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무셴의 일기> The Journals of Knud Rasmussen
감독 자카리아스 쿤눅, 노만 콘/캐나다/2006년/112분/인디비전
1922년 1월, 탐험가 라스무센 일행은 에스키모 부족의 샤먼 아바와 신기를 물려받은 딸 아팍을 찾는다. 그들은 식량을 찾아 떠도는 아바 가족과 함께 이동하던 중에 개신교도 부족을 만나게 되고, 종교와 전통을 둘러싸고 부족 내 갈등이 있음을 깨닫는다. 무속의 세계를 굳건히 옹호하던 아바는 결국 부족 구성원들의 눈총과 비난에 직면하고, 결국 자신을 신에게로 이끈 늙은 주술사들을 이글루에서 쫒아낸다. 북극의 설원을 무대로 미지의 신화를 펼쳐보였던 <아타나주아> 팀이 다시 에스키모인들을 찾아 써 내려간 두번째 여행기. <아타나주아>가 신화를 재연했다면, <라스무센의 일기>는 신화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감독 스스로 ‘은밀한 스릴러’라고 말할 정도로,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섞은 이 영화는 세대간, 부족간 다툼의 과정을 조금씩 드러내 보인다. 영화에서 에스키모 부족은 샤먼을 더이상 숭배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샤먼은 믿음의 존재가 아니라 회고의 대상이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 더이상 춤추지도 않는다. 외지인의 호기심을 달래기 위한 죽은 행위로서의 춤만이 남아있다. <라스무센의 일기>는 여정의 막바지에 이르러 견고했던 이누잇의 전설이 시간의 흐름과 폭력 앞에서 진물처럼 녹아 흘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졸업한) 고등학교에 다시 가는 기분이었다” 촬영 전 자카리아스 쿤눅 감독의 들뜬 예상과 달리 더이상 에스키모의 신화는 침윤되고 없다. 주술의 힘 대신 성경 말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아타나주아>의 에스키모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신화적 인물이었다면, 5년 후 다시 북극을 찾아가 만난 <라스무센의 일기>에서의 에스키모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시간을 향유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부족일 따름이다.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