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베를린에서 공개된 장률 감독의 <히야쯔가르>
2007-02-18
글 : 오정연
<히야쯔라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조선족 감독 장률의 세 번째 장편 <히야쯔가르>가 지난 2월15일 베를린에서 기자시사를 가지면서 공개됐다. 당시(唐詩)의 엄격함을 영화의 스타일과 내용에 적용하여 북경을 살아가는 소매치기 남자의 고독을 그렸던 첫 번째 장편영화 <당시>와 김치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조선족 여성 순희의 강인한 생존을 덤덤하게 담았던 <망종>을 거쳐 감독이 눈길을 돌린 대상은 사막과 초원의 경계(히야쯔가르)에서 살아가는 몽골의 유목민이다.

유목민과 탈북모자의, 뿌리를 내리기 위한 묵묵한 싸움
병에 걸린 딸과 아내가 도시로 떠나버린 뒤, 초원을 보존하겠다는 끈질기지만 얼핏 헛되게 느껴지는 신념을 홀로 실천하며 모래밭에 묘목을 심던 헝가이(바털지)의 외로운 삶에 어느날 탈북한 두 모자, 순희(서정)와 창호가 흘러들어온다. 몽골어와 북한말 사이, 단 한마디의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이지만 묘목의 가냘픈 뿌리를 내리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남자와, 뿌리내릴만한 평화로운 장소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모자는 점차 유사가족을 이뤄간다. 이들의 곁을 노예사냥꾼과 우편배달부와 유랑하는 몽골여인이 스쳐지나간다. 헝가이와 순희 사이에는 당연히도 긴장의 순간이 종종 찾아오지만,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헝가이와 순희는 끝까지 육체적인 관계는 맺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뒤, 헝가이는 아내와 딸을 만나기 위해 울란바토르로 향하고, 순희와 창호는 남겨진다.

인물이 격한 감정에 처했을 때 그 뒷모습을 쫓거나, 인물들이 최소한의 대사를 던지는 것, 인물이 처한 상황과 캐릭터를 설명하기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과 함께 호흡하다가 어느순간 그 감정을 짐작하게 만드는 방식 등은 감독의 전작과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나 움직임을 극도로 절제하던 카메라의 운용은 달라졌다. 주로 핸드헬드로 찍힌 화면은 종종 인물의 움직임을 한템포 늦게 좇아 패닝한다. 2시간 남짓 그러한 카메라의 움직임에 익숙해진 뒤 맞닥뜨리는 마지막. 또다시 떠나온 길 위에서 모자가 마주치는 다리 난간 가득 푸른 끈이 묶인 모습이 360도 패닝하여 보여진다. <버라이어티>의 영화제 데일리는 리뷰는 이에 대해 “마지막 장면까지, 카메라의 움직임은 의도치 않았던 즐거움과 지루함을 함께 선사한다. 신중한 동요를 보여주는 양질의 화면과 카메라 렌즈의 선택은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주기위한 것으로 보인다. 로케이션의 진정성 역시 자연의 광대함을 느끼게 해준다.”고 평했다. “전문배우임이 분명하지만, 연기를 하고 있음을 드러내지 않는 완벽하고 뛰어난 자연스런 연기”에 대한 평가도 덧붙였다. <거미숲> 이후 3년만에 영화에 출연한 서정은 클로즈업 한번 등장하지 않는, 여러모로 배우에게는 가혹한 역할에 도전하여 강렬한 눈빛만으로 탈북 여성의 말못할 심정을 표현했다. 몽골에서 연극배우이자 연출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경력의 바털지는 처음으로 합작영화에 출연하여 유목민의 담담한 일상과 한 남자의 묵묵한 신념을 연기했다.

한국개봉은 미정
영화의 한국 배급은 G21M이 맡고 있으며 해외배급은 프랑스의 레조필름 인터내셔널이 진행하고 있다. 한국개봉일정은 확정된 것은 없지만 오는 제작사의 관계자는 10월쯤을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히야쯔가르>의 공식기자회견 전문

-느리게 패닝하는 롱샷,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핸드헬드 등의 카메라 무빙이 눈에 띈다. 360도 패닝하여 푸른 끈이 가득 묶여진 다리를 비추는 마지막 장면에 대한 설명도 부탁한다.
=장률/ 핸드헬드로 찍은 것은 인물의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조용하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 목적을 쉽게 달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호흡이 담겼으면 했다. 패닝같은 경우는, 몽골에서 촬영을 하면서 변하게 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반영한 것이다. 풀과 사막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시간감각까지 변하는 걸 느낀다. 멀리 펼쳐진 지평선에 둘러쌓인 곳에서는 거리감도 사라지는데, 그런 느낌을 패닝으로 담고 싶었다. 또한 초원의 공간감을 포착하기 위해서 카메라가 한템포 늦게 인물을 쫓아가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카메라는 사람들을 쫓아가기 마련이어서, 이런 방식이 잘못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시선으로 쫓을 때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빌딩 사이로 놓쳐버리는 도시와 달리 초원에서는 누군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광경이 거의 반나절 동안 시야에 남아 있다.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영화 중간에 소년이 혼자서 빙글빙글 도는 장면이 두 번에 걸쳐 등장한다. 처음에는 소년이 어젯밤 꿈에 이렇게 했더니 학교가 보였다고 엄마에게 말한다. 소년이 빙글빙글 도는 이미지는 꽤나 처음부터 생각했던 이미지였는데 마지막 장면은 결국 그 소년의 시각을 반영한 셈이다. 푸른 끈은 불교의 전형적인 상징 중 하나로 몽고에서는 행운을 의미한다. 다리를 건널때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푸른 끈을 메어 놓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내 영화에도 마지막에, 그 다리를 따라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고, 현재는 추방상태에 있지만, 언젠가 그들에게도 평화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당신은 한국인의 피를 가진 중국인이다. 몽고어와 한국어로 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언어를 사용했나.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을 중국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되나.
=장률/ 한국어로 쓴 뒤에 몽고어로 번역했다. 이 영화를 시작할 때는 서로 다른 삼개국의 스탭이 참여해서 언어와 관련한 혼란이 많을 것이라 우려했다. 그러나 촬영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더라. 우선 몽고인들은 말 자체를 별로 안한다. 나는 언어가 대부분의 오해를 초래한다고, 감정적인 문제는 대부분 누군가가 잘못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다고 믿는다. 중국 속담에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는데, 몽고 사람들은 그 격언을 정말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같다. 영화의 제목인 <히야쯔가르>는 몽고어로 일종의 나무를 의미하는데 사막과 초원의 경계를 의미한다.

-경쟁부문에 있는 또다른 중국영화 <투야의 결혼>을 포함해서 이 영화 역시 몽골을 배경으로 한다. 중국에서 몽골을 소재로 택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인가?
=장률/ 사실 이 영화는 한국의 한 영화사가 사막을 소재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몽골에 막상 가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지가 떠올랐다.

-최순희를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서정/ 김기덕 감독님의 <섬>에서 대사가 하나도 없는 걸 했는데 이번에도 이렇게 됐다.(웃음) 감독님께서 요구하신 건 딱 하나였는데, 무의식을 표현하라는 거였다. 처음에는 탈북자의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상황들 때문에 최순희라는 인물에게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근데 일단 깊이 들어가니까 감독님은 또 빠져나오라고 하시더라. 영화에는 최순희가 드러나면 안된다고, 관객들에게 그의 고통이나 안타까움, 억울함 등의 감정이 보이면 안된다는 거였다. 그저 멍청하게 (웃음) 있으면 된다는데 너무 어려운 요구였다. 감독님께선 “어려운 거 안다. 하지만 배우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 길래 고민을 많이 했고다. 그저 세상에 던져진 채로 생존을 위해 애쓰는 여자를 표현하기 위해 복잡한 것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초원과 사막, 초원을 닮은 바털지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어색한 상황, 감독님의 조용하고 진지하며 변함없이 차분한 모습 등이 많은 영감을 줬다.

-이 영화에 출연하기 전 어떤 영화에 출연했나.
=바털지/ 원래는 연극배우였고, 연극연출을 한 적도 있으며 독일 TV와 함께 영화를 만든 경험도있다. 한국 스탭들과의 협업은 매우 좋은 경험이었고, 무엇보다도 몽골이 배경인 영화라는 점이 자랑스럽다. 특히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는 자연환경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배우, 스탭과의 작업은 처음이었을텐데 예전과 어떻게 다르던가.
=장률/ 그간 북경에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한이나 남한의 영화산업은 아직까지 낯선 편이다. 물론 많은 점이 달랐고, 작년 한국에서 많은 좋은 영화가 나왔지만 흥행은 별로였다고 들었다. 이런 점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계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영화같다. 관객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 때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싶은게 뭐였는지 설명해달라.
=장률/미안하지만 나는 별로 계획성이 없는 사람이다. 이후 관객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내일부터 잘 생각해보겠다.(웃음)

-영화의 조용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나.
=서정/ 초원에서 적응을 하는데 너무 암담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근데 못먹고 안자고 안씻는게 굉장히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더라. 1주일동안 안 씻어본 적도 있다.(웃음) 배우로서, 연기하는 인물에 몸을 담고 있다보면 언제부턴가는 서정이라는 사람의 생활이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탈북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적응력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실제 탈북자와 2달간 동행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자연속에 흡수되어 그 역할에 몰입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촬영을 진행했던 곳, 사막과 초원의 경계 지점은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고, 그 안에서 최순희의 사막같이 건조한 삶이 굉장히 건조하게 다가왔다.
=바털지/ 최순희는 몽골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상태에서 도착했고, 순희과 헝가이는 말이 안통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바디랭귀지는 너무나 중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택한 방법 중 하나가 통역 없이 리허설에 임하는 것이었다. 물론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그게 오히려 연기에는 도움이 된 것 같다.

-당신 역시 몽골에서 감독이자 배우라고 들었는데 몽고의 영화산업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
=바털지/ 몽골의 영화산업은 75년 전에 시작됐고 많은 발전을 겪다가 역사적이고 사회전반적인 상황 때문에 1990년대 모든 분야가 많은 변화를 겪었고 영화산업 역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영화는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발전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이런 시점에서 외국과의 협업은 굉장히 많은 도움, 자극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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