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중년남성의 비애, 아버지의 희생 강조하는 <우아한 세계>
2007-05-04
글 : 정이현 (소설가)
불쌍해? 정말 불쌍해?

이상하다. 아저씨는 왜 그렇게 불쌍한 척하는 걸까? 물론 먹고사는 거 힘들고 구차하지. 나도 안다. 나 역시 때론 힘들고 때론 구차하게 밥 벌어먹고 사는 생활인이니까. 조직에서 언제 잘릴지 모른다고?(그래도 아저씬 비벼볼 조직이라도 있잖아요. 혈혈단신 세상과 맞장떠야 하는 프리랜서도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 어떻고. 오늘도 불철주야 이력서를 작성하고 계신 비자발적 실업자들 얘기까진 차마 하지 않겠다) 마누라랑 애새끼들에게 돈 벌어 오는 기계 취급당한다고? 그것도 서러운데 무시까지 당한다고?(그래도 결혼도 하고 애도 있잖아요. 완전 애국자네. 꼬치꼬치 캐묻는 택시 기사에게 결혼도 안 했고 애도 없다고 이실직고했다가 졸지에 매국노 취급 당해봤어? 그 다음부터 택시 타면 아예 입에 지퍼 채우는 심정, 필설로 다 못해요)

그러니까 내 얘긴 이 땅의 아저씨들이 불쌍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일일이 따져보면 이 세상에 불쌍하지 않은 사람 별로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인간이란 본디 그 존재만으로도 얼마쯤 비애스럽고 가여운 동물이 아니던가. 적나라한 반어법의 제목으로 무장한 영화 <우아한 세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명백백하다. 우아한 세계란 어디에도 없다는 것. 그러나 선뜻 공감의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이유는 그게 너무도 뻔하고 당연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십년이나 전에, <넘버.3>의 한석규는 이렇게 일갈했다. “백조 알지? 백조가 폼나고 우아하게 떠 있지만 물속은 어떤지 알아? 졸라게 헤엄치고 있어. 산다는 게 그런 거다. 장난 아니야.”

영화 속에서 강인구는 개인적 욕망 전부가 거세된 존재로 그려진다. 아내 외에 다른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룸살롱에 가서도 아가씨 손 한번 주무르지 않는다. 골프에 골몰하지도 않고 재미삼아 화투장 한번 안 만진다. 가족사진을 한장도 아니고 여러 장 처덕처덕 지갑에 넣고 다니는 이 사내. 꿈이라곤 오매불망 ‘전원주택’뿐인 그 남자의 가족을 향한 짝사랑은 가히 눈물겨울 지경이다.

영화는 이 땅의 힘겨운 중년 남성 강인구의 직업을 조폭으로 낙점했다. 경쟁사회가 그만큼이나 잔혹한 전쟁터라는 알레고리일 것이다. 내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 남의 패밀리를 쳐내야 한다는 것. 나는 싫지만 내가 거느리고 책임질 가족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 그러나 모든 단순한 알레고리가 그렇듯, 그렇게 명명하는 순간 이 세상은 정말 조폭의 전쟁터로 규정되어버리고 대한민국 범부들의 삶은 폭력조직 중간보스의 그것과 겹친다. 관객이 서글픈 아비 강인구의 처지를 연민하고 감정이입하는 동안 조직폭력배로서 그가 저지르는 악행들은 밥벌이의 고단함에 대한 알리바이로 슬며시 치환되는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보통의 중년 사내들이 강인구처럼 진짜로 오로지, 처자식 먹여살리기 위해서만 사는 걸까? 손에 피 묻히고 등에 칼 맞고, 서로 물어뜯고 싸우면서? 글쎄다. 한번 달리기 시작했더니 쉽게 멈출 수 없어서, 레이스의 낙오자가 되기 싫어서, 복잡한 인정욕망 때문에 등등 저마다의 속사정들이 무수할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잘 모르겠다고, 단추를 어디서부터 잘못 채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편이 차라리 더 정직할지도 모른다. 냉정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제 삶의 과오들을 합리화하면서, 애매한 처자식에게 모든 핑계를 돌려버리는 것보다야 말이다.

더 비겁한 태도는 아버지의 순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아내와 딸의 캐릭터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심지어 타자화한다는 데 있다. 아빠가 쪽팔려 죽겠다면서 한편으론 유학 보내달라고 징징대는 딸내미는 거의 꼬마악마처럼 묘사되는데, 우리의 강인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를 옮겨서까지 이기적인 딸의 욕망을 실현시켜준다. 왜? 아버지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니까. 위대한 희생양, 구슬픈 기러기아빠의 이데올로기!

<우아한 세계>는 얼핏 가부장제 아래 중년 남성의 비애를 말하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 세상이 아버지의 윤리와 아버지의 희생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음을 노골적으로 처연하게 역설한다. 그것이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건 혹시 그 시선의 숨은 주체가 엄살 부릴 줄도 모른 채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 땅의 진짜 아저씨들이 아니라, 아버지-되기가 지레 두려워 진즉에 머나먼 곳으로 도피해버린 아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어쩐지 아버지 엿 좀 드시라는 뜻인지 그놈의 홈비디오 한번 독하게도 길게 찍어 보내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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