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VS] 기자여야 슈퍼히어로?
2007-04-26
글 : 김민경
클라크 켄트 vs 피터 파커

현대사회를 사는 슈퍼히어로라면 매스미디어와 가까워야 한다. 슈퍼맨 클라크 켄트(브랜든 라우스)는 지구상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가장 빠르게 접하기 위해 기자가 됐고, 프리랜서 사진기자인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금전적 보상을 위해 스파이더 맨으로 변한 자신의 활약상을 찍어 판다. 두 사람 모두 변신 뒤엔 대도시의 하늘을 자유롭게 활강하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웅이지만, 일터에선 순종적인 성품에다 업무에서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평균적인 직장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우아한 콧날에 고귀한 미소까지 갖춘 30대 조각미남과 눈밑의 통통한 애교살이 사랑스런 몸짱 미소년, 이들의 직딩생활을 전격 비교해보자.

<수퍼맨 리턴즈>의 클라크 켄트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피터 파커

1. 고용 형태 및 업무 환경

클라크 켄트: 일간지 <데일리 플래닛> 기자. 설정상 클라크가 기자를 직업으로 택한 또 다른 주요 이유는 외근을 가장해 사건사고 현장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 신문사에서 슈퍼맨처럼 보고도 없이 무단으로 직장을 이탈하는 간 큰 평기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 신문사도 철저한 위계질서와 상향 보고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조직인지라, 개인행동에도 정도가 있다. 기사도 안 쓰고 싸돌아다니는데 잘리지 않는 걸 보면 고용안정성이 확고한 철밥통 직장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데일리’ 플래닛> 주제에 기사 마감을 매일 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 슈퍼맨으로선 최고의 직장.

피터 파커: 프리랜서. 타블로이드 <데일리 버글>에 스파이더 맨 사진을 판다. 정식 구직도 조심스레 문의해봤지만 한번 거절당하자 순응하고 원고료 수입에 만족하며 산다. 본업은 학생이나 생계를 위해 피자 배달 등의 아르바이트도 가리지 않는 애처로운 슈퍼히어로이며, 과중한 업무로 인간관계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편집장이 아들의 개인 사진사로 부려먹어도 찍소리 못하는 고용관계상 약자다.

2. 편집장

클라크 켄트: 편집장 페리 화이트(프랭크 란젤라). 완고하고 독선적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취재 지시를 받고도 끝까지 개개는 로이스(케이트 보스워스)를 제압하지 못하는 물렁한 상사다. 특이하게도 각 부서 국장회의가 아닌 클라크, 로이스, 올슨 등 평기자 2, 3명과의 사적인 토론으로 1면 아이템을 결정하곤 하는데, 이걸 보면 의외로 민주적인 편집장인지도 모른다.

피터 파커: 편집장 조나 제임스(J. K. 시몬스). 거친 타블로이드의 세계를 뚫고 온 만큼 투철한 경제관념과 두툼한 안면가죽으로 단단히 무장돼 있다. 말이 짧고 단호하며, 헤드라인에 대한 부하직원의 아이디어를 훔치거나 급료를 후려칠 때 전혀 죄책감이 없다. 하지만 피터의 잘못된 국어 사용(극중에서 구두상의 명예훼손인 slender와 문서상의 명예훼손인 libel을 혼동한다)을 민감하게 지적하는 걸 보면 언론인의 프로 정신은 살아 있는 듯. 허구한 날 사소한 가정사로 전화해서 징징대는 부인 때문에 비서를 힘들게 한다.

3. 사내 로맨스

클라크 켄트: <데일리 플래닛>은 사내 커플이 직장에서 노골적으로 가정적인 시간을 보내도 용인되는 분위기. 별로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야근을 핑계로 애까지 회사에 데려와서 논다. 로이스는 편집장의 지시를 뭉개고 자기 하고 싶은 취재를 하기 위해 사적인 관계(남자친구가 편집장의 조카다)를 이용하기도 한다.

피터 파커: 직장 내 로맨스는 관찰된 바 없으나, 사진 원고료를 정산해주는 비서 언니가 피터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4. 사옥

클라크 켄트: 옥상에 설치한 지구 모양의 거대한 상징물과 고급스런 로비 등 돈깨나 있는 언론사란 인상을 풍긴다. 사무실엔 전세계 뉴스를 실시간 중계로 받을 수 있는 최신형 LCD TV가 30~40여대 걸려 있다. 한대 있는 구형 TV로는 국내 공중파의 박태환 생중계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씨네21>에 비하면 초현실적인 시청 환경.

피터 파커: 편집장의 사무실 이상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지만, 편집장실이 상당히 높은 층수에 위치해 있는 걸 보아 제법 규모있는 타블로이드임에 분명하다.

5. 생존전략

클라크 켄트: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없는 타입. 일을 미뤄도 흔쾌히 받아줄 것 같은 착한 동료 이미지기 때문에 로이스 같은 돌격형 동료가 잡일을 자꾸 떠넘겨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적당히 무능하면 중요한 업무를 맡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으니 슈퍼히어로의 본업에 충실하려면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터 파커: 똘똘하고 성실하나 센스가 아쉬운 탓에 학창 시절부터 집단괴롭힘을 당한 아픈 상처가 있다. 성격상 신문사 사진부에서의 조직생활이 본인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편집장의 독선에 소심하게 저항하지만 그때마다 묵살되는데, 같은 현상이 반복되다보면 자존감만 낮아질 수 있으니 한번쯤 제대로 된 반란을 준비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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