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 리뷰]
인생막장에 구원투수를 만나다, <눈부신 날에> 첫 공개
2007-04-10
글 : 강병진

일시 4월 10일 오후 2시
장소 서울극장 2관

이 영화

매우 후진 남자가 있다. 전과 3범에 폭력상습범인 종대는 야바위판의 바람잡이로 일하며 쓰레기 더미에 홀로 세워진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남자다. 소싸움판에 오고가는 돈을 노리기도 하고, 개싸움판에서 목숨을 잃을뻔 하기도 하던 그 앞에 어느 날 선영(예지원)이라는 여자가 나타나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것. 종대는 해외입양을 앞두고 아빠와 함께 지내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을 입양비를 받는 조건으로 받아준다. 종대의 아이는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 소원인 7살 준이(서신애). 짧은 머리때문에 남자아이로 오해받곤 하지만 아빠를 대하는 애교는 만점인 소녀다. 하지만 오히려 종대는 아침마다 뽀뽀하고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매사에 질문이 많은 이 아이가 귀찮기만 하다. 그러나 종대 또한 메마른 자신의 삶에 조금씩 온기를 더하는 준이에게 서서히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재수의 난>을 연출한 박광수 감독의 ’의외의’ 신작. 현재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에이즈에 걸린 소녀를 연기하고 있는 서신애와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이 출연한다. 이외에도 여성적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한 탤런트 이정섭이 조직의 두목을 맡았으며, 영화배우 이경영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4월 19일 개봉.

말X3

"<이재수의 난>을 끝낸 후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와 다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관객으로 하여금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방식을 버리기 위해 여러 단편작업으로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박광수)

"(서신애를 보며) 우리 연기호흡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애.(웃음) 촬영을 하면서 항상 종대가 나쁜놈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까 착하게 보인다. (피켓을 들고 있는 대만팬들을 보며) 멀리서 와준 분들에게도 매우 감사드린다."(박신양)

"안녕하세요. 서신애입니다. 저는 준이 역을 맡았어요. 영화찍으면서 언니, 오빠들이랑 너무 재밌었고요. 지금은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맞는 신은 어땠냐고 하자) 비맞는 장면은 어렵지 않았어요. 저 그런 거 좋아해요."(서신애)

100자 평

내용상 지극히 비극적인 색채를 띄지 않을까 짐작되던 <눈부신 날에>는 의외로 다소 담담한 어조를 유지한다. 행복은 찰나에 불과하고 비극의 순간은 함성에 파묻혀 재빨리 사라진다. 연출자는 적절히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는 대신 캐릭터의 면모를 촘촘히 드러내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는 과도한 웃음과 눈물이 대세인 요즘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2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박신양은 거북할 수도 있을 캐릭터를 아주 느끼하거나 거칠지 않게 그려내고 그와 호흡을 맞춘 서신애의 연기도 훌륭하다. 아쉬움이라면 부성애를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과 너무 비슷한, 도식적인 줄거리를 따라간다는 점과 눈물을 부추겨야 할 주위의 함성과 기쁨 때문에 도리어 클라이맥스의 슬픔에 크게 몰입할 수 없다는 점 정도일 듯.
장미/씨네21 기자

<눈부신 날에>는 흑백의 시선으로 살던 한 남자가 총 천연색의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다. 그 남자는 영화 속에서는 종대이지만, 영화 밖에서는 박광수 감독 자신이다. 탄광촌의 쓸쓸한 풍경을 묘사하거나(<그들도 우리처럼>), 청계천 다락방의 먼지를 잡아냈던(<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박광수 감독은 <눈부신 날에>에서 쓰레기 더미마저 눈에 도드라지는 색감으로 바라본다. 척박한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와 천진난만한 아이의 동거생활을 그리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대로 그의 영화 중 가장 많은 컷과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연출된 <눈부신 날에>는 아버지와 딸의 눈물겨운 사랑을 구성진 리듬으로 진행시킨다. 하지만 비판적인 관점으로 한국사회를 조망하던 그의 시선이 아예 탈색되어 버린 건 아니다. 스리슬쩍 지나치긴 하지만 영화는 종대의 컨테이너와 밝은 불빛을 내뿜는 해운대 아파트 촌과의 괴리감을 드러내기도 하며 2002년 월드컵의 흥분이 '그들만의 것’일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가족영화로 이어진 행보의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눈부신 날에>는 그저 ’한번 시도해 볼까?’하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보이진 않는다.
강병진/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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