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전문가 100자평] <블루프린트>
2007-03-13

인간 복제를 다룬 영화들은 꽤 있었지만, 대게 복제로 인해 자아와 영혼까지 복제된다는 식의 오해를 기반으로 한 것들이었다. (가령 <갓센드>에선 '전생'의 기억들이 옮아가질 않나, <이온플럭스>에선 아예 자아가 영속된다고 믿질 않나...) 복제는 사실 시차를 수십 년 달리하여 태어난 쌍둥이로 환경요인이 서로 다르게 작용한 탓에, 동시에 태어나 환경인자까지 공유한 일란성 쌍둥이들만큼도 유사성이 적고, 태어나는 방식으로 보자면 단성생식에 의한 자녀로 차라리 한쪽 부모만 '옴팡 닮은' 자녀와 비슷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똑같다'에 현혹이 되어, 같은 개체, 같은 자아, 같은 영혼 인 것처럼 오해되어 온 것이다. 한 피아니스트가 난치성 질환에 걸리자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딸을 낳고, 그 딸을 자신과 같은 피아니스트로 키운다. 모녀는 외모와 재능이 매우 닮았고, 어머니의 집착은 남다르다. 딸이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복제의 사실이 사회적으로 밝혀지자, 딸은 자신의 출생을 혐오하고 어머니를 저주하며 방황하기 시작한다.

이런 이야기는 꼭 복제가 아니더라도 애착이 강한 한 부모 가정의 자녀와 부모가 빚는 갈등들이다. 자식을 자신의 분신이라 여기며 집착하는 부모 밑에서 자신을 부모와 동일시하며 자라다가 그와 차별화되고 자아를 찾기위해 몸부림치는 청소년기의 방황은 보편적인 것이다. 다만 복제에 있어서는 부모자식간의 동일시와 유사성의 정도가 훨씬 심하기 때문에 갈등이 더 농축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영화는 부모 자식 간의 보편적인 갈등이 복제로 인해 심화되는 지점을 파고들면서, 복제를 신기하게 여기는 사회의 센세셔널한 관점이 아니라, 최초의 복제인간인 딸의 관점에서 갈등을 묘파해나간다. <블루 프린트>는 인간복제에 대한 매우 타당하고 설득력 있으며 윤리적으로 올바른 원작을 바탕으로, <글루미 선데이>의 감독 롤프슈벨이 연출한 대단히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특히 1인2역을 전혀 티 나지 않게 연기한 <롤라 런>의 배우 프란카 포텐테의 연기는 신비할 지경이며, 영화 곳곳에 포진해 있는 피아노 연주곡들은 귀에 대단한 호사를 안긴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간 영화에서 큰 수확을 얻는 기쁨이란! 조금이라도 많은 관객들이 이 기쁨을 누리시길.
-황진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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