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장첸을 사랑한 남자
2007-04-26
글 : 장미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숨>의 강인형

사형수를 사랑하는 어린 죄수. 김기덕 감독의 신작 <숨>에서 강인형이 연기한 캐릭터에는 이름도, 감옥에 오기까지의 사연도 없다. 그저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감옥에 갇힌 장진(장첸)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는 식의 추상적인 설명밖에는. 그럼에도 야수처럼 웅크린 장진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던 어린 죄수는 설득력있게 형상화됐고 김기덕 감독은 “강인형의 연기력이 출중해 작은 역할이었던 어린 죄수의 비중을 키웠다”고 호평했다. “그건 그냥 칭찬하려고 하신 말씀이고 분량은 거의 비슷했다. 실제로는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사형수 남자를 사랑한다는 설정에 있어 작위적인 느낌이 안 들게끔 노력했다. 사랑하는 사람, 연인이라고 상상하면서 연기했다. 감독님도 그런 걸 원하셨던 것 같다. 겉핥기식으로 꾸며내는 것보다는.” 그러나 상상에 상상을 거듭한들 대사없이 표정과 눈빛만으로 심경을 토로하기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었다. 자신이 연기한 감정이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외에도 김기덕 감독을 둘러싼 공방들 또한 조금은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다. “그전까지 감독님 작품을 배우가 아닌 관객 입장에서 봤다. 공격적인 메시지도 많았고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감독님을 인간 대 인간으로 뵌 적도 없었고 들은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기에 어렵고 다가가기 힘들 것 같았다. 처음에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촬영 들어가선 편하게 찍었다.”

이번 작품에서 강인형은 말도 통하지 않는 장첸과 많은 부분 함께 출연했을뿐더러 꽤 오랜 시간 스크린을 차지했다. “장첸씨를 처음 보는데다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한 사람의 역량이 떨어진다 해도 역량이 큰 사람과 함께하면 거기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동화될 수 있다. 주로 눈빛으로 감정 교류를 해야 했는데 장첸씨가 리드를 잘해주셨다.” 때리고 물고 목을 조르는 등 몸싸움이 유독 잦은 역할이었기에 차가운 돌바닥에 내던져지는 정도의 수모는 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무등 타다가 떨어지는 신이 있었다. 솔직히 바닥에 매트리스 정도는 깔아줄 줄 알았는데(웃음) 리허설 때부터 그냥 떨어졌다. 진짜 슛 들어갔을 때 살짝 아팠다.” <숨>이 가쁜 촬영으로 그를 몰아세웠다면 <아파트>는 출연분 사이의 간극이 커 어려웠던 영화다. 데뷔를 앞둔 연기자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긴장도, 다소 딱딱했던 현장 분위기도, 표현하기 까다로운 공포라는 감정도 모두 신인배우의 어깨를 짓눌렀겠지만 말이다. “연기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고 배운 적도 없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예측했지만 체험하지도 않은 극도의 공포를 표출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미신 같은 것은 신경 안 쓰는 무덤덤한 성격이라 원혼이 있다는 상상도 쉽지 않더라. 드라마 <러브홀릭> 역시 아쉬움이 많은 작품인데 무엇보다 따라가기 쉽지 않을 정도로 촬영 속도가 스피디했다. A팀, B팀의 두 감독님이 요구하는 게 달라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아니나다를까, 끝나고 나서 네티즌에게 질타를 많이 받았다.”

단정한 콧날, 고집스럽게도 선하게도 보이는 눈의 모양새, 인상적인 그림자를 자아내는 가늘고 긴 손가락. 유난히 어린 외모를 지닌 강인형은 벌써 스물아홉 고개를 넘었다. 신인배우치곤 적지 않은 나이가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겠으나 “출연하진 못했지만 <왕의 남자> 오디션이 도움이 많이 됐다”는 대답에선 어른스러운 사람만의 담담함도 느껴졌다. “이준기씨가 잘되셨으니 축하드려야지. 오디션 기간이 짧지는 않았다. 결과 나올 때까지 한달 반 정도 기다렸다. 공길이라는 인물에 애착이 많이 갔고 그라면 어떻게 할까, 그라면 어떤 감정 상태일까 고민도 많이 했다. 오디션 중에 경극신 연기도 있어 한복을 입고 화장한 채 연기하기도 했는데(웃음) 정말 재미있었다. 내가 가진 것을 100% 보여줬다면 좋았겠지만 마지막 오디션에서 실수를 한 부분이 있어 아쉬운 마음이 있다.” 여리고 조용하고 내성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거부하듯 그는 소설 <뉴욕 3부작>과 <아홉가지 이야기>의 등장인물을 한번쯤 연기하고픈 대상으로 손꼽았다. “물론 알콩달콩 사랑하는 밝은 역할도 하고 싶지만 끌린다고 할까, 정신병을 앓거나 몸이 불편한 조금 독특한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뉴욕 3부작>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하얀 옷을 입고 휠체어를 탄 사람 같은. 틱 증상도 약간 엿보이는 인물인데 소설을 읽으며 욕심이 났다.” 군 제대 뒤 유학을 준비하던 강인형은 현 소속사 사장을 만나 우연히 연기자로 데뷔했다. 그전까지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은 길이었다. “다만 <비밀>에서 사십대 주부 역할을 맡은 히로스에 료코가 다른 인물을 창조하는 작업에 대해 말했는데 그게 무척 와닿았다. 그 인터뷰가 실린 게 <씨네21>이었던 것 같은데. (웃음) 진지하게 해야지. 연기는 당연히 진지하게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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