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요새 내가 사는 유일한 낙인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한때 열광했던 애니메이션 <심슨네 가족들>, 영화 <좋지 아니한가>는 같은 맥락에 놓여 있는 작품들이다. 전통적으로 가족영화가 걸어왔던 기치인 ‘희생과 헌신’을 신발장 앞 발매트로도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좋지 아니한가>는 이 연관성을 숨기지 않는다. 영어 제목은 <심슨네 가족들>(원제 더 심슨스)을 연상시키는 <심스 패밀리>이고, 거리 홍보 포스터에서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캐릭터와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짝짓기했다. 그러니 나의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대가 높아서였을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허전했다. 실망하거나 지루한 것도 아닌데 허전한 느낌. 아무것도 안 보고 나온 것 같은.
서로 다른 장르를 수평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화법의 세련됨이나 가족을 바라보는 태도의 참신함에서 분명히 <좋지 아니한가>는 한발 앞서가 있는 작품이다. 좋은 영화를 본 것 같기는 한데 영화가 이야기하는 ‘무덤덤함’이 온몸으로 체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 영화는 지나친 ‘how to’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불가능하거나 힘든 이해를 하려고 지나치게 애쓰거나 이해한다고 바락바락 우기지 말고 그냥 조금 떨어져 앉아 서로를 인정하자는 영화의 메시지에는 100% 공감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만약 우리 좀 거리를 갖자, 그러지 뭐 할 수 있는 관계라면 애당초 가족은 숱한 영화들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징글징글하면서도 짠하고 측은하면서도 역겨운 꼬라지들로 뒤엉켜 살려니 피곤한 것이고 조금만 덜 피곤하기 위해 짜내는 지혜가 바로 이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 아닐까. 그런데 <좋지 아니한가>의 가족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무심해 보인다. 서로에게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관심 끄고 살고 싶지만 자의든 타의든 그럴 수 없어 괴로운 게 가족인데 심씨 집안 사람들에게는 그런 징글징글함의 정서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집 식구들의 모습이 현실적인 가족을 보여준다는 데 나로서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21세기 우리가 따라배워야 할 모범가정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에도 썼던 이야기지만 가족을 가족이게 하는 건 그것이 피로 맺어졌건 다른 인연으로 맺어졌건 오랜 시간 뭉개지고 삭힌 연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심해지기 힘들고, 힘들기 때문에 무덤덤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좋지 아니한가>는 이런 내 생각보다 앞서 있는 것 같다. 내 몸은 21세기에 있어도 내 머리는 20세기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