일(일) 밤 10시25분

서른여덟살 노총각 만택(정재영)은 농촌의 친구들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결혼 원정을 떠난다. 아무리 그들에게 신부를 살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해도,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본 그들에게 계속되는 맞선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와중에도 만택은 우즈베키스탄 여자가 아닌 통역 담당관인 라라(수애)에게 관심이 간다. 그러나 탈북자임을 숨기고 일을 진행하는 라라에게는 만택의 결혼을 성사시켜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만택은 타국에서의 생애 첫 로맨스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농촌 총각들이 신부를 구하러(정확히 말하자면 ‘사러’) 떠난 여정은 로맨틱코미디의 틀에 담긴다. 영화는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사랑을 찾아 떠난 순정남들의 로드무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건 한국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애써 묵인하려는 우리의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숨겨진 배경은 다음과 같다. 현실의 농촌 총각들은 한국의 결혼시장에서 가장 인기없는 집단 중 하나다. 한국에서 신부를 찾을 수 없는 남자들 중 일부는 조건을 속여 신부를 구한다. 언어, 문화적으로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수많은 외국인 아내들은 견딜 수 없는 노동과 남편의 학대와 심지어 국제결혼회사의 횡포에 시달린다. 우리가 그저 ‘따뜻한 관심’에만 호소할 때,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후회 안 함. A/S 보장’ 따위의 플래카드만 늘어간다.

영화 속 탈북자, 농촌 총각, 외국인 신부 등과 같은 사회의 주변인들이 어떻게든 잘살아보겠다고 벌이는 좌충우돌에 마음이 짠해지는 건 사실이다. 영화가 이들에게 선물해주는 해피엔딩을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매끈한 드라마가 국적 불명 노총각의 낭만적인 결혼사수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결혼시장에서 소외된 한국 남자들과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외국 여성간의 계약된 만남을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결혼원정기>는 외국인 아내의 한국 ‘정착기’를 자신의 그림자로 지니고 있다. 그 둘은 함께 완성되어야만 하는 짝이다.

인권위원회의 세 번째 기획영화

<세 번째 시선> KBS1 2월16일(금) 새벽 2시50분

<여섯개의 시선>과 <다섯개의 시선>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세 번째 영화. 이 시리즈의 영어 제목은 “If you were me”, 즉 “당신이 나라면”이다. 간단해 보이는 입장의 전도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이 그저 나의 만족을 위한 일시적인 선심 쓰기에 그칠 뿐이라면? 당신이 된다는 것, 그것은 당신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결핍에서 나의 결핍을 보는 것이다. <세 번째 시선>은 총 여섯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윤철 감독의 <잠수왕 무하마드>는 동남아시아 잠수왕 출신의 이주민 노동자를, 김현필 감독의 <소녀가 사라졌다>는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편견을 다룬다. 이미연 감독의 <당신과 나 사이>는 결혼한 남녀의 불평등한 성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동석 감독의 <험난한 인생>은 혼혈인 소녀를 통해 사회의 인종차별적 편견을 짚어낸다. 김곡· 김선 감독의 <붐! 붐! 붐!>에서는 ‘우리’라는 집단적 무의식 속에서 청소년 성적 소수자가 당면한 현실이 드러나고 홍기선 감독의 <나 어떡해>에서는 법적인 보호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볼 수 있다.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을까

<시간> KBS1 2월17일(토) 새벽 2시10분

결국 김기덕의 열네 번째 영화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다. 사형수의 이야기를 다룬 <숨>은 어떤 영화일까? <빈 집>에는 ‘빈집’이, <활>에는 ‘활’이 나왔다. 그래서 그가 <시간>을 완성했을 때, 가장 의아했던 것은 시간을 영화화할 수 있다고 보는 그의 무모한 자신감이었다. 도대체 그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시간을 어떻게 형상화한단 말인가. 김기덕은 그걸 해냈다. 이 영화는 성형이라는 소재를 통해 한 여자의 새로움에 대한 욕망과 그 결과를 근대적 시간관,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의 틀 안에서, 정확히 그 흐름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읽어낸다. 끊임없는 혁신에의 욕망에 의해 얼굴이 덧붙여지고, 상황과 관계가 반복될수록 존재는 무에 가까워질 뿐이다. 그리고 남는 건 영화의 마지막, 바닷가에 반쯤 잠긴 텅 빈 손가락, 그저 텅 빈 시간이다. 타자의 욕망에 매몰된 히스테리적인 사랑을 통해 시간을 성찰하는 김기덕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말한다. 그리고 그 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처절한 피눈물이 되어 보는 이에게 정서적 울림을 안긴다. 무수한 소문과 스캔들을 뚫고 창조된 <숨>이 기대되는 이유는 <시간>에서 시작된다. <숨>은 그 숨을 어떻게 쉴 것인가?

설날에 성룡이 빠지면 섭하지~

<샹하이 나이츠> MBC 2월17일(토) 새벽 1시

아무리 많이 봐도 지겹지 않은 것들의 리스트가 있다. 그런 리스트가 효력을 발휘하는 시기는 시간은 많고 그 시간을 죽일 거리는 별로 없는 명절 같은 때이다. 그 목록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가장 만만하고 질리지 않는 것은 성룡의 영화들, 아니, 성룡이다. 그의 영화를 작품성 때문에 보는 사람들도 간혹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성룡의 몸을 압도하는 작품성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때는 그가 나오는 영화들은 다 똑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오, 미안, 성룡. 한창 나이인 옹박이나 <13구역>의 그 현란한 남자를 보고 있자면, 성룡도 이제 나이는 못 속여, 라는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그가 늙어 죽을 때까지 몸으로 날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이제는 작품의 드라마에 집중하고 싶다는 식의 슬픈 선언은 하지 말아줘요. 당신은 여전히 명절의 킹이에요. <샹하이 나이츠>는 <샹하이 눈>의 속편으로 오언 윌슨도 출연한다. 성룡의 무대는 전편에 이어 미국 서부에서 영국으로 옮겨지고 코난 도일, 찰리 채플린, 잭더 리퍼도 깜짝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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