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흑인 음악에 대한 백인들의 노스탤지어
2007-02-19
글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1959년, 베리 고디 주니어가 디트로이트에 작은 레코딩 회사를 열었을 때 그의 수중에는 800달러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 800달러는 그의 가족, 더 정확히는 어머니와 누이들이 조금씩 모아준 사업자금이었다. 이것이 바로 모타운 레코드의 시작이었다.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까지 수많은 레이블들이 존재했지만, 모타운은 유일하게 그 자체가 장르가 된 레이블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의 흑인 음악들, 흔히 ‘모타운 사운드’라고 불리는 음악들은 공통된 어법이 적용되지 않았음에도 공통된 감수성을 전달하는 음악들이고, 모타운 레코드 전성기의 사운드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타운, 그러니까 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하다는 이유로 ‘모터타운’이라고 불리던 디트로이트의 애칭을 줄여 회사명으로 사용한 이 작은 회사는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흑인음악을 (백인들의) 뮤직 비즈니스 영역으로 진입시킨 회사였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미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주도했던 회사다. 하지만 모타운은 단지 회사만은 아니었다. 초기 모타운은 회사에 소속된 음악가와 작곡가, 엔지니어들이 하나로 맺어진 공동체이기도 했다. 디트로이트 공장 노동자이기도 했던 모타운 ‘식구들’은 인종차별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열정과 애정을 레코딩에 쏟던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회사의 슬로건이었던 ‘젊은 미국의 소리’를 만들었고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디트로이트는 어떻게 흑인음악의 중심지가 되었는가

대표적인 공업도시인 디트로이트에 흑인음악 레이블인 모타운 레코드가 설립된 배경은 단순하지 않다. 베리 고디 주니어는 일자리를 찾아 시카고에서 디트로이트로 이주한 청년이었다. 시카고에는 흑인 게토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고향 남부에 친지들을 두고 떠나온 노동자들이었다. 시카고의 산업은 정육점이나 도살장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산업은 일리노이주 철도를 따라 북부로 이주해온 흑인 노동력으로 유지되었다. 이들은 북부로 이동하며 블루스와 가스펠을 함께 가지고 이주했다. 그러나 남부 흑인들에게 약속의 땅이었던 시카고는 갑작스런 인구 증가와 그로 인한 도심의 게토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아무런 관심도 대책도 없었다. 흑인 기성세대는 이런 현실에 순응하고 적응한 반면, 흑인 청년세대는 꿈을 좇아 시카고를 떠났다. 베리 고디 주니어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공장지대에서 흐르던 흑인음악의 상업적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었다. 당시 흑인음악은 백인들에게는 거부의 대상이었다. 백인 중산층 개신교 가정의 자녀들은 섹스와 쾌락을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솔음악으로부터 격리되기를 원했고 라디오에서는 흑인음악이 방송되지 않았다. 모타운 레코드는 이런 문화적 차별을 역으로 이용해서 섹스 대신 로맨스를 노래했고, 소속 가수들의 목소리와 사운드를 ‘흑인답지 않게’ 만드는 전문 교육 과정을 도입했다. 여기에 앨범 커버에서 개별 아티스트의 이름을 지운 홍보 전략이 더해져 모타운 레코드는 백인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이뤘다. 물론 모타운이 인종차별의 정치와 무관했던 것은 아니었다. 베리 구디 주니어는 백인 취향의 곡을 만들어 돈을 벌었지만, 라디오 PD들과 접촉하며 뇌물을 주지 않았고(당시에는 라디오 프로듀서들에게 7인치 싱글과 현금을 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공연장까지 올 차비가 없는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버스 투어를 하거나 흑백구분이 된 극장에서 백인과 흑인들을 위한 다른 노래들을 불렀다. 모타운은 단지 ‘흑인 기업’이 아니라, 흑인의 영혼(black soul)이 깃든 기업이었다.

걸 그룹, 모타운 그리고 드림걸즈

이제 영화 얘기를 해보자. <드림걸즈>는 알려졌다시피 ‘전설적인 걸 그룹’ 슈프림스(와 다이애나 로스)를 모델로 구성된 이야기다. 슈프림스는 모타운에서 활동하기 전 프라이메츠(Primettes)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영화에서는 드림메츠(Dreamettes)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시카고 출신의 세 여자 에피 화이트(제니퍼 허드슨)와 디나 존스(비욘세 놀스), 로렐 로빈슨(아니카 노니 로즈)으로 구성된 이 ‘걸 그룹’은 우연한 기회에 중고차 딜러이자 음악 매니저인 커티스 테일러(제이미 폭스)와 계약을 하게 되고, 당대 슈퍼스타인 제임스 ‘썬더’ 얼리(에디 머피)의 배킹 보컬로 연예 활동을 시작한다. 이 세 소녀들이 가수로 성공하고 다투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하지만,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드림걸즈>에 대한 가장 짧은 설명일 것이다.

어쨌든, <드림걸즈>는 모타운 레코드와 슈프림스의 성공 이야기를 탁월하게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당대 최고 스타인 제임스 ‘썬더’ 얼리는 제임스 브라운과 마빈 게이를, 타고난 비즈니스맨으로 등장하는 커티스 테일러는 모타운의 설립자인 베리 구디 주니어와 1960년대 당시 걸 그룹의 사운드를 창조했던(‘사운드의 벽’(wall of sound) 공법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필 스펙터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마할리아 잭슨, 잭슨 파이브,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과 같은 가스펠, 솔, 펑크 음악가들을 연상시키는 등장인물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재치있는 위트를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론적으로 말해 1960년대 흑인음악 커뮤니티를 백인들의(혹은 할리우드의) 낭만적인 노스탤지어로 왜곡하는 작품이다.

정치적인 시대에 대한 탈정치화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이런 질문이 이젠 촌스럽게 들리겠지만, 적어도 1960년대 미국 대중문화에 대해, 게다가 흑인음악에 대해 얘기할 때 인종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다민족 국가이자 첨단 자본주의 국가인 미합중국에서 대중문화란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맥락의 문제로 환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이것은 어느 자본주의 국가든 마찬가지다). 각설하고, <드림걸즈>가 2시간 동안 묘사하고 구축해놓은 ‘솔 커뮤니티’는 전적으로 백인 수용자들의 낭만적인 노스탤지어의 반영이다. 특히 커티스 테일러는 흑인이라는 정체성이 제거된 ‘자본가’로 등장할 뿐이다. 여기에는 1960년대 후반을 뒤흔들었던 흑인 인권운동도, 베트남 전쟁도 주인공들의 삶과는 무관하다. 오로지 예술적 집념, 혹은 가족의 회복만이 이들 사이에서 작동하며 레인보 레코드 소속 음악가들의 갈등도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된다. 잠깐, 개인적인 갈등이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콜 앤드 리스펀스’(흑인음악 특유의 화답 방식)를 통해 개인의 문제가 공동체의 문제로 수용되던 경험과 이런 과정을 통해 솔 커뮤니티가 구성되던 맥락이 영화에서는 생략되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모든 갈등이 가족애로 해결된 뒤 백인 청중 앞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은퇴하는 더 드림스의 모습은 다사다난했던 어느 걸 그룹의 아름다운 마지막이 아니라, 미국 역사상 가장 반문화적 가치가 드높았던 1960년대의 한 성과로서의 흑인음악(과 커뮤니티)을 탈정치화, 낭만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게 중요하다. 심지어 영화 중반 이후의 사운드트랙이 대부분 솔이 아닌 발라드였다는 점조차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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