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미국 소년들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에 열광했고, 모터사이클의 세계를 동경했으며, 코믹북을 보며 성장했다. 유려한 드로잉과 화려한 색채로 가득한 코믹북이 그린 슈퍼영웅의 세계는 소년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그중에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고스트 라이더>도 있었다. 불타는 해골의 모습으로 모터사이클을 타는 이 기괴한 영웅에 매료된 소년들 중에는 마크 스티븐 존슨과 니콜라스 케이지가 있었고, 공히 64년생이기도 한 두 사람은 영화 <고스트 라이더>에서 감독과 배우로 만나게 된다.
악마와 거래를 한 남자
영화는 악마에게서 도망친 고스트 라이더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 악마와 영혼을 거래하는 자니 블레이즈. 그의 순진한 선택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아버지와 록산느를 떠나 보내야만 하는 쓰라린 대가를 지불한다. 시간이 흘러 블레이즈는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스턴트 영웅이 되어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여전히 혼자만의 공간에서 달콤한 젤리빈과 카펜터의 말랑말랑한 음악을 들으며 갇혀 사는 나이든 소년일 뿐이다. 웨스턴과 코믹북 장르가 적절하게 혼합된 고딕 스타일의 <고스트 라이더>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다소 코믹하고 엉뚱한 캐릭터를 보여줌으로써 슈퍼영웅물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어두운 과거를 가진 고독한 영웅’을 새롭게 해석했다. 웨스턴 장르의 흔적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를 입고 폼 잡고 몰려다니는 악당들의 모습을 비롯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보인다.
헬사이클로 이름 붙여진 고스트 라이더의 모터사이클은 영화 속의 또 하나의 캐릭터로, 단순히 탈것 이상의, 기계와 동물이 결합된 신들린 듯한 개성을 담기 위해 세심한 디자인이 요구되었는데 각각의 기능을 장면마다 최적화하기 위해 아트팀은 총 7개의 모터사이클을 제작해야 했다. 불사의 모터사이클 스턴트맨 이야기인 만큼 좀처럼 멈추지 않는 카메라를 위해 360도 회전하도록 특별히 제작된 스테디캠과 머리 위의 케이블에 부착되어 빠른 트래킹 숏을 가능하게 해준 스파이더캠이 끊임없이 사용되었다.
70년대 미국 문화에 대한 향수가 곳곳에
1940년대에 처음 선보인 <고스트 라이더>는 말을 탄 총잡이였다. 마블사가 판권을 사들인 이후 70년대에 재등장한 그는 모터사이클을 탄 불사의 스턴트맨으로 등장한다. <고스트 라이더>가 팝콘무비의 탈을 쓴 <파우스트>이건 그 반대의 경우이건 간에 말을 탄 선대 고스트 라이더와 모터사이클을 탄 고스트 라이더가 함께 대지를 달려가는 모습은 코믹북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다.
70년대 미국에 관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이는 <고스트 라이더>에는 한때 문화 코드였던 <이지 라이더>(1969)의 캡틴 아메리카 피터 폰다가 악마 역을 맡았으며, 카우보이가 너무나 어울리는 샘 엘리엇이 이야기의 화자이자 선대 고스트 라이더 역을 맡아 재미를 돋웠으며, 아버지에게서 지옥을 접수하려는 악마의 반항적인 아들로는 <아메리칸 뷰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웨스 벤틀리가, 자니 블레이드의 영원한 사랑인 록산느에는 에바 멘데스가 함께했다. 텍사스가 배경인 <고스트 라이더>는 실제로 호주의 멜버른에서 100% 촬영되었다.
소니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라운드 테이블에는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에바 멘데스, 웨스 벤틀리와 감독 마크 스티븐 존스가 참석했다. 5시간 동안의 운동을 막 끝내고 돌아왔다는 니콜라스 케이지는 무척 피곤해 보였지만, 영화와 관련한 질문에는 성실하게 자신의 생각을 흐트럼없이 들려주었다.
고스트 라이더는 가식없는 영웅
자니 블레이즈 역 니콜라스 케이지
-자니 블레이즈처럼 정말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악마와 거래할 수 있을 것 같나.
=니콜라스 케이지: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 꼭 자기 자신의 실수가 아니더라도 솔직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 때문에 원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지 않은가. 문제는 잘못을 깨닫고 난 뒤부터다. 그때부터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자니 블레이즈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렇지만 그는 거기서 무너지지 않았다. 그게 중요하다.-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니콜라스 케이지: 처음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전해 들었을 때, 하와이에서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었다. <고스트 라이더>는 어린 시절 내내 보고 자라온 코믹북과 내 주된 관심사인 모터사이클, 이 두 가지가 한 작품을 통해 열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다.-실제의 당신은 자니 블레이즈처럼 젤리빈과 카펜터스 음악을 즐겨듣는 스타일인가.
=니콜라스 케이지: 그렇다. 젤리빈을 좋아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언젠가 설탕은 알갱이 모양의 행복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나쁜 것인지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예가 설탕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설탕과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그렇다면 영화 속의 근육질의 몸매는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을 받은 것인가.
=니콜라스 케이지: 실제 내 몸이다. 지금도 5시간 동안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돌아왔다. 1년간 매일 5시간씩 운동해왔다 .-코믹북 수집가로 알려져 있듯이 코믹북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스트 라이더>가 특별한 이유에 대해 말해달라.
=니콜라스 케이지: 어린 시절 코믹북은 내게 꿈을 꾸는 힘,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현대의 그리스신화 같은 것이다. <고스트 라이더>나 <헐크>를 특히 좋아했는데, 그러고 보면 몬스터에 특히 매료되었던 것 같다. 기괴한 외양을 하고 있지만, 그런 그들이 선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선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 멋지다고 여겼다. 7살 때 처음 접한 <고스트 라이더>를 비롯한 많은 코믹북은 깊숙이 되새기다보면 무척 철학적이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도 <고스트 라이더>가 가장 철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월트 디즈니가 고전 중의 고전인 <파우스트>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고스트 라이더>는 코믹북 파우스트인 셈이다. 고스트 라이더의 상징인 화염에 둘러싼 해골을 한번 떠올려보라. 무섭다고들 하지만 우리 모두 그 해골을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해골은 모든 가식을 떨쳐버린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고스트 라이더는 다른 이들처럼 자신을 가면 뒤에 숨기거나 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준다. 그런 그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선이나 색채가 참 아름답게 디자인되어 있다. 내 팔에 고스트 라이더 문신을 예전부터 새겼던 이유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팀 버튼 감독과 함께 한때 슈퍼맨 시리즈에 내정되기도 했었는데, 최근의 슈퍼맨 시리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니콜라스 케이지: 원작의 컨셉에 충실한 <수퍼맨 리턴즈>는 분명히 그 향수어린 세계를 대단히 잘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팀과 나는 캐릭터를 재창조하고 싶어했고 그 점에 있어 스튜디오와 의견을 달리했다. 서문이 더이상 필요없는 슈퍼맨과 달리 캐릭터 소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고스트 라이더>가 내게는 훨씬 매력적이다.-<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당신을 기억한다. 이번에는 <고스트 라이더>와 같은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에 출연했는데 작품 선택에 있어 달라진 점이 있는가.
=니콜라스 케이지: 좀더 많은 사람들이 블록버스터를 본다는 점에서 요즘 내가 블록버스터 영화에만 출연하는 것처럼 여기는데 나는 언제나 끊임없이 인디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사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블록버스터 액션물인 <더 록>은 같은 해에 만들어진 영화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 출연하기로 했을 때 그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타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고, <더 록>이 그렇게 히트할 줄 알고 선택한 것도 아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독특한 사랑 이야기였고, <더 록>에서는 숀 코너리라는 대스타와 함께 연기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을 뿐이다.
스턴트맨을 연기한 스턴트맨들의 노고가 컸다
마크 스티븐 존스 감독 인터뷰
-코믹북의 슈퍼영웅들이 끊임없이 영화화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마크 스티븐 존스: 일단 컴퓨터그래픽의 발달로 우리가 실제 환상의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점과 세계가 이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회색의 세계에서 영화관에 앉아 있는 2시간 동안은 선악이 분명한 세계를 즐기고 싶기 때문이지 않을까.-니콜라스 케이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어땠나.
=마크 스티븐 존스: 니콜라스 케이지는 정말 독특한 존재다. 그는 분명히 그 자체로 캐릭터이다. 초기 시나리오상의 자니 블레이즈는 훨씬 어두운 캐릭터였다. 헤비메탈에 둘러싸여 있고, 줄담배를 물고, 거친 말을 입에 담고 사는 캐릭터였는데 닉(니콜라스 케이지)의 생각은 달랐다. 의도하지 않게 악마와 거래해버렸다면, 그리고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라면 오히려 그는 언제나 악에서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 의견에 공감했고, 그래서 시나리오에 수정이 가해졌다. 젤리빈이나 카펜터 음악이나 약간 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한 자니 블레이즈의 엉뚱한 면은 닉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원작에서 록산느는 금발의 풍만한 몸매를 가진 캐릭터로 그려져 있다. 에바 멘데스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데 그녀를 캐스팅하게 된 이유는.
=마크 스티븐 존스: 코믹북의 외모와는 일치하지 않지만 에바에게는 코믹북에서 그리고 있는 여성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에센스가 있다. 원작이 다른 슈퍼영웅물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탓에 해석의 여지가 많이 열려 있었고, 에바가 강하면서도 여린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리라 믿었다. 실제로 배경인 텍사스에는 푸른 눈의 금발보다는 라틴계 미인들이 훨씬 많다.-액션신이 훌륭하다. 스턴트를 촬영하는 중에 어려운 점이나 위험한 순간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마크 스티븐 존스: 그렇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자니 블레이즈가 모터사이클로 고속도로에서 묘기를 부리며 록산느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아내는 장면이 무척 위험했다. 스턴트맨이 헬멧도 쓰지 않고,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도로 위를 고속으로 달려야 했는데 보는 내가 아찔했다. 또 한번은 자니 블레이즈가 스턴트쇼를 하다가 튕겨져 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다 실제 상황이었다. 그때 몸에 와이어를 단 채 액션을 맡았던 스턴트맨은 머리가 타이어에 심하게 부딪혀 한동안 정신을 잃었다. 그가 맨 처음 정신이 들자마자 했던 소리가 그 컷을 쓸 수 있냐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