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임권택 감독님, 여기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03-29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영화인들, 100번째 영화 만든 임권택 감독 헌정행사 개최

한국의 유일무이한 거장 감독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개봉을 축하하고 그동안 그가 이뤄낸 업적을 기리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임권택, 그 100편의 눈부심- 대한민국 영화계가 그에게 바침’이라는 이름의 이 헌정행사는 영화인회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배우협회,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한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영상위원회협회가 뜻을 함께 모은 ‘<천년학> 임권택 감독 헌정행사 준비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감독조합, 한국영화감독네트워크가 주관하는 등 명실공히 한국의 영화계가 한 마음이 돼 준비한 이벤트다.

행사장에 입장하는 임권택 감독

3월29일 저녁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이 행사는 사회자 박중훈의 개막 선언으로 시작됐다. 저녁 7시20분쯤 임권택 감독이 아내 채령 여사, 평생의 파트너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무대에 오르자 참석한 300여명의 영화인은 일제히 기립해 2분이 넘도록 뜨거운 박수를 쳤다. 이어서 사회자 박중훈이 “감독님 몰래 준비한 선물”이라고 소개한 임권택 감독에 대한 헌사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박찬욱, 김지운, 이준익, 봉준호, 류승완, 이현승, 김대승, 최동훈 등 감독과 강수연, 오정해, 차승재, 정두홍 등 영화인들의 인터뷰로 꾸며진 이 다큐멘터리에서 후배 영화인들은 자신의 영화세계에 미친 임권택 감독의 영향을 상세하게 설명했고 그의 위대함을 설명했다. 임 감독 아래서 조감독 생활을 가장 오래했던 김대승 감독은 “<창>이 끝난 뒤 많은 사람들이 입봉하라고 권유했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매번 촬영을 나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감독님을 보면서 이렇게 배울 게 많은데 어떻게 나가냐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 다큐멘터리에서 영화인들은 임권택 감독과의 에피소드 또한 소개했다. 특히 강수연은 “감독님은 너무 무서웠다”면서 “눈에서 마징가Z의 레이저 빔 같은 것을 쏘아냈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임권택 감독에게 헌사를 바치는 봉준호 감독

이어진 차례는 영화배우 안성기의 축사와 봉준호 감독의 헌사. 안성기는 “부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시는대로 작품을 만들어서 우리 곁에 계셔달라”고 부탁을 했다. 봉준호 감독은 “비록 임 감독님 현장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임 감독님이 만든 영화 장면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면서 “고등학생 시절 강수연씨의 팬이었는데, 에로물인 줄 알고 <씨받이>를 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감사패를 받는 임권택 감독. 왼쪽부터 고아성, 채령 여사, 임 감독,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이현승 한국영화감독네트워크 대표의 감사패 전달이 진행된 뒤에는 임권택 감독과 30년 가까이 함께 해온 정일성 촬영감독이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그와 나는 아픔, 좌절, 기쁨을 함께 겪었고 좌절할 때 헤어지지 않고 서로 격려했기 때문에 오늘까지 흘러왔다”면서 “내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직장암으로 수술받았을 때 그는 찾아와서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에게 빚을 많이 졌다”고 말했다. 정 감독에 이어 무대에 선 임 감독의 부인 채령 여사는 “임 감독님이 여러가지 상을 받아봤지만, 이번 행사 때만큼 기뻐하고 흥분한 적이 없었다. 며칠 전 이 행사에 관한 소식을 들은 임 감독님은 잠 한숨 못 주무시면서 과연 내가 이런 상을 받을 일을 했나, 하면서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가장 마지막 차례였던 답사를 통해 임권택 감독은 “제가 이런 중요한 자리에 서서 뜨거운 환영을 받게 된 공로 중 3분의 1은 정일성 촬영감독님에게 있고, 또 3분의 1은 무슨 복권에나 당첨돼서 이런 마누라를 만났냐는 소리를 듣게 해준 부인에게 있고, 그 나머지 3분의 1이 저 자신”이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함께 영화 작업을 한 무수한 스탭, 연기자 등의 덕분에 이 자리에 섰다. 결국 한국에서 영화를 하는 모든 분들의 공로로 인해 여기에 있다고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서 임 감독은 “내가 80년대에 영화제랍시고 밖으로 나가 기웃기웃할 때만 해도 그쪽에서는 한국영화와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고, 대신 너네 나라는 군정을 한다는데 영화 검열은 어떻냐, 맨날 이 따위 질문이나 받으면서 참담했지만 이제는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고 영화인들의 안부를 묻는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그는 “한국영화계에서 한 감독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는 경우가 없었는데 내가 그 주인공이 됐다니 기쁘다. 방금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니까 저건 내가 아닐텐데 하는 생각이 났다”면서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정말 기쁘다”라고 농담섞인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날 자리에는 <천년학>의 조재현, 오정해, 류승룡, 오승은 등 주조연 배우를 비롯해 강수연, 안성기, 문성근, 이병헌, 오광록, 박상민, 강신일, 김주혁, 김지수, 엄지원, 강혜정, 고아성 등 영화배우와 정지영, 김영빈, 이명세, 이창동, 이현승, 권칠인, 봉준호, 정윤철, 김대승 등 후배 감독이 참석했다. 이 행사가 끝난 뒤에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시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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