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공포영화 제작사, 다크 캐슬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몇 가지
2007-04-30
글 : 신민경 (자유기고가)

4월19일, 비수기 극장가에 공포 스릴러 한편이 조용히 상륙했다. 성경에 나오는 10가지 재앙을 소재로 끌어온 <리핑 10개의 재앙>. 공포영화 팬이라면 다크 캐슬 엔터테인먼트의 6번째 영화라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 그러나 전작들이 그랬듯, 이번에도 다크 캐슬은 장르의 틀 안에서 충분히 예상할 만한 범작을 내놓았다. 늘 신선한 것에 목말라하는 관객이라면 짜증이 충만할 수도 있겠지만, 충성스런 호러 팬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관람료를 지불할지도 모른다. 헤모글로빈과 아드레날린으로 응집된 2시간짜리 이벤트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헌티드 힐>에서 <리핑 10개의 재앙>에 이르기까지, 다크 캐슬 주최의 카니발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1. 윌리엄 캐슬을 벤치마킹하라

“그는 진정한 쇼맨이었고, 영화 홍보에 대해 알고 있는 첫 번째 사람이었다.”(조엘 실버) 다크 캐슬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창립자 조엘 실버(<다이하드> <리쎌 웨폰> <매트릭스> 등 제작)와 로버트 저메키스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그분. 악취미의 소유자 존 워터스 감독에게 영화의 열정을 심어줬고 질투심을 일으켰던 그분, 윌리엄 캐슬. 하지만 윌리엄 캐슬은 거장이 아니었다. 오슨 웰스의 걸작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제작하기도 했지만, 그는 1950~60년대 B급 공포영화의 대부로 더 통한다. 그렇다고 그가 영화를 썩 잘 만들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한 예로 그가 <악마의 씨>(Rosemary’s Baby) 영화화 판권을 갖고 있었음에도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윌리엄 캐슬이 연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투자를 약속했을 정도다(결국 <악마의 씨>는 로만 폴란스키가 연출했다).

윌리엄 캐슬은 히치콕과 동시대 감독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히치콕이 아니었다(히치콕의 카메오 출연하는 버릇까지 따라하긴 했지만!). 히치콕이 공포영화 전문 감독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거장이 된 반면, 윌리엄 캐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사꾼으로 남았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작품 자체가 아니었다. 그는 제작과 프로모션에 과도한 집착을 보인 나머지, 극장 앞에 앰뷸런스를 대기해놓는다거나 객석에 전기장치를 설치하는 등 요란한 홍보작전을 펼쳤다. 교활하고 조잡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극장가의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존 워터스 감독은 “왜 요즘의 프로듀서들은 미디어 정킷이나 TV 스팟, 거대한 광고물에 돈을 낭비하는지 모르겠다. 언제쯤이면 극장에 구토 봉지 같은 즐겁고 효과적인 것을 설치할까?”라며 윌리엄 캐슬의 홍보 방법에 쌍수를 든 바 있다.

<헌티드 힐>

B급 공포영화 팬이었던 조엘 실버와 로버트 저메키스도 윌리엄 캐슬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이들은 ‘윌리엄 캐슬 정신’을 물려받아 1999년 공포영화 전문 제작사를 설립했고, 회사 이름도 윌리엄 캐슬에서 따와 ‘다크 캐슬’이라 지었다. 창립작은 윌리엄 캐슬의 1958년작을 리메이크한 <헌티드 힐>. 윌리엄 캐슬의 딸 테리 캐슬이 공동 제작자로 참여해 시끌벅적한 쇼크영화 한편을 완성했다. 흥미로운 것은 윌리엄 캐슬의 홍보 전략까지 벤치마킹했다는 것. 배급사 워너브러더스는 영화 내용처럼 특정 장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경품을 주겠다며 바람몰이 홍보전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프로모션에 100만달러나 쏟아부은 이 영화는, 할로윈 주말에 무려 1510만달러나 벌어들이며 통쾌한 데뷔전을 치렀다.

윌리엄 캐슬의 황당한 이벤트

① <소름끼치는>(Macabre, 1958) 관객이 놀랄 경우에 대비해 극장 앞에서 1천만달러짜리 생명보험 판매.
② <헌티드 힐>(House on Haunted Hill, 1958) 이머고(Emergo), 특정 장면에서 해골 인형이 관객에게 달려들도록 장치.
③ <팅글러>(Tingler, 1959) 퍼셉토(Percepto), 의자 아래 특수장치를 장착하고, 놀랄 만한 장면에서 동시에 쇼크를 주는 장치.
④ <13고스트>(13 Ghosts, 1960) 특수안경을 쓰면 스크린에서 유령을 볼 수 있도록 장치.
⑤ <호미사이들>(Homicidal, 1961) 결말이 나기 전에 관객이 극장을 나갈 수 있도록 영화를 잠시 멈춤. 이때 환불 가능. 열린 결말 혹은 인터랙티브 영화의 효시?
⑥ <미스터 사도니쿠스>(Mr. Sardonicus, 1961) 악당을 살릴지 죽일지, 관객의 투표 진행.
⑦ <나는 네가 한 일을 보았다>(I Saw What You Did, 1965) 놀랄 경우를 대비해 안전벨트 장착.

2. 사실적인 공포 창조하기

다크 캐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윌리엄 캐슬 시대의 B급 공포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것이다. 하지만 100% 리메이크라 보긴 어렵다. 창립작 <헌티드 힐>이나 <13고스트> <하우스 오브 왁스> 등은 엄연히 원작이 존재하긴 하지만, 원작에서 기본 설정만 빌려왔을 뿐 전형적인 10대 호러물에 가깝다. 현대 시대에 맞게 각색한 뒤 미끈한 특수효과를 입혀 21세기형 저예산 공포영화들을 만들어온 것. 다크 캐슬 영화 제작진은 매번 “원작보다 훌륭하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곤 하는데, 물론 눈부시게 발전한 테크놀로지의 힘 때문이다. 관객의 심장을 조이는 폐쇄공간이나 과장된 사운드야말로 다크 캐슬 영화의 트레이드마크. 특히 다크 캐슬 영화마다 등장하는 귀신 들린 공간은, 한 세트에서 모든 걸 해결하며 제작비를 절감했던 윌리엄 캐슬의 제작방식과 통하는 면이 있다.

<13고스트>

작품성 여부를 떠나, 다크 캐슬의 미술이 뛰어나다는 것만은 부인하기 힘들다. 장르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두 제작자와 프로 스탭들이 버티고 있으니, 보고 듣는 쾌감만큼은 보증수표인 셈이다. 창립작 <헌티드 힐>의 고성은 독일 무성영화의 대표주자 무르나우의 고딕양식을 참고한 것으로, 건물 지하의 수술실이나 쇠락한 복도가 불길함을 배가한다. <13고스트>의 귀신 들린 집은 투명한 벽을 미로처럼 배치해 전체적으로 집이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준다. ILM의 특수효과맨 출신인 스티브 벡 감독의 재능이 곳곳에 살아난 결과물이다. <고티카>의 어둡고 녹슨 감옥 세트나 <고스트 쉽>의 음산한 유령선 역시 밀실공포를 재현하기에 안성맞춤. 물론 CG의 힘도 컸지만, 사실적인 공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소품을 제작하고 질감을 살리는 등 수작업을 피할 수 없었다.

다크 캐슬의 미술이 가장 빛을 발한 작품은 단연 <하우스 오브 왁스>다. 20여톤의 왁스로 집을 짓고 100여개 밀랍인형을 만든 것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왁스가 녹아내리는 마지막 장면은 압도적이다. 이는 시간차를 고려해 직접 왁스를 녹인 장면과 컴퓨터그래픽이 만나 창조된 쾌거다. 최근작 <리핑 10개의 재앙>에서는 피로 물든 강물과 죽은 물고기,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은 대지 등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적으로 표현됐다.

3. 팬 서비스와 혹평 사이

다크 캐슬 영화들 중 현지 언론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비평가들의 리뷰를 모아놓은 로튼토마토닷컴(www.rottentomatoes.com)을 살펴보면, 다크 캐슬 영화들의 신선도는 20%를 밑돈다. 그나마 좋은 반응을 끌어낸 <하우스 오브 왁스>가 신선도 24%이며, 최근작 <리핑 10개의 재앙>은 7%에 불과하다. 다크 캐슬에서 영화를 발표할 때마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는 공포영화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잃게 하기에 충분하다”(<리핑 10개의 재앙>), “나는 힐튼이 일찍, 고통스럽게 죽는 걸 보고 싶었을 뿐이다”(<하우스 오브 왁스>), “특수효과에만 몰두하다 보니 스토리는 전혀 신경쓰지 못했나 보다”(<고스트 쉽>) 등 비아냥의 화살을 퍼붓기 바빴다.

<고티카>를 두고 <미네아폴리스 스타 트리뷴>의 제프 스트리클러는 “볼거리는 A, 스토리는 C+, 대사는 F”라고 했다. 동의한다. 이는 다크 캐슬 영화에 대한 가장 적절한 평가처럼 보인다. 다크 캐슬 영화는 원작에서 가져온 느슨한 설정과 서둘러 봉합한 듯한 결말 탓에 종종 실망스럽지만, 장르물로서의 쾌감만큼은 A를 받을 만하다. 사지가 댕강댕강 잘린 채 저장된 장면(<헌티드 힐>)이나 상반신이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대규모 고어 신(<고스트 쉽>) 등은 관습적이지만 호러 팬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쾌감이다. 힐튼가 상속녀의 이마에 거대한 구멍을 내는 유머(<하우스 오브 왁스>) 역시 다크 캐슬만의 매력이다.

<리핑 10개의 재앙>

문제는 스토리가 빈약하고 싸구려라서가 아니다. 윌리엄 캐슬의 취향을 이어가자는 창립정신에서 멀어질 때, 킬킬대며 즐길 만한 B급 호러 취향을 버리고 난데없이 진지해질 때, 충성스러운 호러 팬들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급스런 스릴러로 포장된 <고티카>나 신앙과 과학 운운하는 <리핑 10개의 재앙>이 시시했던 것도, 다크 캐슬의 원래 취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해 다크 캐슬은 미디어 기업 CIT커뮤니케이션과 계약을 맺고 6년간 15편의 제작 지원을 받게 됐다. 편당 제작비는 4천만달러까지 올랐고, 장르도 액션과 스릴러, 코미디 등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차기작인 <헌티드 힐2>와 범죄 스릴러 <화이트아웃>을 보면 알게 될 터이지만, 부디 다크 캐슬이 그저 그런 메이저 제작사로 전향하지 않길 바란다. 전기의자를 설치하고 생명보험 부스를 만들었던, 윌리엄 캐슬의 교활한 영혼에서 벗어나지 않길 바란다. 다크 캐슬이 진지해진다면, 그건 빈약한 스토리보다 더 나쁜 죄악이다.

Filmography of Dark Castle

<헌티드 힐> 1999, 감독 윌리엄 말론
테마파크 운영자 프라이스(제프리 러시)는 아내(팜케 얀센)의 생일을 맞아 배너컷 박사의 음산한 성으로 손님들을 초대한다. 하지만 성에 도착한 이들은 프라이스 부부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 이들은 저주받은 집에 감금된 채 의문의 공포에 시달린다. 다크 캐슬의 창립작.

<13고스트> 2001, 감독 스티브 벡
윌리엄 캐슬의 1960년작을 리메이크했다. 아서(토니 샬&#54997;)는 죽은 삼촌에게서 저택을 물려받는다. 그곳은 유리벽이 미로처럼 설치된 집으로, 유령들이 봉인돼 있다. 퇴마사 데니스(매튜 릴라드)가 아서네 가족과 합세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저주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고스트 쉽> 2002, 감독 스티브 벡
해양 구조선 ‘북극의 전사’호의 대원들은 잭(데스먼드 해링턴)이란 남자에게서 의문의 선박을 인양하자는 제의를 받는다. 마침내 찾은 선박은 40년 전 실종됐던 호화 여객선. 거기서 대원들은 금괴를 발견하고 흥분하지만, 곧 타고 온 배가 폭발하면서 유령선에 갇히고 만다.

<고티카> 2003, 감독 마티유 카소비츠
미란다(할리 베리)는 범죄자를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다. 어느 날 폭풍우를 뚫고 운전하던 미란다는 한 소녀를 피하려다 사고를 당한다. 3일 뒤 깨어난 미란다는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가 되어 있고, 시시각각 환영에 시달린다. 유일한 단서는 팔에 새겨진 “혼자가 아니다”란 자해 흔적뿐이다.

<하우스 오브 왁스> 2005, 감독 자우메 세라
여행을 떠난 10대 6명이 끔찍한 공포를 겪는다는 이야기로, 1933년작 <밀랍 박물관의 비밀>이 원작이다. 칼리(엘리샤 커스버트) 일행은 풋볼 게임을 보기 위해 나섰다가 우연히 밀랍 인형들로 가득한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일행들은 살인마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리핑 10개의 재앙> 2007, 감독 스티브 홉킨스
선교활동 중 가족을 잃은 캐서린(힐러리 스왱크)은 과학 신봉자로 유명세를 떨친다. 어느 날 캐서린은 한 마을에 나타난 재앙을 조사해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강이 피로 변하고 메뚜기떼가 출몰하는 등 성서의 10가지 재앙이 재현되는 가운데, 캐서린은 의문의 소녀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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