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미디가 아니라 웃음이 있는 이야기다
2007-03-28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이장과 군수>의 장규성 감독

“그 얘기를 왜 자꾸 집요하게 물어보시나요?” 곧 개봉하는 <이장과 군수>의 장규성 감독은 영화 속 군수의 상황이 노무현 대통령이 겪고 있는 현실과 유사하다는 질문이 거듭되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엇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말만 바꿔서 계속 던진 건 ‘코미디 영화감독’ 정도로만 인식됐던 그의 신작이 정치·사회적 함의를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폐교문제의 심각성을 담은 <선생 김봉두> 때나 임용고시제도의 허점을 얘기하는 <여선생 vs 여제자> 때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더니…”라는 그의 지적은, 하긴 정당하다.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는 코미디라는 외피에 싸여 있지만, 무언가 긴급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지방정치를 통해 한국사회와 정치를 풍자하는 <이장과 군수> 또한 그런 맥락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영화가 현실을 폭로하고 고발하면서 관객에게 대단한 행동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현안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이장과 군수>가 강조하는 바는 여전히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여유로운 웃음이기 때문이다. ‘코미디 전문 감독’보다 ‘웃음이 담긴 드라마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불리고 싶다는 장규성 감독을 싸이더스FNH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장과 군수>는 전작인 <여선생 vs 여제자> 이후 2년 반 만에 개봉한다.
=<여선생 vs 여제자> 끝난 뒤 한 1년을 놀았다. 2002년 <재밌는 영화>를 개봉했고, 2003년에 <선생 김봉두>를, 2004년에 <여선생 vs 여제자>를 개봉했다. 조금 정신없이 온 셈이다. 게다가 <여선생 vs 여제자>를 찍는 도중 첫아이를 낳기도 했다. 사실 강우석 감독님 말대로 감독은 쉬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됐다. 그래도 5년 동안 4편을 만든 셈이니 부지런했던 것 아닌가.

-<이장과 군수>는 어떤 점을 놓고 고민했나.
=선생님과 관련된 영화 두편을 하고 나니까 주위에서 내가 교육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보더라. 심지어 부모님이 교육자냐고 묻기도 하고, 아이들 영화 전문 감독으로 보기도 했다. 교대에서 강의 요청까지 들어왔다. 나는 이런 상황이 탐탁지는 않았다. 그 영화들을 준비하던 당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이어서 했던 것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다른 소재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문제적 감독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감독으로서 사회를 보는 책임감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느낌은 늘 갖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뭔가 담고 가는 것은 있어야지, 마냥 요절복통 코미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나.
=기본적인 이야기는 <선생 김봉두>를 찍으면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시골에서 촬영을 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젊은 사람이 동네 이장을 하면 재밌겠네. 그리고 군수 친구가 있고, 식으로.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될 수 없잖나. <선생 김봉두> 때는 폐교문제, <여선생 vs 여제자> 때는 임용고시 문제를 다뤘잖나. 이번에도 그런 식이었다. 사실 영화 속에 나오는 방폐장(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하나의 샘플이었다. 화장터나 쓰레기장 같은 것도 건설한다고 하면 지역 주민들이 들고 나서서 반대하지 않나. 나는 그런 것을 무작정 추진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그런 시설이 자기 지역으로 들어온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도 못마땅했다. 그런 것에 대해 내가 느끼는 정도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정도를 생각해보자는 의도로 섞어넣었다. 사실 상업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애초 투자사나 제작사도 그런 부분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그런 이야기없이 영화를 만든다면 나 스스로가 재미없어서 못하겠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장과 군수>는 단지 그런 문제를 넘어서 지방의 정치를 다루고 있는데.
=사실은 중앙인데 지방으로 옮겨 축소시킨 거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정치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 해도 다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나는 그런 사람들보다 오히려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평범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군수 노대규와 노무현 대통령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보더라.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군수가 노씨이고, 젊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치적으로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극의 흐름상 드라마를 만들다보니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그런 구조였고, 그러다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정치는 코미디로 만들어내기에 불편한 소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정치 얘기를 계속하면 재미없잖나. 예전에 강우석 감독님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이후로는 정치영화가 거의 안 나오는 것 같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안 좋아해서인 듯하다. 결국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희화화하고 웃음을 많이 주는 방법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일련의 코믹한 상황을 저변에 깔아놓고 이장과 군수라는 위치에 처한 두 친구 이야기에 중점을 뒀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건드리면서 조심성이 없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를테면 의사가 나온 드라마도 현실성이 있네, 없네, 이야기가 많잖나. 그래도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면 가공의 세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실과 맞는 면이 있어서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이 영화에서 내가 보고 느낀 어떤 실제적인 일들을 극단적으로 인용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한쪽 편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철없어 보이는 이장에 비해 군수는 철저하게 강직하고 올곧은 사람으로 묘사되던데.
=그도 생각만 있지 경험이 없잖나. 어떻게 정책을 끌고 갈 것인지 고민도 하고 주민을 설득할 방법도 미리 찾아야 하는데, 그냥 옳다고만 밀어붙이잖나.

-그러니까 더더욱 현 정부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얘기다.
=시나리오 때부터 군수 캐릭터에는 코미디가 없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이장을 짓밟는달지, 이런 식으로 군수까지 이상한 인물로 나오면 두 사람이 마구 날뛰다가 볼일을 못 보는 꼴이 될 것 같았다. 그저 장난만 치다 만 영화가 될까봐. 그나마 유해진이 연기한 덕에 좀더 유쾌해진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발 정부 얘기는 그만 물었으면 싶다. 왜 이번에만 집요한 건지…. (웃음)

-애초부터 대조적인 외모의 배우를 기용하려고 했던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애초부터 차승원은 결정돼 있었고 상대 배우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먼저 시나리오를 본 차승원이 군수 역에 유해진이 어떻냐고 말했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웃음) 아무래도 유해진 하면 코믹한 이미지나 건달 같은 게 떠오르니까. 얼마 뒤 다시 정리해보니까 오히려 그게 더 재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해진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유해진도 처음에는 ‘이게 왜 나한테…’ 하면서 당황해했다. (웃음) 그동안 자신이 했던 이미지와 다른데다가 별로 크게 돋보이는 게 없는 듯 보이는 캐릭터였으니까 말이다. 좀 꺼리는 것을 내가 설득했다. 초반에는 이장이 이끌어가는 것 같지만 후반부로 가면 군수의 이야기로 갈 수밖에 없으니 결국엔 두 인물이 동등하게 보일 것이라고. “눈떠!” 같은 대사는 캐스팅 이후 넣은 것이다.

-외모를 이용한 유머가 많더라.
=나도 처음에는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차승원과 유해진이 평소에 그러는 거다. 어떻게 이 얼굴로 주연을 하냐, 시대가 좋아졌다 등등 농담을 하더라. (웃음) 사실 그런 것도 적당히 해야 재밌지, 심하면 재미없잖나. 그래서 나중에는 외모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변희봉 선생님까지 ‘장 감독, 이번 신에서 말이야. 내가 이런 대사를 할 거야. 그 따구로 생겨가지고선…’, 이러시더라. 그래서 선생님을 말렸다. (웃음)

-그동안 영화에 많이 나오지 않았던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우선 전원주 선생님이 있다. 예전에 어떤 영화엔가 잠깐 출연하신 적이 있는데, 이 정도 출연한 건 처음이시라더라. 유해진의 어머니 역을 캐스팅해야 하는데 전원주 선생님 얼굴을 보니까 똑같은 거다. 결국 연락을 해서 둘이 사무실에서 만났는데, 두 사람도 서로 보더니 깜짝 놀라더라. (웃음) 너무 닮았다면서. 옆모습은 정말 같다. (웃음) 배일집 선생님은 이 영화 프로듀서가 <달콤, 살벌한 연인> 때 인연으로 부군수 역으로 기용했고, 남일우 선생님과 연규진 선생님은 고맙게도 내 영화를 잘 보셨더라. 그리고 초반에 마을 주민으로 나오는 김도향 선생님은 김미희 대표가 이런 일을 하고 싶어하신다면서 추천해주셨다.

-영화 초반 상가 모습이 <선생 김봉두>의 마을잔치 장면과 비슷하더라.
=그것과 관련해서는 진짜 억울하다. 차승원이 동네 아저씨들을 뒤로하고 마루에 앉아 있는 스틸이 인터넷에 올랐는데, 누군가 댓글을 달았더라. ‘제작비 아끼려고 <선생 김봉두> 세트를 그대로 쓰다니’, 이러면서. 거긴 강원도였고, 이번에는 전북 임실인데 어떻게 같은 세트일 수 있고, 또 그때 세트가 지금까지 어떻게 남아 있나. 그렇게 느낀다면 아마 같은 감독과 같은 촬영감독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나 내가 본 것들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임실의 세트는 새로 만들었나.
=이번에는 인공 세트가 하나도 없다. 100% 다 로케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인공적인 느낌이 싫어서 모두 실제 공간에서 촬영했다. 차승원이 어르신들과 고스톱을 치는 방도 굉장히 좁았는데, 촬영감독이 창문을 뜯어내고 찍었다. 하긴 그 와중에 부감숏까지 찍었다.

-<재밌는 영화>부터 따져보면 갈수록 코미디보다는 드라마가 강화됐다는 느낌이다. 장규성이란 이름은 코미디로 인식돼 있는데 말이다.
=그게 나도 이상하다. 왜 장규성은 코미디 감독으로 알려져 있을까. 김상진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라서 그런가, <재밌는 영화>로 데뷔해서 그런가. 사실 <재밌는 영화>는 누가 뭐래도 코미디영화다. 그러나 <선생 김봉두>부터는 코미디영화라고 생각을 안 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웃음을 좋아하고 웃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웃음을 넣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관객이 많이 웃으니까 코미디로 인식되고 마케팅적으로도 코미디라고 그러는 거다. 나는 이야기가 탄탄한 영화, 드라마가 강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웃음에 관한 지론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남들을 많이 웃기는 편이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보면서 웃는 것도 좋아한다. 웃음에 대한 지론이나 철학까지는 아니겠지만, 웃음은 어떤 공감대가 있어야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면, 내가 살아가면서 주변에서 많이 웃겼던 일을 떠올린다. 무작정 웃겨야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 행동하며 웃겼던 일을 많이 접수를 해놓는다. 이래저래 웃겼다, 또는 이런 논리로 웃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가 그런 상황이 나오면 그것을 집어넣는다. 이를테면 이번 영화에서 춘삼이 설사하는 장면도 내가 그런 경험이 있었고 차승원도 모델할 때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걸 다 기억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아주 예전부터 참새 시리즈며 별별 시리즈가 있는데 그런 걸 다 기억했다. 머리가 좋다기보다는 그런 것만 기억한다. 약속시간이라든가 다른 건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재밌는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아내와 결혼하기 전 <재밌는 영화>를 상영 중인 극장에서 본 적이 있다. 극장을 나서는데, 뒤에 남자 둘이 있었다. 그중 한명이 “야, 이거 보지 말자고 그랬지” 하더라. 얼굴이 화끈거렸지만(웃음) 그 말은 참겠더라. 그런데 욕먹은 친구가 그러더라. “야, 그런데 이게 무슨 얘기냐?” 나는 그 말이 너무 충격이었다. 아니 한국 최초의 패러디영화로 홍보도 됐고, 한마디로 웃겨보자는 영화인데, 여기서 얘기를 찾는다고? 이야기? 살면서 몇번 엄청난 충격을 받는 일이 있잖나. 나한테는 그때가 그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잘되는 영화는 결국 이야기가 좋은 영화더라. 그래서 애초 데뷔작으로 준비하던 <선생 김봉두>를,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이어졌는데, 이제는 실패한 데뷔작을 만회하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차기작은 어떤 영화인가.
=멜로인데 아무래도 코믹멜로가 될 것 같다. 내가 멜로영화 중 좋아하는 것은 <우묵배미의 사랑>이다. 요즘 멜로영화는 너무 예쁘기만 한데, 현실적인 멜로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질까봐 아이템도 영화사 것을 채택했고, 시나리오도 다른 작가가 쓰고 있다. 그렇다고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 같은 영화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리얼리티가 굉장히 강조된 영화는 내가 못 견뎌한다. 가제는 <동구밖 과수원길>이다.

-제목을 들으니 왠지 배경이….
=맞다. 시골이다. (웃음) 또 시골이냐, 할 사람도 있을 텐데 개의치 않는다. 나는 서울보다 시골이 편하다. 논, 밭, 산을 보고 있으면 이야기도 잘 떠오르고. 그런데 억지로 도시를 배경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

-과거 이영진 기자와 인터뷰에서 나왔던 말이긴 한데, 사람이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믿나. 그리고 다음 영화도 그런….
=나는 믿는다. 그래서 영화도 그렇게 만들려 한다. 최근의 유괴사건도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슬픈 게 사람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나 싶다. 나는 사람이 선하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스릴러나 공포영화를 못 본다.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취향의 문제다. 내가 싫은데 굳이 범죄자의 심리를 파고들어야 할까.

-<재밌는 영화>를 빼면 세편의 공통점은 주인공 부모의 존재감이 굉장히 크다는 점이다.
=그건 그렇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 같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부모님 얘기만 나오면 자꾸 그런데… 특별한 것은 없다. 우리 부모님도 다른 부모님들처럼 고생을 하셨다. 나는 외아들인데, 시골에서 공부도 잘한 편이었다. 부모님은 교육을 못 받으셨던 분들인데 얼마나 좋으셨겠나. 그래서 어려운 환경인데도 서울로 전학을 시키셨고, 따라오셔서 돌봐주시면서 궂은일을 다 하셨다. 그렇게 대학까지 진학을 시켰는데, 충무로에 들어와 조감독을 하면서 나이 서른둘, 셋이 될 때까지 돈 한푼도 못 벌었으니…. 극중에서도 전원주 선생님 대사가 있잖나. ‘편하게 직장 다니지, 왜 군수에 출마하냐’는. 그건 우리 어머니께서 똑같이 하신 말씀이다. ‘대학까지 졸업한 놈이 직장에 다니지 무슨 영화냐’고. 다행히 운이 좋아서 지금은 보답도 조금 해드렸지만, 속을 많이 썩여드렸던 게 늘 와닿는다. 그래서 부모님에 관한 영화를 다다음번 영화로 다뤄볼 생각도 하고 있다. 효에 관한 영화 말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