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LA] 문이 열리고, 쇼가 시작됐다
2007-04-04
글 : 황수진 (LA 통신원)
쿠엔틴 타란티노의 LA 그라인드하우스 페스티벌 2007 열리고 있는 뉴베벌리시네마
뉴 베벌리 시네마

3월의 세 번째 토요일 밤, 다운타운 LA를 지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아트 디스트릭트(Art District). 젊은 예술가들이 노란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 유유히 커피를 마시던 그라운드 워크(Ground Work)는 이미 굳게 문을 닫아 잠갔고, 한낮에 느껴지던 주위를 둘러싼 다운타운 재개발의 열기는 찾아보기 힘든 밤의 다운타운 LA이다. 선뜻 차 밖을 나서기가 망설여져 머물게 되는 자동차의 유리창 너머로 영화와 자동차 광고를 찍고 있는 촬영팀이 눈에 띈다. 목적지인 로스앤젤레스 강 다리를 건너기 바로 전의 1st Street의 어느 클럽. 인적이 끊긴 주위에는 몇몇 창고 건물만이 덩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있고, 머리 위에는 건물과는 상관없을 것 같아 보이는 푸른 네온사인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다. 그 아래로 영원히 닫혀 있을 것만 같은 문이 열리자,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무희의 옷차림을 한 여자가 나와 담배를 꺼내면, 곁에 서 있는 커다란 몸집의 남자가 불을 붙인다. 그 둘을 뒤로하고 들어선 붉은색과 검정색으로만 정교하게 꾸며진 클럽 내부는 젊은 손님들로 앉을 자리가 없다. 밖에는 주차할 곳도 없는데 이 많은 손님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궁금해하고 있으면 이제 쇼가 시작된다는 사회자의 과장된 목소리의 안내 방송과 함께 벌레스크(Burlesque) 쇼가 눈앞에 펼쳐진다. 원래 벌레스크 쇼는 도시의 극장을 중심으로 유행했는데, 이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이 B급의 선정영화(Exploitation Film)들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그라인드하우스> 개봉으로 관심을 끌게 된 ‘그라인드하우스’(Grind House)라는 단어도 실은 벌레스크 쇼의 “Bump and Grind”라는 표현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아까 밖에서 무심한 듯 담배를 피우던 그녀는 이제 무대 위에서 특유의 발랄한 몸짓으로 R등급의 슬랩스틱코미디를 보여주고 있다.

다음날 저녁 LA의 서쪽, 웨스트 할리우드에 위치한 뉴베벌리시네마에서는 타란티노 감독 개인이 소장한 50여편의 선정영화가 35mm 프린트로 선보이는 LA 그라인드하우스 페스티벌 2007이 열렸다. 원래 동시상영관이기도 한 작은 극장 안을 둘러보며 하나둘씩 관객이 차기 시작한 극장 어딘가에는 타란티노가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일행에게 속삭여본다. 옆자리에 앉은 한 무리의 관객은 3월 초부터 시작한 페스티벌의 모든 영화를 빠짐없이 챙겨보는 것 같았고, 당연하겠지만 4월6일 개봉하는 <그라인드하우스>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 커플이 <그라인드하우스>가 요구하는 배급권이 너무 비싸서 일본에서는 개봉이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으면, 오늘밤의 첫 그라인드하우스 작품인 록 허드슨과 앤지 디킨슨의 <Pretty Maids All in a Row>가 시작된다. 낡은 것으로 치부되어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문화가 이제 하나의 새로운 스타일이 되어 젊은 층에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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