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조도로프스키와 박찬욱, 이준익과의 만남
2007-03-16
글 : 강병진

<엘토포>, <홀리 마운틴>의 개봉을 맞아 내한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한국의 감독들을 만났다. 지난 3월6일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도로프스키는 "영화에 있어서 새로운 것들은 모두 한국에 있다"며 <왕의 남자>와 <친절한 금자씨>, <복수는 나의 것>등의 영화를 놀라운 작품으로 평했다. 지난 8일과 9일에 걸쳐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과 <친절한 금자씨>의 박찬욱 감독을 만난 조도로프스키는 서로의 작품에 대한 호감과 영화감독으로서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도로프스키’감독과 ‘박찬욱’ 감독과의 대화 -3월9일 금요일 오후1시

조도로프스키 | 나를 알고 있다니 놀랍다.
박찬욱 | 영화감독으로서 당신을 모를 리가 없다.(웃음) 친구들끼리 ‘레이져 디스크’시절, <엘 토포>,<홀리 마운틴>을 힘들게 구해서 단체로 관람했다. 소문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영화를 보고 모두 거의 경악했다. <성스러운 피>는 친구인 이준익감독이 수입 했는데, 그때 대단한 영화를 수입했다며 놀라워했었다.
조도로프스키 | 난 당신의 영화중 <올드보이>를 무척 감명 깊게 봤다. 그 영화에 대해 궁금한 점이 하나 있는데, 주인공(오대수역-최민식)이 실제로 낙지를 먹는 건가? 난 이 장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박찬욱 | 당연히 진짜다. 특히 최민식은 실제 불교신자여서 날 것을 못 먹는데도, 연기를 위해 진짜 먹어야만 했다. 먹기 전에 합장 기도를 드리기까지 했다.(웃음) 만화작업을 꽤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림부터 글까지 모두 직접 하시는지?
조도로프스키 |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림은 관련친구들이 함께 작업한다.
박찬욱 | 안 그래도 지금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다. 감독은 <괴물>의 봉준호감독이 맡기로 했다.
조도로프스키 | 두 감독의 만남만으로도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박 감독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 가?
박찬욱 | 63년생이니 올해로 44세다.
조도로프스키 | 당신은 매우 빨리 성장한 감독이다. 나는 37세에 영화를 시작했고, <엘 토포>는 40세, <홀리 마운틴>은 43세 때 연출했다. <성스러운 피>는 57세때 만들었고.
박찬욱 | 노장의 힘이 느껴진다. 대단하다.
조도로프스키 | 난 세계에 현존하는 영화들 중에 한국 영화가 제일 낫다고 생각한다. 난 영화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냉철한 편인데, 미국 할리우드는 쇠퇴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영화가 흑백 누아르처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찬욱 | 나도 흑백영화를 찍고 싶다. 그런데 돈 대주는 사람들이 싫어한다. (웃음)
조도로프스키 | 그러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파리의 한 카페에서 사람들을 위해 타로점을 봐준다. 타로카드에 상당한 애착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도 반가운 사람들에게 타로를 봐주고 있는데 당신에게도 선물을 하고 싶다.(자신이 직접 제작한 타로 카드를 펼쳐놓으며) 궁금한 점이 무엇인가?
박찬욱 | 나에게 미국으로부터 감독 진출 제의가 들어오면 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궁금하다.
조도로프스키 | 내 개인적인 소견부터 말하자면, 당신같이 출중한 능력을 가진 감독이 미국에 진출하는 것을 반대한다. 미국영화사회는 산업화되어 있어서 당신 같은 감독이 미국에 가면 위험하다. 나도 거기 가서 망쳤으니까. (웃음) (타로카드를 보며) 당신은 한국에서는 이미 이루고 싶은걸 모두 이룬 상태다. 타로는 당신이 미국에 진출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을 말리고 싶다.(웃음)
박찬욱 | 감독님의 취미는 무엇인지.
조도로프스키 | 타로공부를 하거나 영화를 본다. 그리고 꾸준히 글도 쓰고 있고. 하루 하루에 감사하며 시간을 잘 활용하려 애쓴다. 정해놓은 시간에 맞춰 하루를 보내는 편이다.
박찬욱 | 굉장히 규칙적인 생활을 해오고 계시는 것 같다.
조도로프스키 | 부인이 젊기 때문에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웃음)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위한 이정도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조도로프스키’감독과 ‘이준익’ 감독과의 대화 -3월8일 목요일 오전11시

조도로프스키 | 당신의 영화 <왕의 남자>는 파리에서 두 번 봤다.
이준익 | 아, 정말인가? 영광이다.
조도로프스키 | 우연히 파리의 DVD 매장에서 발견해서 봤는데 멋진 영화였다. 당신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접한 셈인데, 이번에 와서 만나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이준익 | 나는 15년 전 당시 외화 수입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엘 토포>와 <홀리 마운틴>을 수입하려고 했는데 판권 소재가 불분명해서 실패하고 <성스러운 피>만 한국에 수입해 개봉했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성스러운 피>를 수입했던 1994년 한국에서는 검열이 심했었다. 하지만 감독님의 영화를 한국에 꼭 소개를 하고 싶어서 본의 아니게 약간의 편집을 했다. 지금에서야, 정중히 사과 드린다.(웃음)
조도로프스키 | 한국뿐만 아니라, 내 영화를 수입한 나라들은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편집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준익 | 30여 년이 지나서 한국을 비롯, 전 세계에서 이 영화를 개봉하는 것에 대한 소감은 어떤가?
조도로프스키 | 내가 만들었던 건 ‘그냥 영화’였지, ‘산업에 속해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대중과 거리가 있었던 셈이다. 멕시코에서 영화를 찍었을 때는 (이상한 영화를 찍는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날 죽이겠다고 가슴에 총까지 들이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흐르고 세상도 변해서, 날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도 내 영화를 보며 박수를 친다.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젊은이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이준익 | 그것이 진짜 예술가의 삶인 듯하다. 예술이라는 것은 본래 기존 도덕의 선을 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나는 아직 비겁해서 그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웃음)
조도로프스키 | 당신은 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배운 건가?
이준익 | 아니다. 나는 영화 전공자가 아니다. 연출부 일도 안 해 봤다. 대학에서 순수 회화를 공부했을 뿐이다.
조도로프스키 | <왕의 남자>를 보고 의상이나 촬영 기법 등이 좋길래,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영화를 배운 줄 알았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영화가 있나?
이준익 | 2주 뒤에 크랭크인 하는 영화가 있다.
조도로프스키 | 기회가 되면 언제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 어떤 영화인가?
이준익 | 하하. 그럼 정말 영광이겠다. 새 영화는 세대 간의 차이를 좁히는 음악 영화다. 40대 남성 직장인들의 록밴드가 중심이다.
이준익 | 외람되지만, 감독님 영화를 보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감독님의 숙명적인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가?
조도로프스키 |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이 영화에 투영되기도 한다. <엘 토포>를 보면 엘 토포의 여자가 다른 여자와 함께 떠나지 않나. 그건 실제 내 경험이다.
이준익 | 그리고 <엘 토포>의 주인공인 여자와 함께 떠나기 위해서 자식을 버린다. 그러한 장면들은 내면의 욕망을 표현한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겪은 것인가?
조도로프스키 | 어느 정도는 개인적인 체험이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서도 출발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경험의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