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Hope
감독 일마즈 귀니/터키/1970년/100분/터키영화 특별전
어찌보면 <희망>은 터키에서 날아온 <자전거 도둑> 같다. 1970년대 초 근대화의 물결이 불어닥친 남부도시 아다나를 배경으로 생계수단을 잃은 한 중년 남자의 슬픈 기행이 펼쳐진다. 마차를 끌어 하루를 살아가는 하층민 자바르는 일곱 가족의 가장이다. 택시들이 대거 도시에 등장하면서 수입이 줄어들자 시름에 빠진 자바르에게 더 큰 불행이 닥친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애지중지하던 말이 자동차에 치여 죽고, 나머지 말마저 빚쟁이들의 손에 넘겨져 헐값에 팔린다. 고이 간직해 온 반지와 골동품 녹음기를 시장에 나서지만 새 말을 사기엔 푼돈일 따름이고, 동년배 사내 핫산의 꼬드김에 권총 들고 강도질까지 행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결국 용한 점쟁이의 말을 믿고 죽은 나무 아래 묻혀있다는 보물을 찾으로 길을 떠나는 자바르를 뒤쫓으면서, 영화는 ‘희망’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쉽사리 꺼내들지 못하는 인간들이 스스로 꾸며낸 최면의 신기루일 따름이라고 덧붙인다. 터키영화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일마즈 귀니의 두번째 장편영화. 1960년대 액션배우 출신인 감독이 직접 자바르를 연기했다. 비참하고 남루한 현실이 빠른 몽타주로 이어지면서, 돈이 윤리마저도 사들이는 비극의 시대에 판도라의 상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음울한 흐느낌이 끊임없이 새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