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이리 멘젤은 특유의 장난기를 수시로 드러내면서도 속 깊은 생각을 털어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런 성격 자체로 가벼움과 진지함을 관통하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왔던 자신의 영화 경력을 요약해 보여주는 것이었다. 체코 뉴웨이브의 선도적 인물들 가운데 하나이자 “웃음은 앎보다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코미디 감독인 그에게 대화를 청해보았다.
-주로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 왔다.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지 않나. 또 사람들은 코미디를 필요로 한다. 덧붙여 좋은 코미디는 진지한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진정한 웃음은 단순한 지식 보다 의미있다. 풍자를 통해 아이러니한 현실을 드러낼 수도 있고. 웃음은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웃으면 더 잘 숨을 쉴 수 있다. 호흡하기도 편하고. 웃음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고 본다.
-<변덕스러운 여름>에서 직접 줄타기 곡예사를 연기했던 게 인상에 남는다. 그것 말고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도 여러 번 출연했었는데.
=<변덕스러운 여름>에 직접 출연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원래 출연키로 했던 배우가 있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특별히 연기를 배운 적은 없다. 다만 나처럼 생긴 사람이 없어서 제의를 곧잘 받곤 한다. 부끄러움 많은 캐릭터 연기는 내가 잘 한다.(웃음)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72세부터 92세까지 소화해야 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거지의 오페라> 같은 영화는 연극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연극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생겼나.
=15살때부터다. 프라하에 근사한 극장이 있었는데, 1주일에 4-5번씩 극장을 들락거릴 정도로 빠져들었다.
-구 소련의 침공 이후 많은 감독들이 체코를 떠났다. 하지만 당신은 남았다.
=모두가 도망간다면 어떡하나. 문화는 저절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가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이러한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진다. 내가 누린 문화를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믿었다.
-체제 비판 성향이 녹아 있는 자신의 작품들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상황도 맞았는데.
=체제나 정권에 상관없이 난 항상 한결 같았다. 내 영화도 마찬가지다. 공산주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난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게 지금까지 내 삶의 원칙이다.
-당신 영화 속의 억압자들은 악한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게 독특하다.
=(손뼉을 치며) 맞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하지만 나쁜 목적을 지닌 선행도 있고, 좋은 목적을 가진 악행도 있다. 누구나 사람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걸 드러내 보이려고 그렇게 묘사한다. 또 한 가지는 악한으로만 그리면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다. 인물과 또 제 자신의 양면성을 아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처럼 인간을 포용하는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됐나.
=까레이 차펙, 체호프, 채플린, 모파상, 마크 트웨인 등이 내게 큰 영향을 줬다. 학생들에게도 항상 이런 말을 한다. 반드시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고. 누군가의 실수와 결점을 알아차리더라도 그것을 뛰어넘어 사랑해야 한다고. 이런 과정을 내 스스로는 창조의 패러독스라 부르고 싶다.
-성적 욕망을 삶의 에너지라고 여기는 것 같다.
=성적 욕망은 그 자체로 즐거운 행위이자, 삶의 한 부분이다. 가장 자유로운 모습이기도 하고. 그걸 영화 속에서 표현하려고 해 왔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모두들 일하기 싫어한다.
=내가 원래 좀 게으르다. 그냥 창밖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는게 가장 좋다. 어렸을 때부터 뭘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안 할 수 있을까 하는 핑계부터 찾곤 했다.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성적 욕망을 긍정하고 게으른 천성을 즐기는 건 지배적인 어떤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기질 때문 아닌가.
=내가 실수를 하고 나서 인정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내 영화를 보면서 하나쯤은 깨닫게 하고 싶다. 국가나 정부 안에 멍청한 바보들이 득실거린다는 사실 말이다.
-계획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영화는 아직 없고. 연극을 준비 중이다. 이탈리아 극작가인 까를로 골도니의 작품인데, 체코와 핀란드 양국을 오가며 원형무대에서 공연을 치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