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내 아버지는 사형수, 황동혁 감독의 <마이 파더> 촬영현장
2007-03-13
글 : 이영진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입구에 자리한 <마이 파더> 세트장. 스탭들이 다음 장면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한쪽에선 승강이가 한창이다. 두툼한 시나리오를 펼쳐든 김인권은 늦바람난 수험생마냥 대니얼 헤니를 붙잡고 영어 발음 교정을 요구하느라 정신없다. 바지춤에 손을 넣고 휴식을 취하는 대니얼 헤니는 김인권의 질문 공세에 붙들려 몇 차례 원어 발음을 흘려주다 마지못해 ‘오케이’와 웃음을 토한다. “대니얼하고 하면 (영어에) 자신감이 붙는다니까.” 솔깃하다. 정말 그럴까? “못 알아듣겠으면 이야기해요. 내가 통역해드릴게요.”(김인권) 또 한편에선 수의를 입은 김영철이 황동혁 감독을 ‘밀착마크’하고 있다. “이 정도?” “나도 이 장면에서 약간만 낮출까?” 김영철은 대사 톤에 대해 앞뒤 연결장면과 다른 면회장면의 감정선까지 비교 언급하며 수차례 ‘어린 감독’의 의견을 구한다. “(치과) 원장하고 상의해서 (이를) 갈았다고. 웃으면 천진난만하게 보이는데, 웃지 않으면 좀 기분 나쁜 인상이 돼. <그놈 목소리> 할 때 일부러 살을 통통하게 찌웠거든. 이번에 다시 9kg쯤 뺐지.”(김영철) 배우가 맨살 빼고, 생니 갈고 달려든 작품이니 감독 또한 질문공세가 반갑기만 할 것이다.

대니얼 헤니가 맡은 <마이 파더>의 제임스는 어릴 때 해외로 입양됐다가 주한미군으로 지원해 한국을 찾은 인물. 동료인 요섭(김인권)의 도움으로 제임스는 아버지 남철(김영철)을 만나게 되지만, 애타게 찾던 아버지는 좁은 감방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형수다. 이날 제작진은 교도소에서 면회를 나누는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장면을 공개했는데, 재밌는 사실은 열성적인 두 배우가 촬영이 끝난 뒤에 모니터를 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리허설을 한다는 점이다. 모니터 앞에 바짝 얼굴을 붙이고 주먹을 쥐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김영철과 낯선 감정 앞에서 무방비로 해제된 사람 같은 표정의 헤니를 나란히 보고 있노라면, 굳이 카메라로 찍은 장면을 따로 훔쳐볼 필요가 없을 정도다. 헤니는 “동갑내기가 아니라서 처음엔 대하기가 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첫 만남부터 편하게 하라고 하시더라”면서 “내가 어떤 감정을 선택하고 몰입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상대(김영철)의 눈빛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잘 따라가고 있다”고 말한다. <마이 파더>는 황동혁 감독에 따르면, “혈연을 확인하고 서로를 감싸안는 아버지와 아들”의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입양을 소재로 삼았으나 영화는 혈연이 외려 사회적 관계를 맺는 장애물임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으나 ‘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알아차린 아들의 스토리가 조금씩 공개되면 <마이 파더>의 얼개도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하반기 개봉예정.

대니얼 헤니의 매니저 정원석씨

“대니얼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처음엔 대니얼 헤니를 응원하러 온 모델인 줄 알았다. 시원한 인상에 몸도 길고 미끈해서다. 촬영현장에서 마틴이라 불리는 정원석씨는 대니얼 헤니의 매니저다. 캐나다 동포인 그는 2003년부터 해외모델을 캐스팅하는 에이전시 캣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있고, 헤니와 함께 일한 지는 4년째다. “매니저라고 소개하면 회사 소속 배우가 또 누가 있느냐고 물어본다. 대니얼밖에 없는데…. (웃음)” “전보다 한국말 실력이 많이 늘어서” 헤니를 위한 통역 업무는 전보다 줄었다는 그는 “둘 다 운동 좋아하는 활동적인 성격”이라 첫만남부터 죽이 잘 맞았고, 지금까지 죽마고우처럼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대니얼은 장난치는 걸 정말 좋아한다. <Mr. 로빈 꼬시기> 때는 너무 웃고 다녀서 말릴 정도였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에게 빅 테스트”라고 말한 <마이 파더> 촬영장에선 배우 스스로 자제하고 있는 듯하다고. “데뷔작과는 다른 성격의 연기를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감정신이 있는 날은 그 캐릭터에 빠져 산다. 나도 그럴 때는 일부러 말도 안 건다. 배우가 따로 요구하지 않아도 이젠 그의 마음이 보인다.” 헤니를 두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하는 그는 “대니얼이 한 걸음씩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 같아” 너무 뿌듯하다고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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