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디바> Gradiva
알랭 로브 그리예/프랑스/2006년/110분/시네마스케이프-마스터즈
미술사학자 존 로크에게 외젠 들라크로와의 미발표 그림이 담긴 슬라이드 한 통이 전달되면서 모든 사건이 시작된다. 아름답고 신화적인 작품 속 여인 그라디바에게 존 로크는 사로잡히고 만다. 그 때쯤 그는 환영으로서의 그녀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홀린 듯이 그녀를 쫓아다니던 존 로크는 한 맹인을 알게 되고 그를 통해 본격적인 환상의 쇼가 벌어지는 현장 또한 알게 된다. 어느 기묘한 고미술품 중개인의 연회에 초대된 존 로크는 점점 더 심한 환상과 꿈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 연회장에서는 들라크로와의 그림을 재연하는 듯한, 죽음의 기운과 성적 욕망이 공존하는 기묘한 연극이 연출된다. 존 로크는 매혹을 떨치기가 힘들다.
매우 미스터리하게 시작된 영화 <그라디바>는 존 로크의 이런 행적을 따라 환상의 미로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존 로크가 꿈과 현실의 경계가 혼동되는 지점에 속하는 순간 이 영화는 거대한 미궁이 된다. <그라디바>는 1970년대 문학과 영화 모두에서 누보 로망의 유행을 선도했던 알랭 로브 그리예의 신작이다. 일정한 서사적 진전에 기대기보다 주인공 존 로크가 들락거리는 환상의 영역을 통해 영화는 구성된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가 영화 속 들라크로와의 미발표 작품만큼이나 신비로운 미완의 느낌을 준다. 알랭 로브 그리예의 소문난 영화적 방식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작품. 성과 죽음의 욕망이 한 자리에서 얽혀 펼쳐지는 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