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3월 12일
장소 서울극장
이 영화
<블랙북>은 <원초적 본능>과 <스타쉽 트루퍼스>의 폴 버호벤 감독이 20년만에 모국인 네덜란드로 돌아가서 만든 2차 대전 스릴러다. 유태인 레이첼은 가족과 함께 벨기에로 탈출하던 중 나치군의 습격으로 인해 홀로 살아남는다. 운좋게도 네덜란드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게 된 레이첼에게 복수의 기회는 금새 다가온다. 나치의 본거지로 침투할 스파이로서의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를 이용해 독일군 대위 문츠에게 접근한 뒤 비서로 일하며 스파이 임무에 매진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사랑이다. 문츠 대위는 레지스탕스의 처형에 반대하는 인도주의자이며, 레이첼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몰래 눈감아주기까지 한다. 레이첼 역시 관대한 문츠 대위에게 진심으로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역사는 사랑앞에 비정한 법. 문츠는 레지스탕스 일당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레이첼은 독일군에게 체포당하는 동시에 레지스탕스들로부터는 이중 스파이 짓을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문츠와 레이첼은 감옥으로부터 탈출하지만 독일의 패망과 동시에 또다른 위험에 빠져든다.
100자평
네덜란드로 돌아간 폴 버호벤은, 단순하게 <블랙북>을 만든다. 몰살당한 가족의 복수를 위해 스파이가 된 레이첼의 역경은 특별한 장치 없이, 이어지는 사건과 결과들을 시간 순으로 이어붙이면서 빠르게 나아간다. 하지만 폴 버호벤이 나치스에 맞서 싸우는 스파이의 활약상 정도에 만족할 리가 없다. 폴 버호벤은 극단적인 폭력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천박하고 비열한 본성을 주목하는 감독이다. 이 세계에 폭력이 끊이지 않는 것은, 결국 예정된 것임을 <블랙북>은 태연하게 드러낸다.
영화평론가 김봉석
엉큼한 노장의 재기작은 언제나 반갑다. 폴 버호벤이 <쇼걸>과 <스타쉽 트루퍼스>, <할로우 맨>의 연이은 흥행 실패로 메거폰을 놓은지 어언 7년. 헐리우드를 떠난 그는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가 심기일전 <블랙북>을 만들어냈다. 섹스와 폭력에 대한 끈적끈적한 묘사로 악명높던 버호벤이 마음을 가다듬고 오스카용 역사극을 만들어냈을까. 그럴리가 없지. <블랙북>은 여전한 버호벤 표 영화다. 나치와 레지스탕스, 유태인이라는 전통적인 피가해자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선악 구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배신과 배반으로 가득한 전쟁속에서 레이첼은 <쇼걸>의 엘리자베스 버클리에 다름 아니다. 버호벤은 천박한 라스베가스 쇼비지니스의 뒷 세계를 탐험하듯 독일군 점령하의 암스텔담을 그려내고, 인간의 탐욕으로 점철된 과거사의 내장을 만천하에 까발리며 조롱한다. 폴 버호벤. 아직 날이 닳지 않았다.
<씨네21> 김도훈 기자
해외 프레스 리뷰
나치 치하의 네덜란드라는 무대와 버호벤 특유의 끈적끈적한 과장법의 야릇한 교배.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난폭한 희극. 그러나 오래오래 기억될만한 열정적인 영화다.
이안 네이던 <엠파이어>
<블랙북>은 위험을 무릅쓰는 대담무쌍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구식 전쟁영화들을 상기시키는 야심적인 회고다. 그리고 모든 부분에 있어서 성공적이다.
레이 베넷 <헐리우드 리포터>
종종 아둔하긴 하지만 결코 둔감하지는 않다. 지난 20년간 버호벤 최고의 작품인 <블랙북>은 2차대전의 총성 위로 사라져버렸던 목소리를 고백할만한 용기가 있다. 그러나 사실성을 위해 오락거리로서의 가치를 희생하지는 않는다.
맷 글라스비 <채널4 필름>
속도감으로 넘치는 2차대전 레지스탕스 스릴러 <블랙북>에는 헐리우드에서 연마한 명민한 테크닉과 유럽영화 캐릭터 특유의 감수성이 즐길만하게 얽혀있다.
데릭 앨리 <버라이어티>
<블랙북>은 버호벤이 지난 20여년동안 네덜란드에서 만든 첫번째 영화로, 독일어, 네덜란드, 히브루어, 영어가 뒤섞여 있는데다가 상영시간이 145분이나 된다. 그러나 지루한 순간이라곤 없다.
피터 트레버스 <롤링 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