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3월30일 2시
장소 씨네코아(스폰지하우스)
이 영화
여자(지아)에게는 바람피우는 남편(하정우)이 있다. 그녀는 괴롭다. 그러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사형집행일을 받아 놓고 자살을 시도하는 어떤 사형수 장진(장첸)에 관한 뉴스를 듣는다. 문득 여자는 그를 찾아가 면회를 신청한다. 원래는 안 될 일이었지만, 미지의 인물 보안과장(김기덕)이 선뜻 허락함으로써 여자는 사형수를 만나게 된다. 그 뒤로 몇 번에 걸쳐 그녀는 그를 찾아가 면회실을 계절별로 꾸미고 그에게 노래를 선사한다. 장진과 같은 감방에 있으며 그를 사랑하는 어린 죄수(강인형)는 여자와 장진의 관계를 질투 하지만, 이제 사형수는 여자의 면회만 기다린다. 그런데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여자의 뒤를 밟아 그 역시 교도소를 방문하게 된다.
말말말
내 영화는 항상 우발적으로 시작해서 우발적으로 끝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때도 스탭들과 투표를 했고 60퍼센트 지지를 얻어서 출연했습니다. 이번에도 몇몇 후보를 선정하긴 했는데, 스탭들이 다 나보고 하라고 해서 저도 한 마디 했죠. “그렇지? 그래야겠지?” (보안과장이라는 역할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누군가이니까 그 무대를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 나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출연했습니다.(김기덕/왜 직접 출연했느냐는 질문에)
제가 노래를 참 못하는데 (영화에서처럼) 혼자 그러는 건 좋아해요. 그런데 중간에 감기에 걸려서 음이 안 올라갈때도 있었고.. 나중에 망쳤다고 생각해서 다시 하겠다고 조를 정도였어요. 혹시 불쾌하신 분 계셨으면 제가 앞으로 노래 더 잘 할 께요(지아)
그럼 제가 질문 할께요. 김기덕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과 영화에 나온 뒤 자기 모습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듣고 싶습니다(김기덕/조연배우 강인형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없자 그럼 내가 질문하겠다며)
100자평
<숨>은, 아름다운 영화다. <빈집>이 여자의 '감옥'으로 찾아 온 낯선 남자의 이야기였다면, <숨>은 남자의 '감옥'으로 찾아 온 낯선 여자의 이야기일 것이다. 또는, 두 작품 모두 각자 자신의 감옥에 갇혀 있으되, 소통하기 위하여 감옥을 벗어나는 이야기일 것이다. 다시 한번 <숨>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야기는 좁은 감옥에서 펼쳐지지만, 그 밀실은 드넓은 풍광과 통한다. '연민'과 '동정'이 아니라, 선-인격적인 '숨' 또는 '감각'으로 소통하는 공간인 까닭이다. '숨'이 멎는 그 극한의 '임계 체험'의 경지를, 김기덕은 몇 번의 붓질로 형상화해낸다. 크로키로 포착해낸 '삶'과 '구도'와 '예술'의 어떤 경지...
변성찬/영화평론가
김기덕은 이렇게 썼다. “증오가 들이마시는 숨이라면...용서는 내쉬는 숨이다.” 들숨과 날숨이 함께 있을 때 “물과 기름도 하나가 될 것이다.” 김기덕은 들숨과 날숨, 삶과 죽음의 조화, 어떤 화해의 가능성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영화 속 인물들의 들숨은 들숨과 부딪히고 날숨은 날숨과 부딪힌다. 관계의 숨이 막힌다. 거기에 죽음이 있다. 그걸 조화와 소통으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영화 속 인물들, 그리고 우리의 환상이고 희망이다. 특이한 점은, 이 영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멸로 치닫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숨>은 <시간>처럼 끝까지 무시무시하게 밀고 나가기보다는 어떤 필연적인 순환 속에 있다. <숨>에서도 여전히 시간, 죽음, 반복은 주요한 모티프다. 시공간의 특이성이 지워진 감옥 안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총천연색 시간이 되고 남자는 여자에게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운 죽음이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형수가 아닌, 여자를 따라가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여자가 사형수를 통해 두 번째 죽음을 경험한 후, 다시 삶의 길로 돌아가는 과정에 맞추어 영화는 겨울에서 시작해서 겨울로 돌아온다. (현실 속에서는 같은 겨울이긴 하지만)두 번째 겨울은 처음보다 ‘덜 나쁜’ 겨울이다. 흰 눈이 상처를 덮고 여자는 노래로 ‘죽음’을 추억한다. <시간>의 여자가 새로운 시간을 꿈꾸며 반복할수록, 시간은 그녀의 의지를 벗어났다. 아무 것도 복원되지 못했고, 육체는 피를 흘렸다. 그러나 <숨>의 여자는 시간의 순환을 창조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시간>에서처럼 처음으로 돌아가 무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싸움이 없다. 대신, 죽음 같지만 일시적인 일탈과 어떤 복귀의 움직임이 있다. 김기덕은 이제 치유를 말하고 있는가? 그는 더 나아갔는가? 그건 <시간>과 <숨>의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것이다.
남다은/영화평론가
김기덕 감독은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일상을 사유하게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선(禪)적인 주제의식을 담지만, 성매매나 온갖 종류의 폭력등 매우 센세이널한 소재를 채택하는 바람에 엄청난 비난과 찬사의 세례를 동시에 받곤 했다. 그의 열네번째 영화 <숨>도 역시 죽음을 갈망하는 사형수와 정신적, 육체적 불륜에 빠진 가정주부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 안에서 인위적으로 그어진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를 한다. 단시간에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10회차에 촬영을 마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사형수에게 남겨진 일주일 안에 일 년의 풍광을 담아낸 이 영화의 호흡은 그렇게 가쁘지 않게 느껴진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력과 가깝게 닿아있는 ‘숨’이라는 화두를 통해 인간의 모든 욕망을 집약적으로 담아낸 사유의 힘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언어를 상실한 육체적 상태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장첸과 박지아를 비롯한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가 이 영화에 힘을 더해준다.
김지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