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편집장이 독자에게] 희생양 장준혁
2007-03-16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정치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없다. 신문 정치면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그렇게 안 보여줄 것 뻔히 아는데 보여줄 게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정치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못한다. 번번이 홀랑 다 벗는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어디 한두번 속나. 보는 사람이나 보여주는 사람이나 안 벗을 거 다 아니까 영 긴장감이 생기질 않는다. 직업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 벗지 않고 남겨두는 게 있다. 전두환의 비밀계좌처럼 볼썽사나운 가리개가 전복적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싸구려 비디오 에로물로 전락시킨다. 정치가 재미없다는 편견은 그래서 생긴다. 그런데도 정치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없다고 말한 건 정치가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엉뚱한 데서 작동할 때이다. 가릴 거 다 가리는 정치인들과 달리 직업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의 정치는 종종 알몸 다 보여줄 때까지 거침이 없다. 황우석 사건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연일 반대증거가 제시되고 배신자가 속출했던 그때는 정말 입이 바짝 타는 긴장감이 있었다. 사회와 담을 쌓고 연구에 몰두해야 할 연구소에서 한국사회를 폭풍 속에 몰아넣은 사태가 빚어지자 정치 9단, 10단을 자랑하던 사람들도 팬티까지 홀랑 벗는 쇼를 했다. 이럴 때 정치는 코미디, 액션, 멜로, 에로, 공포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흥미만점 구경거리가 된다.

의료사고를 둘러싼 소송을 다룬 <하얀거탑> 후반부를 보다가 황우석 사건이 떠올랐다. 사건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사건의 전개과정은 비슷했으리란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오경환 교수가 염동일에게 젊은 의학도의 도리를 말하는 장면은 황우석 사건 때 브릭의 젊은 연구자들이 취했던 행동을 상기시켰다.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려는 명인대학교 의국 분위기나 사건 당시 황우석 연구실의 분위기나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일부에선 <하얀거탑>이 묘사한 과장 선출 투표나 의료사고가 사실과 많이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병원에서도 정치가 작동한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수가 되기 위해, 승진을 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현실이 <하얀거탑>이란 정치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하얀거탑>은 지금껏 다른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한 한국사회의 거울이었다.

그렇다고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황우석처럼 비난하긴 힘들다. 이번 특집에서 고경태 전 <한겨레21> 편집장이 말한 대로 장준혁은 “좋은 놈이나 나쁜 놈이 아니라 복잡한 놈”이다. 그가 복잡해진 건 우리가 장준혁을 둘러싼 환경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맹수들이 들끓는 정글에서 학처럼 고고하게 살 수는 없다. 함께 발톱을 세우지 않으면 잡아먹힐 텐데 날개도 없는 주제에 어찌 학이 되겠나. 물론 최도영처럼 맹수가 없는 곳으로 피해 숨죽이며 사는 길도 있지만 장준혁은 맹수의 길을 택했고 이왕 맹수가 된 이상 정글의 왕이 되려 한다. 이 독한 인간은 그러기 위해 권모술수를 배웠고 언제나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아들, 선배, 후배, 친구, 의사, 남편, 애인, 교수, 외과과장 등 그가 쟁취하고 지켜야 할 자리는 점점 늘어나는데 하루 24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그걸 어떻게 다 감당하나?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린 삶. 그는 그런데도 짐을 더는 대신 짐을 더해갔다. 자기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른 채 말이다. 현실에서 비슷한 처지를 겪은 우리 대부분은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저러다 허리 휠라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장준혁은 사회가 우러르는 자리에 바쳐진 일종의 희생양이다. 그렇게 죽어 사라지지 않았으면 괴물이 되고 말았을, 불쌍한 제물.

P.S. 영화평론가 한창호씨가 연재했던 ‘영화와 오페라’ 코너가 이번주 5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준 그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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