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없이 3D 캐릭터들의 슬랩스틱으로 진행되는 ‘논버벌애니메이션’, <빼꼼의 머그잔 여행>의 귀여운 백곰 ‘빼꼼’은 이미 영국 <BBC>, 미국 <카툰네트워크>, 프랑스 <M6> 등 20개국에 수출된 유명 인사다. 5년에 걸친 지난한 제작기간을 거쳐 <빼꼼의…>를 세상에 내놓은 건 2002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등에 진출했던 애니메이터 임아론 감독. ‘애니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예술가의 열정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이 ‘경영자적 마인드’라고 강조한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틈새를 뒤져 돌파구를 뚫는 그의 냉정과 열정을 들어봤다.
-‘빼꼼’ 캐릭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하다.
=2002년 장편 <빼꼼의 머그잔 여행>을 기획하며 각 캐릭터의 테스트 클립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러다 외국의 BRB라는 투자사로부터 제의가 들어와서 TV시리즈 <빼꼼>이 EBS, 투니버스 방송을 타게 됐다.
-<빼꼼의…>의 특징이라면 다채로운 슬랩스틱 동작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 한번 넘어지더라도 좀더 우습게, 화려하게 넘어지도록 고민했다. 그게 우리 작품이 특화시킨 점이다. 이게 ‘캐릭터애니메이션’이란 것이다. 1초 24프레임을 다 써가며 캐릭터의 매 순간을 하나하나 만들어내는 것이다. ‘캐릭터’라고 하면 귀여운 디자인만 연상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캐릭터들의 성격을 구축하는 것이다.
-모델로 삼은 작품이 있나.
=<천재 소년 지미 뉴트론>이라고, 특별히 작품에 끌렸다기보다 적은 비용으로 그 정도 성과를 냈다는 게 미덕이었다. 우리 목표도 최소한의 돈으로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그 점은 충분히 목표 달성했다.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래는 상품디자인을 했다. 제도, 설계 같은 건데 재미가 없었다. 자동차 디자인 공부하러 미국에 갔을 때 <게리스 게임>이라는 단편을 봤다. 아 이게 예술이구나 싶더라. 노인이 혼자 체스를 두는 작품인데 마치 두 사람이 두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해서 노인의 감정 상태를 표현했다. 내가 그때 할 줄 아는 건 컴퓨터뿐이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기술과 내가 꿈꾸는 창작, 이 두 가지를 결합할 수 있는 게 애니메이션이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한 애니 회사에 입사했는데 금세 회사가 어려워졌다. 그때 느낀 것이 좋은 작품을 하려면 아티스트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경영자의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내가 해보자” 싶어서 지금의 RG애니메이션스튜디오를 시작했다.
-보통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경제적 여건상 영화와 광고쪽 외주를 많이 받는데 RG는 아니라고 한다.
=외주를 받으면 창작 작업에 지장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어떻게 운영이 가능한가… 하는 건 ‘영업 비밀’이다. 비결은 열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지금은 돈이 안 돼도 내가 열심히 하면 주위에서 관심을 갖고 도와주게 돼 있다. 중요한 건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해서 인정받겠다는 생각이다. 먹고살려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