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못나도 울엄마, <열세살 수아> 촬영현장
2007-02-17
글 : 오정연
사진 : 이혜정

“언니, 너무 멋져요!” “여러분, 윤아 언니가 아니라 설영 언니라고 외쳐주세요!” 공연장 뒷문으로 걸어나오는 김윤아를 한 무리의 학생들이 에워싼다. 1월25일 저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뒤편. 자우림 콘서트장이 아니라 영화 <열세살 수아>(제작 수필름·스폰지이엔티)의 촬영현장이다. 남편없이 억척스럽게 생계를 유지하는 엄마, 영주(추상미)를 거부하고, 인기가수 윤설영(김윤아)이 친엄마라고 믿는 수아(이세영)는 팬들에게 둘러싸인 설영에게 아버지의 사진을 내보인다. 물론 설영은 사진 뒷면에 사인을 해주고 돌아설 뿐이다. 수아의 마음을 대신하듯 쏟아지는 빗속에 홀로 서 있어야 하는 이세영과 달리, 기다림의 연속인 현장에서 실제 인기 가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보조출연자들은 컷 사인이 떨어지자 흥분된 목소리로 외친다. “이건 연기가 필요없어!”

열세살의 성장통을 데뷔작의 소재로 택한 김희정 감독은 신인답지 않은 여유있는 폼새로 20여명의 보조출연자와 강우기 등 특수장비가 동원된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송일곤 감독의 한 학년 후배로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에 입학한 그는 졸업 뒤 칸영화제 신인감독 육성프로그램인 ‘레지던스 인 파리’에 참여하여 <열세살 수아>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폴란드, 프랑스 등에서 10년 가까운 타지생활을 경험한 김희정 감독은 “기본적인 감성은 국적이나 문화를 초월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일상 속에서 극복하는 수아의 성장을 통해서 관객의 본질적인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아역배우의 천진함과 프로 배우의 진지함을 겸비한 이세영(<아홉살 인생> <여선생 vs 여제자>), <누구나 비밀은 있다> 이후 3년 만의 차기작으로 열세살짜리 딸을 둔 엄마 역할을 흔쾌히 수락한 추상미, <그때 그사람들> 이후 노래와 연기를 한꺼번에 선보이면서 영화의 음악까지 맡게 된 김윤아 등 알찬 캐스팅이 가능했던 것 역시 보편적인 시나리오의 힘이었을 것이다.

새벽 2시. 말없이 집을 나간 수아를 찾아온 영주가 딸을 발견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분장을 마친 추상미가 카메라 앞에 선다. 쌀쌀한 겨울비를 맞으며 마주 선 모녀의 눈물을 담는 것으로, 제작진은 한달여에 걸친 전주 촬영분량을 마무리한다. <열세살 수아>는 2007년 상반기 중 개봉예정이다.

공동제작 수필름 민진수 대표

“합당한 대우 해주는 제작 환경을 만들거에요”

“형이 아니라 동생입니다. 결혼은 안 했고요. (웃음)” 많이 닮으셨네요, 라는 인사말에 대뜸 돌아오는 대답이다. 스폰지와 <열세살 수아>를 공동제작하는 수필름 민진수 대표는 민규동 감독의 친동생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1999년부터 충무로에서 영화사와 매니지먼트사, 기획사 등의 세무회계, 경영자문을 도맡아 하던 그가 영화제작에 발을 내디딘 것은 2003년. <이공프로젝트> 중 형인 민규동 감독의 단편에서 프로듀서를 하면서부터다. 사무실에서 영화와 관계된 각종 숫자와 표 등과 씨름하며 영화제작워크숍이며 시나리오 교실에 참여하다가 급기야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온갖 종류의 공모전에 시나리오를 냈는데, 결국은 모 구청장배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했어요. 구청장이 인정한 작가라니까요. (웃음)” 형 못지않은 유머를 자랑하는 민진수 대표지만, 영화제작의 배경을 설명할 때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가까이에서 형을 보면서, 능력있는 감독이 합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의 중요함을 생각하게 됐어요.” 이미 두사부필름과 함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공동제작한 바 있는 수필름은 현재, <열세살 수아> 외에도 공포영화 <칠거지악> 시리즈와 민규동 감독의 차기작 등 주목할 만한 신작을 준비 중이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