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후보 리스트가 공개되기도 훨씬 훨씬 전인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더 퀸>이 개봉할 때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의 핵심”인 헬렌 미렌이 “오스카 후보에 오를 것이 확실”하다고 장담했다. “(그가 하는 연기는) 그의 캐릭터가 화면 밖에서도 계속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다큐드라마를 볼 때처럼. 말해지지 않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설명되지 않는 것들 위로 노련한 연기를 이루었다.” 그보다 한달 전인 9월 베니스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는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작가 피터 모건, 토니 블레어 역의 마이클 신에 이어 엘리자베스 2세 역의 헬렌 미렌이 소개되자 기다렸다는 듯 기자석이 환호하더니 뜨겁게 박수를 쳤다. 진심과 감동에서 우러난 갈채는 2분간이나 이어졌다. 이튿날 저녁 공식시사 때 터진 5분의 기립박수도 현존하는 여왕을 그 혼까지 조각해내는 듯했던 여배우의 연기에 향해 있었다. 1997년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장례 절차를 두고 영국 왕실과 의회 사이에 있었던 갈등의 일주일을 그린 <더 퀸>은 현존하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침실 안으로까지 카메라를 들고 간다. 평민이라면 평생 엄두를 내지 못할 친밀한 거리감 안에서 궁극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여왕의 존재가 지닌 알 수 없는 깊이와 무게에 경외심이다. “영화를 보다가 놀란 적이 한번 있다. 내가 방을 나서서 꽃을 만지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 속에 있는 사람이 내가 자료조사를 하면서 본 영상 속의 사람하고 너무 똑같아서였다.” 여왕으로서 미렌은 그것이 단지 연기라고 믿는 것이 억울할 만큼 공고하고 실재감있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주디 덴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메기 스미스 등과 함께 ‘데임’ 작위에 올라 있는 그녀가 지금까지 삶에서 이뤄온 것들, 살아온 모습들이 궁금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6년, 그 여왕의 화양연화
헬렌 미렌은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갔고, 올해 초 골든글로브에서 다시 상을 받았다. 두개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하나는 <더 퀸>, 다른 하나는 <엘리자베스 1세>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HBO>와 <채널4>가 공동 제작한 2부작 TV영화다. 미렌은 엘리자베스 1세 역할로 에미상 시상식에서도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즈음 관련 기사들은 하나같이 2006년이 헬렌 미렌의 해였다고 쓰고 있다. 대영제국의 영원한 자긍심 엘리자베스 1세와 대영제국 사상 최장의 통치기간을 가진 현 여왕을 모두 연기했다는 명예(이는 헬렌 미렌이 유일하다), 그것으로 영미권 주요 관련상을 죄다 휩쓸었다는 수상의 명예. 올해 골든글로브 TV영화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또 다른 영국산 TV영화 <프라임 서스펙트> 여주인공 역시 헬렌 미렌이었다는 점도 빼놓지 말자. 이토록 찬란한 전성기를 맞은 60대 여배우가 과거에 또 있었던가. 할리우드와 영국의 모든 젊은 배우들이 그녀를 동경한다 말해도 이상할 게 없다.
“난 유능한 하인(servant)이야. 유능한 하인보다 더 뛰어나. 최고라고. 완벽한 하인이지. 난 그들이 언제 배가 고픈지를 알고 음식을 준비하고, 언제 피곤한지를 알고 잠자리를 준비해. 그들이 스스로 느끼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어.” <고스포드 파크>의 하녀장 윌슨 부인은 한올의 흐트러짐도 없다. 사냥파티에 초대받은 다른 귀족의 풋내기 하녀 앞에서 그녀는 간결하게 하인의 능력과 그것의 최고 경지에 관해 말한다. 자기가 모시는 귀족들보다도 그녀의 자세는 꼿꼿하고 옷매무새는 견고하고 말씨는 정확하다. 윌슨 부인은 우리가 표면적으로 아는 영국인의 격식을 영화 안에서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만의 앙상블 연기 연출이 계급이라는 소재와 만나 격조있는 하모니를 이루는 가운데, 윌슨 부인 역의 헬렌 미렌은 이 영화의 연기파트너 ‘데임’ 메기 스미스와 함께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2년 뒤에는 미렌 그 자신도 데임 작위를 수여받았다. 수십년간 카메라와 객석을 향해 지어온 표정대로 자리잡은 주름들, 곱게 빗어넘겨진 백발, 맑은 톤을 잃은 대신 무게를 얻은 눈빛, 우아한 영국식 악센트, 그 악센트로 발음되는 이름 앞의 작위 그리고 작위가 부끄럽지 않은 RSC(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출신의 장인적 재능이 모두 헬렌 미렌의 것이다. 퀸이 못 될 이유가 없다.
음란하거나 위엄있거나
고국 영국에서 여배우 헬렌 미렌의 닉네임은 오랫동안 ‘스트라트포드의 섹시 퀸’ 또는 ‘인텔리 남성을 위한 요부’(the thinking man’s crumpet)였다. 이미 열여덟살 때, 당시 몸담고 있던 국립청소년극단(National Youth Theatre)에서 미렌은 사납고 섹시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첫 역으로 받았다. 2년 뒤 RSC의 제안으로 자리를 옮긴 그녀의 스트라트포드 무대 데뷔는 <트로일로스와 크리세다>였다. 거기서 미렌은 ‘거의 벗은 채로’ 종일 무대를 돌아다니는 크리세다를 연기했다. 영화 데뷔작인 <에이지 오브 컨센트>에서는 호주의 북동쪽 바닷가 근처에서 나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틴토 브라스의 에로물 <칼리귤라>에서 대리석 탁자 위에 아무 때나 드러눕는 음란한 왕비가 되거나 <롱 굿 프라이데이>에서 알몸에 앞치마만 걸친 채 싱크대 앞을 서성이거나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서 알몸으로 고깃덩이들 사이에 서서 불륜의 대상과 사랑을 나누는 창녀의 모습 등은 배우 헬렌 미렌에게나 그녀를 아는 관객에게나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RSC 소속이기 때문에 미렌은 전통적인 스타일의 드라마 경험도 충분히 쌓았고 보수적인 영국식 기품과 위엄을 당연히 알았으며 이를 연극무대와 영화 속에서 종종 드러내기도 했다.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 지명을 받았던 <조지왕의 광기>의 퀸 샬롯, 테리 조지의 데뷔작으로 칸에서 호평받은 IRA 소재 정치드라마 <어느 어머니의 아들>에서 모성과 정치적 이념 중 딜레마를 겪는 어머니, (현재 그녀의 남편인) 테일러 핵포드의 멜로드라마 <백야>에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비극적인 옛 연인으로서 그녀의 연기들을 보면 정확하고 온도와 농도 조절에 능한 영국 배우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그래도 그 나라 대중에게 헬렌 미렌은, 저열한 인간세계에서 낭만을 꿈꾸었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향이자 RSC의 본거지인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본에서뿐 아니라 브리튼섬 전체의 섹시 퀸이었다. 윈저성에 사는 퀸과는 제법 그 의미가 먼.
“내가 정말 꿈꾸는 건 악명을 얻는 것”
1968년 RSC의 데뷔 무대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를 준비하던 당시, 22살의 미렌은 <가디언>과의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엄청나게 야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 모든 야심의 바탕은 질투심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극장에 갔는데 거기서 연기하는 내 또래의 아이를 날마다 질투했었다. 지금은 나만큼 잘하는 모든 사람들을 질투한다.” 덧붙여 어린 시절 스스로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해내면, 그저 잘하는 정도, 그저 훌륭한 정도가 아니라 그때껏 있어왔던 것들 중에 최고가 되겠다’고 했다 한다. 예술분야에 공헌한 대가로 여왕이 수여하는 데임 작위에 대해서도 서른살의 미렌은 부정적으로 응수했다. “그런, 권위에 의해 보호받는 모든 것들, 안정적이어야 하고 옳은 일을 해야 하는 것들이 나한테는 별 호소력이 없다. 내가 정말 꿈꾸는 게 있다면 악명을 얻는 것이다.”
그 같은 판타지가 실제로 무의식을 지배했기 때문일까. 젊은 날의 헬렌 미렌은 연극과 영화 속의 캐릭터로서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도발적이기를 자처했다. 국제적인 무기 거래와 (당시) 버마의 군부독제를 목소리 높여 반대했고 우간다의 전쟁 고아들을 변호했다. 골다공증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스틸튼치즈제조자연합과 함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더 퀸>의 오프닝과도 맞물린 1997년 총리 선거 때 앞장서서 블레어의 노동당을 지지했음은 물론이다. 일리냐 리디아 미로노프. 러시아 혈통의 본명을 가진 헬렌 미렌의 할아버지는 제정시대 마지막 귀족이었다. 1차대전 직후 무기 거래를 위해 영국에 머물던 중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그는 돌아갈 곳을 잃었고, 그의 아들 즉 미렌의 아버지는 모슬리 파시즘과 투쟁하는 좌파로 성장했다. 한때 관현악단에 속할 만큼 비올라를 잘 켰던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가 됐고 푸줏간 딸과 결혼했다. 1남2녀를 두게 된 미렌의 부모는 TV와 라디오 없이 가난한 저녁 식탁을 사이에 두고 몇 시간씩 정치와 예술과 철학에 관한 토론을 벌이면서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경제적인 독립을 자식들에게 가르쳤다. 어린 미렌은 엄마로부터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선생님이 될 것을 강요받았다. 연기에 대한 막연한 꿈과 부모의 뜻 사이에서 그녀가 진학한 세인트버나드학교는 수녀원부속이었다. 엄격한 여학교에서 연극선생이 되는 과정을 공부했다. 크리스마스 기념 연극에 참여한 것이 그녀의 생애 첫 연기였는데, 맡은 역할이 (하필이면!) 아담을 유혹해 죄를 짓게 하는 이브였다. 몸에 꼭 붙는 표범무늬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아담과 함께 에덴에서 쫓겨나던 판국에 무대 아래로 던져지면서 한 대사가 이랬다. “오 아담, 이제 우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요!”
누아르의 외투를 입고 새로운 출구를 얻다
“언젠가부터 나는 왕가슴에 금발인 여자로만 취급받았다. 내면의 나는 맹수 같고도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그런 면은 보여지지 않았고 그럴 기회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건 사람들을 겁주기 때문이다.” 미렌은 자신의 20대가 자신의 인생에서 최악의 시기였다고 최근 한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자신감을 상실했었고 늘 무서웠다고 회고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그땐 정말 행복하지 않았다. 겁먹었었다.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늘 겁먹었었다.” 헬렌 미렌은 지나치게 큰 코와 짧고 두꺼운 다리를 늘 콤플렉스로 안고 살았다. “난 내가 안 예쁜 걸 안다. 정말 멋지고 섹시한 것, 마릴린 먼로가 가진 그런 것을 나도 사랑하지만 나는 그런 종류가 아니다. 내가 가질 수도 없는 종류다.” 그럼에도 섹시함과 저돌성은 분명 자신의 모습 중 하나였고, 미렌은 “매번 차 한대 값의 돈이 생기게 하는” 섹시함과 상품성의 딜레마와 싸우면서 사진작가 제임스 웻지와 연애한 4년 동안 온갖 종류의 실험적인 포르노 사진들을 찍기도 했다. 책으로 내는 계획은 이루지 못했지만 미렌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 안에 있는 다른 내 모습들을 무엇이든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드러난 조잡하고 저속하고 비참한 내가 아니라 또 다른 나의 진실함 같은 것들.”
묵은 딜레마의 강박이 덜어지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국 TV영화 <프라임 서스펙트> 때다. 1991년 첫편이 만들어진 이 영화는 런던의 강력계 여형사가 주인공인 수사물. 제인 테니슨은 남성 중심적인 경찰조직에 들어와 반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독신 여성이다. 동료, 후배, 피의자, 피해자 가릴 것 없이 자신을 여자란 이유로 비하하고 적대하는 남성들의 세계에서 그녀는 똑같은 마초적 권력과 힘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쓴다. 또 알코올 중독이고 줄담배를 피우며 우울증을 겪고 있다. 사건 해결에는 성공하나 실패의 순간들을 맛보고 자기 자신의 상처를 돌보는 데 서툰 ‘고독한 영혼’. 얼핏 누아르의 비극적인 남자 영웅과도 겹치는 캐릭터를 통해 헬렌 미렌은 자신의 본성이 지닌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새로운 출구를 얻었다. “<프라임 서스펙트>는 내가 섹시한 존재가 아닌 다른 것이 되게 해주었다. 내 모습을 통해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고, 내 왕가슴과 금발을 연결지을 필요도 없었다.” 각종 언론을 통해 ‘이제껏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라는 점을 높이 평가받은 <프라임 서스펙트>는 영국뿐 아니라 미국 대중에게도 큰 반응을 얻어 이후 거의 해마다 한편씩 제작됐다. 4편이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것을 포함해 총 8개의 에피소드가 나왔고 지난해 공개된 7편으로 시리즈는 종결을 맺었다. 제인은 결국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이기지 못한 채 은퇴했다.
섹슈얼한 전율을 뿜어내는 영원한 여왕
헬렌 미렌은 <백야> 때 만난 감독 테일러 핵포드와 12년간 연인의 관계를 지속하다 1997년 비로소 결혼 절차를 밟았다. 52살이 되어 처음 불러본 “우리 남편”이라는 칭호가 그렇게 맘에 들 수 없는 한편, 아이를 낳을 계획은 앞으로도 없다. 물론 이전에도 낳아본 적이 없다. “애만한 사이즈의 인형이 움직이는 걸 보는 기분”이라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핵포드가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이 가끔 자신을 “양엄마”라고 불러오는 것조차 싫어한다. “엄마가 여러 명일 필요가 있나? 한명이면 되지. 친엄마가 건강하게 잘 살아 있는데 나까지 엄마가 되어줄 필요는 없다.” 미렌은 자신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해 영국 주간지 <라디오 타임스>의 누드 커버를 찍었다. 인터뷰 중에 ‘fuck!’, ‘shit’, ‘arse-licker’ 따위의 단어가 튀어나오는 일이 여전히 예사다.
기질은 변하지 않았다. 헬렌 미렌은 누드 달력사진을 찍어 병원 설립 기금을 마련하는 할머니(<캘린더 걸스>)도 되고 양아들과 연인의 관계를 맺는 여자 킬러(<섀도우박서>)도 되어 상식과 가치관에 반하는 일을 영화 안에서 저지른다. 언론들의 말을 빌리면 “젊음에 사로잡힌 세상에서 그녀는 장년에 접어든 여성들의 희망”(<인디펜던트>)이고, “데임 작위를 받은 배우들 가운데 60살이 넘어서도 섹슈얼한 전율을 뿜어내는 사람”(<더 타임스>)이다. 그러나 미렌은 나이를 잊고 방방 뛰는 철없는 노년은 결코 아니다. 혈기가 쇠한 뒤 조신함과 과묵함만 남은 노년은 물론 아니고 말이다. 둘 중 하나였다면 <더 퀸>의 엘리자베스 2세는 그렇게 먼 시대 유물 같은 품위와 깊은 데 숨겨진 섬세한 인간미를 한꺼번에 갖지 못했을 것이다. 헬렌 미렌은 자기가 여왕에 관한 온갖 자료를 끌어모아 공부했지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마릴린 크로포드가 쓴 엘리자베스 2세의 전기 <리틀 프린세스>와 여왕이 12살 때 차에서 내리면서 어느 관료에게 인사하던 짧은 순간이 담긴 영상이었다고 했다. 노년의 여왕을 연기하기 위해 소녀 시절의 엘리자베스를 끊임없이 들여다본 헬렌 미렌은 그 자신이 정신적 젊음을 잃지 않고 여전히 벗는 것도 두렵지 않을 파워풀한 노년이다. 스트라트포트의 섹시 퀸의 주름진 얼굴 위로 대영제국의 왕관이 얹힌 것은 불경한 일이 아니라 순리에 따른 일일 뿐. 여왕의 카리스마는 언제나 웅장하다.
“내가 해내면, 그저 잘하는 정도, 그저 훌륭한 정도가 아니라 그때껏 있어왔던 것들 중에 최고가 되겠다.”
“지금 이 순간에 이뤄져 있는 내 모습이 조금 놀랍다.”(Being me right now is sort of amazing)(골든글로브 수상 소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