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릴러의 거부감을 풍자와 해학과 괴담으로 감쌌다
2007-04-18
글 : 오정연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극락도 살인사건>의 김한민 감독

갖춰야 할 조건은 그리 많지 않은 수의 사람들, 일반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억누르는 규율에서 비껴나 있는 한정된 공간, 그리고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원인을 알 수 없는 살인. 범인도 살해 동기도 묘연한 가운데, 남은 이들은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 ‘밀실연쇄살인’은 지극히 원초적인 일종의 실험이지만, 한국영화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설정이다. 장르영화에 대한 순수한 몰두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영화의 상황을 생각할 때, 늦깎이 데뷔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극락도 살인사건>은 얼핏 대담해 보인다. 이 무모한 도전의 결과는? <극락도…>는 전형적인 추리극 설정에서 시작해서 코미디와 호러, 아니, 감독의 설명을 따르자면 풍자와 해학과 괴담을 끌어들인 영화로 완성됐다. 과연 이것이 장르에 충실한 영화인지 혹은 어떤 장르의 영화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새로운 시도로서의 의의는 명백하고, 관람의 쾌감 역시 만만찮은 이 영화의 제작공정을 듣기 위해 김한민 감독을 만났다. 또 다른 실험이 시작된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편으로는 연출의 의도대로, 한편으로는 각종 우연에 기대어 기이한 영화가 관객을 만난다. 관객은 영화의 어떤 부분에, 어느 정도 반응할 것인가. 언제나 그렇듯, 결과는 도무지 짐작 불능. 그러나 그 소재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결과가 유난히 궁금하다.

-7전8기 끝에 데뷔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른바 ‘엎어진’ 7편의 영화가 모두 다른 영화였던 건가.
=<극락도 살인사건>을 포함해서 두편 정도는 한 영화로 영화사를 옮겨서 진행한 거니까, 1999년부터 지금까지 편수로는 다섯편이다.

-결국 1년에 한번꼴로 엎어진 셈이다. (웃음)
=1년씩 그렇게 까먹으면서 7수를 한 건데,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됐다. 로맨틱코미디 같은 장르도 있었고, 직접 쓴 시나리오에 작가가 쓴 시나리오, 아이템을 받아서 작가와 함께 개발한 시나리오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극락도…>는 예전에 1년 정도 썼던 걸 다시 고친 시나리오다.

-이런 장르의 영화는 전문작가가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가 더 많을 줄 알았는데.
=시나리오는 중간에 접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2년 정도 걸려서 썼다. 처음 쓴 건 2001년 말. <조폭마누라>가 한참 인기를 끌던 시기였는데, 당시만 해도 이런 시나리오는 상업적인 미덕이 전혀 없었다. 한 1년 동안 혼자서 재미있게 개발하다가 결국 포기한 거였다. (웃음)

-이런 장르는 처음 썼던 건가.
=배고픈 삼형제가 인육을 먹기까지를 다룬 단편 <갈치괴담>을 제외하면 그런 셈이다. 추리극은 아니었고, 그저 <극락도…>의 정서나 뉘앙스가 비슷했던 영화다.

-단편을 만들었다면, 대학 때 전공이 영화였다는 건가.
=원래 전공은 경영학이었다. 학부 때 영화동아리 활동을 했고, 영상사업에 관련된 회사를 한 2년 정도 다니다가 동국대 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단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학원에 들어갔다니 인상적이다.
=뭔가 안된다 싶으면 가방끈만 점점 길어지는 식이었던 거지. 심지어 박사 과정까지 갈 뻔했다.(웃음)

-경영학과를 나와서 영화를 한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많이 속상해 하셨겠다.
=뭐, 처음에는 당황해하셨지만, 그 다음에는…. 워낙 믿고 맡기는 타입이시다.

-<극락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된 것은 두 엔터테인먼트 최두영 대표를 만나면서 부터였나.
=그렇다. 최두영 대표는 오랫동안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색보정 기사로 일했고, 장편 촬영도 한 촬영감독인데, 단편작업 때 색보정하면서 알게 됐다. 이번에 그분은 제작자에 프로듀서, B카메라 감독에 색보정까지 맡았다. 그분의 모든 색보정 노하우가 들어간 영화인 셈이다. 팔방미남이랄까.(웃음) 처음에 이야기할 때는 그냥 저예산으로라도 만들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정말 더이상은 엎어지는 것도 싫고, 영화를 시작은 했는데 이 판을 떠나게 되더라도 칼을 꺼냈으니 찔러나 보고 싶었다. 그런데 투자사가 붙고, 박해일이 캐스팅되고, 그러면서 정상 예산의 상업영화가 됐다.

-이 영화의 장르를 하나로 설명해야 한다면 무엇이라 하겠나.
=음, 추리극. 추리극이면서 추리극이 아닌 혹은 추리극이 아닌 듯하면서 치밀한 추리극 혹은 추리극의 탈을 쓴 스릴러? (웃음)

-추리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자의식이 가장 먼저 있었다고 보면 되나.
=그렇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 한계까지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됐다. 추리극이란 게 굉장히 건조하고, 마지막에 확실한 결론을 내리면서 뭔가 뒤끝이 허무한 장르다.

-사실 영화로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맞다. 그게 정확하다. 그래서 고민이 생겼다. 뭔가 틀거나 변형하거나 첨가해야 한다는. 그렇다고 된통 스릴러는 또 아닌 듯했다. 왜냐하면 스릴러는 한국적인 정서에 안 맞거든. 그래서 생각해낸 게 ‘토종’이라는 개념이었다. 코미디와 호러가 아니라, 해학과 풍자와 토종귀신이 나오는 괴담 말이다. 이 영화를 통해 얻게 된 결론 중 하나는 ‘귀신은 역시 한국 귀신이 최고’라는 점이다. (웃음) 장르적인 것에서 출발한 영화가 한국적인 것을 고민하면서 미끄러지기 시작한 거다.

-미끄러지다니. 좋은 의미인가.
=결과적으로는 좋은 의미였다. 원래는 호러를 원한 게 아니었는데 토속적이고 토종의 것을 고민하다보니 생긴 요소인데, 그런 공포스러운 긴장감이 훨씬 스릴있게 된 듯하다. 한국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고민의 결과로 발생한 의도적이고 우발적인 모든 변화를 ‘미끄러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낯익으면서도 낯선 변화. 장르적으로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영화가 받아들여지는 맥락을 고려한 변형 말이다. 어쨌건 그렇게 완성된 영화의 톤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마음에 든다.

-미끄러지는 정도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주변의 우려가 있었을 수도 있고.
=사실 나는 지금보다 더 미끄러지길 원했다. 하지만 결국은 추리극의 느낌, 논리적으로 정리되는 느낌은 유지해야 한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해학과 풍자는 제작사에서도 많이 재밌어했다. 특히 코믹한 느낌이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덕수의 회상장면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유정의 <봄봄>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봄봄>의 주인공인 점순이라는 캐릭터가 <극락도…>의 봉순에게 많이 투영되어 있을 정도다. (웃음) 계속해서 살인이 일어나기 때문에 관객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그런 요소가 가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공포의 느낌은 더 강해지더라.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좋아했나.
=애거사 크리스티처럼 대표적인 작품들을 남들만큼 읽었지 찾아 읽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보면서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차례로 사라진다는 설정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의 원형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추리극을 영화로 연결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나 추리극의 한계를 고민하면서 시나리오를 위해 다른 추리소설을 찾아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추리극이라는 장르는 한국영화에서 거의 시도된 바가 없고, 스릴러만 해도 유독 취약한 장르가 아닌가.
=<텔미썸딩>부터 최근의 <조용한 세상>까지 한국에도 간간이 스릴러영화가 있었지만, 된장 고추장에 익숙한 한국 관객의 입맛은 굉장히 까다로운 것 같다. 기본적으로 스릴러를 싫어한달까. (웃음) 스릴러는 아무리 장르에 충실해도 대중성이 담보될 수 없고, 그래서 안 만들어지고, 그래서 장르의 노하우도 축적이 안 되고. 결국 농촌 스릴러를 표방한 <살인의 추억>은 사실 한국 스릴러의 계보를 새로 쓸 만한 영화였던 셈이다. (박)해일은 우리 영화를 어촌 스릴러라고 하더군. (웃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국 스릴러영화는 <소름>이었다.

-굳이 1986년을 영화 배경으로 택할 필요가 있었나.
=그 시기는 표면적으로는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정리된 시대처럼 보이지만 가장 방만하고 무책임한 시대였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실제 내 고향이 순천인데, 비평준화지역이어서 고등학교 때 그런 흉흉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섬에서 유학온 친구들이 많았다. 무장공비가 섬주민을 어쨌다거나, 운동권학생이 숨어들어서 어떻게 됐다는 식으로.

-섬주민이 하필이면 17명으로 이뤄진 과정이 궁금하다.
=일단 열에서 스무명 사이의 주민이 필요했다. 물론 제우성(박해일)이나 장귀남(박솔미)처럼 처음부터 반드시 필요한 인물은 정해져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어릴 때 동네에서 흔히 봤던, 어느 동네에서도 볼 수 있을 만한 전형적인 사람들을 생각한 거다. 이장, 노인, 애들, 수상한 거사, 꼭 한명씩 있는 동네 바보 등등. 그러다보면 17명이 된다.

-그중에서도 박해일과 함께한 대화장면에서 절묘한 타이밍으로 많은 웃음을 유발한 꼬마 캐릭터가 유난히 재밌더라.
=이다윗이라는 친구가 연기했는데, 원래 시골에 그런 애들이 있다. 순진무구한데 입만 거친 애들. 사실 내가 어릴 때 말이 거칠어서 주변 사람들을 많이 당황케 한 기억이 있다. (웃음) 이다윗은 아역인데도 굉장히 어른스러워서 성인배우를 대하는 느낌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17명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혹은 가장 고민 끝에 추가된 인물은 누구였나.
=그게 결국은 17명 뒤에 덧붙여진 열녀귀신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는 열녀귀신 전설만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미끄러지다보니 아예 등장까지 하게 된 거다. 갑자기 <전설의 고향> 분위기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덕분에 영화가 묘해졌다.

-반면 시나리오에는 사건이 종결된 이후 형사들이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이 과거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시점과 교차해서 보여지는데 영화에는 모두 빠져 있다.
=찍긴 찍었다. 편집 막판에 들어냈다. 일단 결말의 반전을 약화시켰고, 둘째로는 극의 흐름을 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말 신기한 게 그 수사장면만 들어가면 사람들이 결론을 너무 빨리 눈치채더라. 연출력 부족인가 싶어 고민도 했지만, 확실히 시나리오로 영상의 호흡과 리듬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더라. 물론 러닝타임 문제도 있었고. 그 장면들이 들어가면 아무리 짧아도 2시간15분이 넘으니까.

-그걸 모두 들어내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 누구였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먼저 아이디어를 냈다. 물론 불안과 염려는 심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더 적극적으로 지금의 방향을 고집했다. 누군가는 나중에 디렉터스 컷을 만들겠냐고 묻지만, 나에겐 이게 디렉터스 컷이다. 결국 그런 것도 또 다른 미끄러짐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영화의 안팎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우발성이다. (웃음)

-사실 그 부분이 이 영화의 추리극으로서의 재미를 떨어뜨리게 만드는 요소다. 애초에 죽은 세명을 제외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서 우발적으로 살해된다. 누가, 어떻게, 이 사람들을 죽게 했는지에 대한 재미가 추리극에서 가장 중요한데 그 부분은 포기를 한 셈이다.
=그렇다. 거기다 귀신까지 개입하게 되니까. 애초에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처럼 가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랄까. 물론 추리극에 웬 귀신, 하는 반응도 있긴 한데 총체적으로 이해득실을 따지면 얻는 것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 영화의 내러티브 자체가 허술하다고 표현하는 건 억울하다. 논리적인 인과관계는 탄탄하게 가져가려 했으니까.

-뭔가 설명을 하더라도 너무 드러내놓고 설명 같은 느낌을 주면 안 되고, 복선을 깔아야 하지만 너무 티가 나면 안 되고, 캐릭터들의 역할이 각자 분명해야 하지만 너무 기능적으로 보여도 안 되고, 적정한 선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그렇다. 그 밸런스가 현장에서부터 편집까지 이어진 화두였다. 제우성과 장귀남처럼 밖에서 들어온 이방인이지만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을 만드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에 배우들과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 나는 박해일에 제우성을 투사하려고, 박해일은 감독의 성격을 제우성이라는 캐릭터에 투사하려고 둘이서 술 많이 마셨다. (웃음)

-촬영기간이 꽤 길었다고 들었다.
=5개월 정도. 목포에서 배로 네 시간 반 가야 하는 가거도에서 한달, 통영 앞바다에서 한 시간 반 들어가는 욕지도에 극락전 세트 세우고 한달, 남해도에서 이장집 세트 만들고 한달, 고성에서 동굴신 찍고, 형사들 등장하는 장면은 부산에서…. 남해안을 동쪽부터 부산까지 훑어간 셈이다.

-극락도라는 섬 이름은 처음부터 생각했던 건가.
=처음에는 괴목(怪木)도 같은 이름을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아니더라. 그러다가 생각한 게 극락이란 말인데, 불교스러우면서도 토종적인 느낌. 뜻으로 보면 좋지만 의미를 생각하면 죽음이란 뜻을 지닌, 다양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친숙하기도 한 좋은 말 아닌가. 촬영 내내 주문한 게 ‘극락도스럽게 해봅시다’였는데, 다들 그게 무슨 말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웃음) 가거도에서 촬영할 땐 스탭들 모두 섬 주민들에게조차 “여기 극락도에…”라면서 질문을 할 정도였다.

-차기작으로 생각 중인 게 있나.
=드라마보다는 내러티브가 강한 영화. 장르적인 재미 속에서 단순하면서도 정확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사실 <극락도…>에서도 그런 걸 추구한 셈인데 아무래도 이야기 구조 자체가 복잡해서 그런 느낌은 안 들 거다. 하지만 장르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생각 중인 것은 일제시대 때 이야기인데, 지금은 밝힐 수 없지만 일단 추리물은 아니다. 장르를 뭐라고 규정해야 할지 고민인데, 이를테면 <극락도…>를 발전시킨 ‘토종’ 같은 개념으로 포장을 먼저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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