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epo Naughy Girls>라는 영문제목으로 상영된 <다세포소녀>에 대해 <스크린인터내셔널> 데일리는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한, 극도로 양식화된 시대극 <스캔들-조선남여상열지사>를 연출한 바 있는 이재용 감독의 팬이라면, 그의 신작 <다세포소녀>가 굉장히 놀라울 것이다”라고 말하며 “거칠고 원기왕성하며 무정부주의적이고, 컬러풀하며 예측불가능한 영화”로 소개했다. 그러나 “불경함을 시도함에 있어서는 기대에 못미칠 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스캔들>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다세포 소녀>만을 보고 기자회견장을 찾은 스위스의 한 기자는 “발랄하고 유쾌한 여러 시도들이 인상적이었다”며 “감독의 얼굴을 처음보고는 영화의 느낌과 달리 너무 얌전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일반상영을 통해 영화를 관람한 관객에 따르면, 영화의 유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유쾌한 분위기에서 상영이 진행됐고, 이후에는 박수와 환호가 이어지기도 했다.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이재용 감독은 “<다세포 소녀>는 한국에서 네티즌이 뽑은 최악의 영화 1등으로 선정된 영화다. 지난해 한국에는 이 영화보다 훌륭한 100편 가까운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한국영화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베를린을 함께 방문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마찬가지로 정정훈 촬영감독이 촬영을 맡았고, 두 영화 모두 요들송이 중요하게 사용된다는 점이 현지 관객들의 흥미를 자아내기도 했다. 덕분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다세포소녀>를 함께 본 한 관객은 “한국에서 요들송이 유행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다세포소녀> 기자회견
다음은 현지시각 2월10일 11시40분에 진행된 <다세포소녀> 공식기자회견의 전문.
Q.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년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이후 또다시 당신의 영화를 만나게되어 반갑다. 전작에 비해 <다세포소녀>는 여러모로 다르다. 좀 더 젊고 장난스러운데(naughty), 그처럼 다른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A. 영화학교를 졸업하던 20대부터, 젊었을 때 한번쯤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가 메이저 상업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영화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처음 원작만화의 영화화를 제안받았을 때, 20대에 꼭 하고 싶었던 스타일의 영화라고 생각했고, 좀 늦었지만 꼭 해보고 싶었다.
Q. 스타일은 <스캔들>과 매우 다르지만, 한국사회에서 공적으로 말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점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A. 개인적으로 늘 사회적인 금기를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런 점에서 맞닿는 지점이 있다. <스캔들>은 완벽한 준비를 거쳐, 정해진대로 찍어야했던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좀 더 즉흥적인 영감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처음에는, <스캔들>의 이재용이 아닌 것처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이름을 감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나중에는 모두가 알게 됐지만.
Q. TV 시리즈로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TV 시리즈로 기획된 건가, 당신은 거기에 얼마나 관여했나.
A. TV로 먼저 기획된 건 아니었다, 원작인 인터넷 만화는 소수의 사람들이 굉장히 열광적으로 좋아한 작품이었다. 영화화 기획이 먼저 있었고, 그러던 중에 인터넷 만화의 에피소드를 TV용으로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PD가 하게됐고, 영화의 후반작업 기간 동안 기획이 들어갔다. 15분짜리 에피소드를 9명의 젊은 감독들이 나눠서 만들었다.
Q. 제작사 다세포클럽은 어떤 회사인가.
A. 애초에 영화 외에도 TV 시리즈나 뮤지컬, 출판만화 등을 만든다는 등의 기획이 있었다. 그러한 컨텐츠를 기획하는 회사를 만들었고, 그게 다세포클럽 영화사다. 다세포라는 한국어는 영어로 multi cell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다.
Q. 영화속 뮤지컬 장면에는 가라오케에서 보이는 화면처럼 노래 가사가 함께 등장한다.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가라오케에서 하듯이 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했나?
A. 아마도 가라오케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일 거다. 노래방 문화가 무척 발달해서 그런 식의 화면은 한국인에게 매우 익숙한데,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후반작업 도중에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다. 이 영화가 컬트영화가 된다면 영화를 보면서 따라할 수도 있었겠지만, 극장에서 상영할 무렵에는 영화를 위해 새롭게 작곡된 노래를 관객들이 따라할 수는 없었을 거다.
Q. <올드보이>의 정정훈 촬영감독과 함께한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
A. 그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3부작 중 두 편을 찍었고, 이번 베를린영화제 경쟁작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촬영하기도 했다. 예전부터 언젠가 영화를 함께 하자고 말해왔던 사이인데, 이 작품처럼 자유로운 상상력과 순발력이 필요한 영화에서는 그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아이디어도 많고 현장 적응력도 좋은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과의 작업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Q. 모두 젊고 신선한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한국에서는 반응이 어땠나.
A. 영화를 하기 전까지는 모두 유명하지 않은 신인들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촬영하고 개봉하면서 그들 역시 <다세포소녀> 속 주인공처럼 인터넷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스타가 되어 있더라. 영화가 개봉될 무렵에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Q. 참고한 영화가 있나. 개인적으로는 <록키 호러 픽쳐쇼>가 떠올랐다.
A. 아까 말한대로, 이 영화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진지했던 전작과 달리,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딱히 어떤 영화의 제목을 거론하기보다는 대안적이고 인디적이며 컬트적인 영화들 모두와 연결된다.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를 매우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니 영화 속 뮤지컬 장면은 <록키 호러 픽쳐쇼>나 존 워터스 감독의 영화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어느 정도 있긴 할 거다.
Q. 영화에 독일민요에 맞춰서 학생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한국 학생들이 그 노래를 실제로 배우나.
A. 그렇다. 음악 교과서에 실린 외국 노래 중 하나인데, 깨끗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이미지 때문에, 학교 장면에서 그 노래를 꼭 쓰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 때부터 영화제를 겨냥한 건 아니니까 베를린을 생각했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웃음) 공교롭게 영화 속 인물 중 한명은 또 스위스에서 자랐다는 설정 때문에 독일어 욕이 나오기도 했다.
Q.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도 요들송이 나오던데, 한국에서 스위스나 요들이 어떤 의미인가.
A. 음. 나도 그 영화를 보면서 요들송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한국사람에게 요들송이 주는 이미지는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독특한 목소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요들송을 들으면 굉장히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유럽적인 어떤 것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 느낌 때문에 요들송이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영화에 넣은 것인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그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나 싶다.
Q. 이 작품의 투자사인 롯데는 한국에서 백화점을 비롯해서 여러 분야에 걸친 대기업이다. 그 회사가 당신의 영화를 투자, 제작,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어떤 도움을 줬나.
A. 투자를 결정할 당시 롯데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과 함께, 저의 전작이 거둔 상업적 성공도 고려했을 것이고 어느정도 기대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영화가 메이저 영화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 아니었다. 롯데는 나름의 계산을 통해 이 영화의 투자를 결정했을 것이고, 나는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간 셈인데, 둘 사이에 영화를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는 아무래도 있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