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숫자 마케팅이 흥행에 미친 영향과 성공 사례
2007-03-23
글 : 신민경 (자유기고가)

<300> <므이> <21그램> <28일후…> <8마일> <PM 11:14> 등 제목에 숫자를 써서 시선을 사로잡는 영화들이 있다. 최근 개봉을 앞둔 <넘버 23>은 감독 조엘 슈마허와 배우 짐 캐리의 이름 글자 수를 합하면 23이라는 식의 숫자 마케팅으로 눈길을 끌었다. 왜 이 같은 숫자 마케팅이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숫자 마케팅이 흥행에 미친 영향과 성공 사례, 그리고 숫자와 관련된 영화계 안팎의 에피소드를 두루 살펴본다.

1장. 제목에 담긴 메타포

주제의식을 간단한 숫자 몇개로 나타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잘만 쓰면 주제의식도 드러내고 관객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은 제목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300이란 숫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해졌다면 이미 당신은 숫자 마케팅의 그물에 살짝 걸려든 셈이다. 300은 B.C. 480년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에 맞서 싸운 스파르타 전사들의 수를 뜻한다. 지금으로 치면 1개 대대의 인원에도 모자란 소규모 부대. 하지만 이 무모한 싸움이 바로 오늘날 동서양 구분의 기초를 만든 계기가 된 ‘테르모필레 전투’다. 300은 당시 군인들의 강인한 정신력을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다.

<8마일>

<8마일>은 언뜻 평범한 느낌의 제목일 수도 있다. 실제로 ‘8마일’은 디트로이트의 평범한 도로 이름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8마일이 부유층과 빈민층을 가로지르는 이상과 현실의 심리적 경계선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지미 래빗 스미스 주니어(에미넴)는 디트로이트의 8마일을 경계로 한 빈민촌에서 자랐지만 최고의 래퍼를 꿈꾸는 백인(실제로 디트로이트는 에미넴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랩 배틀 장면에서 에미넴은 흑인촌에서 소외받으며 자란 백인의 한을 원없이 풀며 심리적인 ‘8마일’을 무너뜨린다. 영화는 미국 개봉 첫주 5124만달러를 벌어들이며 1위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21그램>에서 숫자는 작품의 주제의식과 직접적으로 결부된다. 21그램은 5센트 5개 혹은 벌새 한 마리, 초콜릿 바 하나 정도의 무게인 동시에 인간이 죽을 때 줄어드는 무게이기도 하다. 엔딩장면에서 숀 펜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21그램은 얼마만큼일까? 얼마나 잃는 걸까? 언제 21그램을 잃을까? 얼마나 많이 그들과 함께할까? 얻는 건 얼마만큼일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하나의 교통사고로 얽힌 세 가정의 비극을 초코바의 무게가 고스란히 삶의 무게가 되는 순간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같은 교통사고라는 소재를 썼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도 있다. <PM 11:14>는 한적한 지방 도로에서 밤 11시14분에 일어난 5건의 사건을 다룬 웰메이드 스릴러다. 음주운전 중 사람을 치게 된 청년, 밴을 몰고 거리를 폭주하다 사고를 내는 세명의 십대, 여자친구의 낙태 수술비 마련을 위해 편의점에 권총강도를 벌이는 청년과 편의점 여종업원, 죽은 남자친구의 시체를 이용하여 다른 남자친구에게 살인누명을 씌우려는 소녀, 딸이 살인을 저지른 줄 알고 범죄를 은폐하고자 하는 소녀의 아버지까지.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다섯 그룹의 등장인물들이 교묘한 퍼즐 조각처럼 맞아떨어지면서 오락적 쾌감을 안겨준다.

숫자로 된 제목은 종종 호러영화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도 한다. 1896년 베트남 달랏에서 발견된 실존 초상화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므이>는 초상화의 끔찍한 비밀이 밝혀지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공포영화. 제목 ‘므이’는 10을 나타내는 베트남어이자, 촌스러운 여자 이름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옴니버스 공포물 <쓰리>와 <쓰리 몬스터>는 3개국 공동 프로젝트라는 의미를 담은 것 외에도 인간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3가지 차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공포를 전달한다.

2장. 관습적인 숫자들

숫자는 문화적인 관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령 13, 666, 4, 69처럼 숫자를 떠올리자마자 이미지가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13일의 금요일> <오멘> <셔터> <69 식스티 나인>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13은 잘 알다시피 서양에서 가장 꺼리는 숫자다. 일명 ‘Trickaidekaphobia’, 즉 13 공포증의 유래는 성경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곳이 다름 아닌 예수와 12제자가 모인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예수가 죽은 날인 금요일이 합쳐지며 탄생한 <13일의 금요일>은 공포영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크리스탈 호수 캠프장에 투숙한 10대들을 잔인한 살인마 제이슨이 죽인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50만달러의 저예산 공포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크게 히트했고 4천만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내면서 20년간 11편에 이르는 아류작이 만들어졌다.

<쎄븐>

13과 함께 악마의 수로 불리는 숫자 666은 요한계시록 13장18절에서 기인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인 666이니라.” 영화 <오멘>은 6월6일 새벽 6시 로마에서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들을 대신해 같은 시각 병원에서 태어난 데미안을 데려와 키운 부부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다룬 공포물이다. <오멘>은 4편까지 시리즈물이 제작되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고, 2006년에는 오리지널판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서양에 13과 666이 있다면, 동양엔 4가 있다. 죽음의 숫자 4의 이미지는 타이영화 <셔터>에서도 보인다. 주인공인 사진작가 턴이 유령을 피해 건물 계단을 뛰어가는 장면. 아무리 내려가도 계속 나타나는 4층은 공포를 극대화하는 주요한 요소다. <셔터>는 2004년 타이 개봉 당시 1억1천만바트(약 33억원)의 흥행수입을 기록, 역대 타이 박스오피스에서 7위를 차지했다.

반면 숫자에 대한 기존의 믿음과는 별로 상관없는 영화도 있다. <쎄븐>은 럭키 세븐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서 보여준다. 영화 속 숫자 7은 성경에 나온 7가지 죄악(탐식, 탐욕, 나태, 교만, 정욕, 분노, 시기)과 동시에 일주일간 하루에 한명씩 잔인하게 살해된 피해자 수를 의미한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스릴감 넘치는 연출, 화려한 영상미로 미국 내에서만 1억달러의 수입을 올렸으며 아카데미 편집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일본영화 <69 식스티 나인>은 ‘69’라는 특정 체위를 연상시키지만, 실은 비틀스, 롤링 스톤스, 베트남전, 히피족, 그리고 반전운동 등 혁명의 바람이 불던 1969년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정치색은 거의 빼고 남고생들의 성장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발랄한 청춘물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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