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괴물이 사는 집, <검은 집> 촬영현장
2007-02-27
글 : 강병진
사진 : 오계옥

한 남자가 숨을 헐떡거린다. 그는 방금 목을 매고 자살한 7살짜리 남자아이의 시체를 발견한 상태다. 고개를 돌려 아이 아빠의 표정을 살피는 남자는 또 한번 소름끼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아무런 놀란 기색없이 오히려 남자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 이내 시선을 돌린 그는 어색한 걸음으로 아이에게 다가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지난 2월20일, 파주 아트서비스 B 스튜디오에 마련된 영화 <검은집>의 32회차 촬영현장. 황정민과 강신일의 코 바로 아래서 연기를 살피던 신태라 감독이 컷을 외치고는 모니터링을 재촉한다. 황정민과 감독은 촬영장면을 계속 돌려보며 아이디어를 나눈다. 촬영 내내 황정민이 내놓는 아이디어들은 매번 어떤 것을 써야 할지 고민할 정도라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강신일은 의자에 앉아 편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너무 좋다. 나는 황정민만큼 머리회전이 빠르지 않아서 저렇게 못한다. 또 막상 하려 하면 주변에서 상당히 하중을 느낄 것 같고(웃음).”

<검은집>은 1997년 제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한 기시 유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보험사정인인 전준오(황정민)가 경찰이 자살로 발표한 한 소년의 사망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살인자와 대결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준오가 고객의 불만사항을 상담하기 위해 박충배(강신일)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했다가 소년의 시체를 발견하는 이날 촬영장면은 극중에서 공포의 주된 무대인 검은 집이 처음으로 소개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음울한 느낌의 벽지로 꾸며진 검은 집의 내부는 평범한 소품들도 기괴한 분위기를 느낌이다. 동시녹음에 방해가 된 마룻바닥 삐걱이는 소리도 오히려 이 집에서는 그럴싸하게 들릴 정도.

<검은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스팅은 사이코 패스 환자로 분한 강신일이다. 명예경찰로도 손색이 없는 그에게 충배 역을 맡긴 신태라 감독은 “원작처럼 우락부락한 인상이 아니라 더 왜소한 인물이었으면 했다.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올려다봤을 때의 힘이나 무서움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정인이라는 엘리트 캐릭터를 맡은 황정민에게는 “슈퍼맨으로 변신하기 전의 클라크 게이블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고. 황정민은 “준오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살인사건을 계속 파헤쳐가고 그러면서 미궁에 빠진다. 전체적으로 푸석푸석한 느낌의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약 20회차의 촬영을 남겨둔 <검은집>은 오는 6월경 미궁의 문을 열 예정이다.

낭만적인 공포감을 빚어내겠다

<검은집>의 이시훈 미술팀장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 공포영화인 <검은집>에서 미술은 작품에 공포감을 입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조화성 미술감독이 이끄는 화성공작소의 이시훈 팀장은 예전부터 호러영화를 하고 싶어 감독으로 입봉할 수 있는 기회마저 져버리고 <검은집>에 참여했다. “주위에서는 다들 미쳤냐고 했지만, 나는 아직 정상이다.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 (웃음)” 원작을 읽은 건 물론이고, 기시 유스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푸른 불꽃>까지 챙겨보며 컨셉 잡기에 몰두했다고. 조화성 미술감독과의 열띤 회의 끝에 내린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낭만주의. “준오의 공간이 순수낭만주의라면, 충배와 이화(충배의 아내)의 공간은 퇴폐낭만주의로 가려고 했다.” 특히 신태라 감독이 보여준 한장의 그림은 검은 집의 디자인에 큰 역할을 했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란 그림인데, 하늘은 맑지만 집을 비롯한 주변부는 밤으로 그려져 있다. 검은 집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위압감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부 또한 거미줄이나 뱀의 허물 같은 벽지를 사용했고, 전체적으로 눈에 띄는 컬러는 배제했다.” 그는 “미술팀이 비장의 카드로 준비하고 있는 검은 집의 지하실은 더욱 감정을 짓누르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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