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k by Me]
[Rank By Me] 청년실업시대, 표본이 될 만한 영화 속 백수들
2007-04-12
글 : 신민경 (자유기고가)
주머니는 얇지만 얼굴만은 두껍게!

자판이 부서져라 이력서를 써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마 그런 답장이라도 받으면 다행이지. 대한민국의 청년실업자들에게, 현실은 까칠하기만 하다. 주머니는 얇고, 인간관계는 뚝뚝 끊어져나가고, 엄마의 잔소리는 드높아만 간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가 끝내주게 갖춰진 북유럽 선진국이라고 다를까. 노는 데 인종 없고, 주머니 홀쭉한 데 국경 없다. 그러니 현실을 타파하려 몸부림만 칠 게 아니라, 조금은 상황에 적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핑크빛 꿈을 꾸며 타인에게만 기대다간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처럼 ‘불행백과사전’을 집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신에게 변변한 명함 하나 없다고 노여워하지 말라. 잘 노는 것도 기술이다. 아래 소개하는 사랑스런 백수들처럼.

5위 <위대한 유산>의 임창정 & 김선아
쥐뿔도 없는 두 백수남녀에게 유일한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헐크도 파괴할 수 없는 가공의 뻔뻔함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창식(임창정)과 미영(김선아). 신체 건강한 젊은이지만 사회가 이들의 열정을 소화하지 못한 탓에 365일 백수 신세다. 백화점 시식 부페(?) 즐기기, 세끼 모두 집에서 해결하기, 가족의 눈총에 아랑곳하지 않기, 심부름값 2500원에 영혼을 파는 일도 마다않기. 하루이틀 해본 솜씨가 아닌 이들은, 공교롭게도 같은 나와바리 소속이다. 그러니 동네에서 마주치는 일이 허다하고, 100원짜리 동전 하나에 목숨걸고 싸우는 게 당연지사. 그러던 어느 날 대어가 하나 낚인다. 교통사고 목격자에게 현상금 500만원을 준다는 것. 배후에 사시미칼 치켜든 조폭이 도사리고 있다 해도 상관없다. 행운은 집요하고 용감한 자들의 것!

4위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도라 버치
이 아이,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선생 김봉두>에서 혼자 고스톱 치는 진풍경을 보여줬던 봉두(차승원)도 이 아이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니드(도라 버치)는 엄연히 자발적 백수다. 취직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데, 그놈의 까칠한 혀 때문에 번번이 하루 만에 잘리고 마니 쯔쯔. 하긴 “팝콘에 버터를 듬뿍 쳐달라”는 손님의 주문에 “버터 대용의 화학기름 대령이오” 하는 직원을 그대로 채용할 사장은 없겠지. 그래도 컬러풀한 의상과 머리색만큼이나 이니드의 소일거리는 다채롭기만 하다. 장난전화 걸기, 편의점에서 일하는 친구 골탕먹이기, 사람 하나 찍어 미행하기, 남의 집 우편물 뒤지기 등등. 거기다 40대 소심남 세이모어(스티브 부세미)에게 집적대기까지 하니, 넌 도무지 지루할 날이 없겠구나.

3위 <뻔뻔한 딕 & 제인>의 짐 캐리
기가 막힐 노릇이지. 잘나가는 IT회사 부사장으로 떵떵거리고 살더니, 사장이 공금을 횡령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으니. <뻔뻔한 딕 & 제인>에서 딕(짐 캐리)의 백수행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다. 하지만 어떡하나. 땅 파서 구덩이에 살지언정 별다방 커피도 가끔 마셔주고 아내에게 사랑 고백도 해야 한다. 그럴 땐? 간단하다. 훔치면 된다. 강도 무장을 하고 스타벅스 커피 갈취하고, 공동묘지 잔디를 파내 집 앞에 깔아두며, 남의 집 스프링쿨러 시간을 알아뒀다가 열심히 목욕을 하는 딕. 처음엔 들킬까봐 간이 쪼그라들 것 같더니, 이것도 자꾸 하니 내성이 생기나 보다. 이젠 컨셉에 맞춰 코스프레까지 해주시니, 진정한 백수 아니 진정한 강도의 정신이렷다. 하지만 여러분, 바늘 도둑은 결국 소 도둑이 된다고요!

2위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김아중)는 거대한 몸이 콤플렉스였으나 <스쿨 오브 락>의 듀이(잭 블랙)에게는 푸짐한 엉덩이가 자신감의 상징이었다. 이게 중요하다. 자신감. 남들이 아무리 무시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울산바위 같은 견고한 자신감! 듀이는 매번 만만한 친구네 집에 기생해 사는데, 돈 갚으라는 친구의 소심한 재촉에도 “그깐 일 갖고 자는 사람 깨우냐”며 적반하장의 소리만 한다. 그걸로 모자라 친구한테 들어온 일자리까지 슬쩍 하니. 친구의 이름을 사칭해 초등학교 교사로 출근한 듀이. 의심쩍은 눈으로 쳐다보는 교장에게 “문제학생이 있으면 매로 처벌하겠다”는 뻘소리를 해댄다. 최악의 의도가 최선의 결과를 낳은 케이스나 웬만한 내공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비추. 물론 친구 잘못둔 탓에 인생이 괴로운 듀이의 친구에게는 애도를 표한다.

1위 <어바웃 어 보이>의 휴 그랜트
“무슨 일 하세요?” “아무것도 안 해요.” “그럼 그 전에는요?” “그 전에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자신이 백수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이 남자, 윌(휴 그랜트)은 비교적 우아한 백수생활을 영위한다. 부모가 남긴 노래 저작권료로 삼대는 족히 먹고살 수 있기 때문. 그러니 자기 인생도 책임지지 않는 남자가 어떻게 가정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가 원하는 것은 며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데이트 상대와 TV, 팝콘 정도다. 구직란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당연하고, 그의 레이더망에 걸리는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아이를 혼자 키우는 사람들의 모임’. 싱글맘들은 남자에겐 굶주려 있고 결혼 생각은 없을 테니, 윌 같은 남자에게는 금상첨화다. 이렇게 백수가 되어서도 문화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경제적 여유와 솔직함이 부러울 따름. 무엇보다 확실한 유산을 물려받은 당신이 진정 부럽습니다! 에잇!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